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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29화> 입원

바다의기억 |2006.08.18 01:47
조회 7,700 |추천 0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곤 하지만

 

역시나 제 방은 덥군요.

 

오늘 밤도 끈적한 땀에 온 몸을 적시며

 

뒤척 거려야 할 것 같습니다.

 

============================= 이래서 잠이 부족한가 ============================= 

 

 

눈을 떴을 땐 병원이었다.


일단 눈에 보이는 사람은 아버지, 어머니, 민아, 한나...


그들 옆에 서있던 의사와 간호사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밖으로 나간 뒤


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아버지 - 일어났냐.


기억 - 아.. 예... 윽....



몸을 일으키기 위해 애를 쓰는 순간


허리에서 뒤통수까지 짜릿한 통증이 엄습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눈물이 핑 고이면서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기억 - 아아아..... 아....



일단 극대값을 찍은 뒤부터


x<1 인 지수함수를 따라 감소하는 통증에


난 힘겹게 숨을 골랐다.


이런 내 모습에 아버지의 미간엔 깊은 주름이 내천자(川)로 새겨졌다.


아버지 - 그냥 누워서 말해라.


기억 - 예...


아버지 - ...... 누가 이랬냐.


기억 - ......


아버지 - 누구냐. 누가 이랬냐.


기억 - 아버지....


아버지 - 그래, 말해봐라.


기억 - 죄송합니다... 아버지...



목에 핏대를 가득 세운 채


간신히 화를 참고 계신 아버지의 모습에


도저히 그 말밖엔 나오질 않았다.


내가 얼마나 누워있었는지 몰라도


그 사이 너무나 왜소해져버린 아버지의 어깨.


필시 그 줄어든 폭만큼 애간장을 태우신 것이리라...



아버지 - 말해! 내 이놈들 사지를 찢어발겨 버릴 테니까!!


어머니 - 여보, 그만 해요. 당신 지금 너무 흥분했어요.


아버지 - 내 이놈들을.... 내 이놈들을... 그래... 나중에 다시 이야기 하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간신히 가누며


병실 밖으로 나가시는 아버지.


그 뒷모습에 한없이 죄송한 기분이 복받쳤다.


아버지가 병실을 나가신 뒤,


민아가 조심스레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



민아 - 괜찮...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된 거야?



인공풍화공정에 24시간 노출된 도자기처럼


세월의 고단함마저 느껴지는 그녀의 표정에


또다시 마음이 무거워진 나였지만


그보다 더 발끈하고 치받는 생각이 있었다.


지금 이 사태를 만든 장본인....


세상에서 제일 비열한 유형의 인간.



기억 - 안군이야.


민아 - 응?


기억 - 나 이렇게 만든 놈..... 안군이라고.



차마 아버지가 계실 땐 하지 못했던 그 말을 꺼내놓자


민아의 표정이 충격으로 굳어졌다.



민아 - ... 안군 오빠가 이랬다고?


기억

- 그래, 안군 그 놈이 사람 시킨 거야.


아직 증거는 없지만...


범인들만 잡히면 바로 밝혀질 거야.



민아

- 기억아.... 뭔가 오해가 있는 거 아냐?


안군오빠는 절대 그럴 사람이....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녀석을 싸고도는 민아의 말에 서러울 만큼 화가 복받쳤다.


그녀는 한 번이라도 내 기분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기억

- 네가 뭘 알아? 그놈이 사람들 없는 자리에서


나한테 무슨 말을 지껄이고 다녔는지 알아?


연극에서도 현실에서도 이기는 건 자기라고,


네가 왜 나 같은 인간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속 긁고 다니던 인간이 그 인간이야!


예전에 버스에서 있었던 일도 그 인간이 꾸민 거고,


이번에도 내가 불꽃놀이 왔다는 걸 알고 손을 쓴 거라고!



민아 - 기억아, 침착해, 지금 너무 흥분해서...


기억 - 지금 침착하게 생겼어? 지금 넌 누구 편을...쿨럭! 끄으윽....



갑작스레 목을 타고 올라온 피비린내에


거친 기침을 하는 순간,


츄르륵... 하고 물이 쏟아지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한 곳엔


내 옆구리 꽂힌 튜브를 타고 흘러내린


피가 고이는 플라스틱 통이 있었다.



기억 - 뭐....뭐야 이건.


민아

- 그게.... 갈비뼈가 폐를 찔러서


고이는 피를 빼내는 거래.


4~5일 정도 지나면 멈출 거라고....



기억 - 허! 허허..... 콜록! 아아악....



하도 기가 차서 헛웃음을 치자


그 충격으로 다시 옆구리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


나 정말 용케도 살아있구나...



기억

- 젠장, 다른 덴 어떻게 된 거야?


움직이는 덴 오른손뿐인 것 같은데.



민아 - 지금 다 기브스 해놨어. 당분간은 못 움직일 거야.


기억

- 하아.... 아무튼 내 말 믿어.


이거 전부 안군 그놈이 한 짓이야.


앞으로 절대 그놈 근처에도 가지 마. 알았지?



민아 - .......


기억 - 왜 대답을 못해?


민아

- 저... 기억아, 이제 공연도 얼마 안 남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조금 더 찬찬히 상황을....



