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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지금 어두운 터널 속에 있는 걸까?

김명옥 |2009.04.16 10:39
조회 88 |추천 1


고난은 ‘터널’로 많이 비유된다.
그렇게 비유되어 회자되는 것 중에 이런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고난이라는 터널 속에 들어갔을 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영원히 계속되는 터널은 없다.
전진하고 전진하면 언젠가는 터널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자.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을

터널 같은 고난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가?

 

나는 지방에 갈 때 KTX열차를 자주 타는데,

그때 터널을 통과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때는 터널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터널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터널을 왜 뚫었을까?

바깥 경치가 좋을 텐데 왜 터널로 가는 걸까?’

 

생각해보니 의외로 이유는 간단했다.
터널이 제일 빠른 지름길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왜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터널 같은 고난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지 깨달았다.
고난이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으로 이끄시는 것이다.

 

 

요셉을 보라.
요셉이 바로에게 나아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겠는가?
이스라엘 평민으로서 어떻게 바로 앞에 서겠는가?
애굽에 가는 것만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드시는가?

 

하나님은 요셉이 노예로 고난이라는 터널을 통과하고,

죄수로 감옥이라는 터널에 들어가서,

바로의 떡 굽는 관원장과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신다.

 

그리고 그가 술 맡은 관원장의 소개를 통해 바로를 만나고,

해몽을 통해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신다.

 

요셉의 고난은 다 터널이었다.
그는 노예살이라는 1호 터널, 감옥이라는 2호 터널을 지나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리까지 갔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길에

고난의 터널을 뚫고 그리로 지나가게 하시는가?
더 빨리, 장기적으로는 더 편하게 가라는 것이다.

 

고난의 터널이 실제로는

지름길임을 알아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 시각을 가진 사람이 생명의 성령의 법 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이런 시각을 가진 사람은

항상 인생의 고난의 터널을 지름길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쉽게 낙심하지 않는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믿고 의지한다.

 

- 전병욱, 돌파력

 

 

†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이사야 49장 15-16절)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렘 10:23)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5~6)

 

 


하나님, 고난의 터널을 지날 때 어둡다고 무섭다고 빛이 보이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고, 그 길 가운데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으며 걸어가길 소원합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누구보다 나의 길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내 인생의 지도자 되심을 믿습니다.
요셉처럼 고난의 터널을 주님의 뜻에 의지하며 성실함으로 나아가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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