기억

- 공연? 지금 공연이 문제야?


아직도 상황이 파악이 안 돼?


나 죽은 다음에나 믿을래?


아으 나..... 나 진짜.....콜록! 아아악.... 아악....



깊이 숨을 들이 쉴 때마다


튕기듯 터져 나오는 기침에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 통증보다 민아로 인한 답답함이 더 컸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한나가 그녀를 문밖으로 이끌었다.



한나

- 언니, 언니는 잠깐 나가있는 게 나을 것 같아.


내가 잘 이야기 해 볼게.



민아 - 아니 난 그저...


한나 - 지금 둘 다 너무 피곤해서 그래. 잠깐 마음 가라 앉히고 있어.



민아를 병실에서 내보낸 한나는


잠시 문 앞에 서서 숨을 고르더니 내 침대 옆으로 걸어왔다.


아직도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고 있는 내 손을 감싸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



한나 - 미안해요.... 나 때문에.


기억 - 하아.... 아냐, 너라도 무사해서 다행이다.


한나 - 오빠.....!



한나는 내가 이렇게 된 게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는지


왈칵 눈물을 쏟으며 침대에 엎드렸다.


아마 내가 눈을 뜰 때까지


가장 마음 졸여야 했던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울음을 그친 뒤,


난 일단 주변정황을 파악해보기로 했다.



기억 - 얼마나 지난 거야? 지금 몇 시지?


한나 - 꼬박 하루 지났어요. 지금 밤이고요.


기억 - ...... 그랬구나. 그간 별다른 일은 없었고?


한나 - 네, 저도 계속 병실에 있어서 잘은 모르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았다는 사실에 난 안심했다.


혹여 =당신이 잠든 사이에=처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상황종료 후라고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는가?


하긴... 꼴이 이래선 계속 혼수상태로 있는 거나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기억

- 공주는 정말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눈도 깜짝 안하고 안군편만 들다니....



한나

- 일단 좀 쉬어요. 다른 생각 하지 말고요...


어차피 범인들만 잡히면 다 밝혀질 일인 걸요.



기억 - 그래.... 그렇구나.



아직 민아에게 해주고 싶은 말아


200자 원고지로 150장 분량은 남아있었지만,


범인들만 잡히면 다 밝혀질 거라는 한나의 말에


난 더 이상 안군의 일을 언급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두고 보자. 금방 결과가 나올 것이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날이 샌 뒤였다.


실제 움직이는 부분이라고는


오른쪽 팔꿈치 아래 정도 밖에 없었던


난 낮엔 어머니에게,


저녁 땐 민아와 한나의 간병을 받으며 지내게 되었다.


식사부터 세면까지


전부 남의 손에 의존해야 한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불편한 일이었다.


처음엔 얌전히 참고 누워있으면 될 줄 알았지만,


침묵을 불가능하게 하는 최대의 적은 가려움이었다.


뒤척이지도 못하고 고정된 자세로 있으니


등이 베기고 온몸이 근질거렸다.


행여 좀 무리를 해서 움직일라 치면


옆구리에서 왈칵 쏟아지는 핏물이 주변을 경악케 했다.


담당의사는 어차피 고인 게 빠지는 거라


신경 쓸 것 없다고 했지만...


그 양을 볼 때마다 빈혈이 올 것만 같았다.



민아 - 한나야, 그쪽 어깨 좀 받쳐봐. 기억이 등 좀 닦아주게...


한나 - 으이차... 이렇게?


민아 - 응. 기억아, 가려운 데는 없어?


기억 - 아.... 오른쪽 어깨 뒤가 좀 가려워. 붕대도 꼬인 것 같고...



처음엔 한나가 내 간병에 동참하는 데


부담감을 표했던 민아였지만,


하루에도 열댓 번씩 뒤집어 줘야 하는


짐짝이나 다름없는 날


혼자 감당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실감한 뒤론


적극적인 협력체제로 돌아섰다.


여러모로 찔릴 구석이 많은 나로선


한순간 한순간이 바늘침대였지만...


사태의 심각성 탓인지, 나름의 반성의 의미인지


한나는 민아가 있건 없건


묵묵히 간병을 도와줄 뿐 어떤 장난도 치지 않았다.



민아 - 잠깐 수건 좀 빨아 올게. 불편한 거 있으면 한나한테 말해줘.


기억 - .....응.



민아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나와 둘만 남게 된 한나.


침대에서 조금 떨어진 의자에 앉아있던 그녀는


방문이 닫히는 걸 확인한 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한나 - 오빠, 괜찮아요?


기억 - 응? 뭐가?


한나 - 오빠.... 계속 화장실 못가고 있잖아요.


기억 - 아.... 아까 어머니 계실 때 해결했어.


한나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요.


언니 때문에 부끄러워서 그런 거면 지금 도와줄게요.



사실, 아까부터 신호가 오고 있긴 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 지경이라도 쉽게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라


다른 해결책을 찾고 있었을 뿐...



한나 - 오빠, 오른팔은 움직일 수 있잖아요. 통만 잡아 드리면 되죠?


기억 - ..... 그래줄래?



왠지 서글퍼지면서도, 한나가 고마웠다.


자꾸만 그녀와의 비밀이 늘어가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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