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끊겼던 철길은 이어졌지만 아직 누구나 이 길을 따라 북으로 갈 수는 없다. 지도 위의 경의선 종착역은 신의주이나 현실의 종착역은 임진강역이다. 실향민들은 여기 내려 두고 온 고향을 그린다.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도 잦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느긋하게 이곳저곳 거닐기 좋은 산책코스이기도 하다.
글= 설은영·정유진 객원기자 skrn77@joins.com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임진강역에 내리면 온통 논과 산이다. 자작나무와 전나무들이 들어선 작은 숲과 샛길도 보인다. 2001년 9월 30일 경의선 문산역~임진강역 6km 구간이 개통된 이래, 임진강역을 찾는 방문객들은 하루 평균 500명 정도다.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과 임진각을 찾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다. 어른들 대여섯이 들어서면 꽉 차는 역사와 열 평 남짓한 대기실 벽면에는 다른 간이역과 달리 통일을 기원하는 낙서가 많이 보인다.
젊은 세대들이 임진강역을 많이 찾는 것은 평화누리공원 때문일 것이다. 약 29만Km2의 드넓은 공원은 임진강역에서 800m 거리다. 크기도 하지만 탁 트인 전경과 포근한 흙길 덕에 걷고 싶은 맘이 절로 든다. 공원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나무 계단 길로 들어서 보자. 화려한 아치형 장승들이 서있다. 장승 사이로 난 길을 걸어 들어가면 통일을 기원하는 기념물인 ‘생명촛불 파빌리온’과 ‘통일기원 돌무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북한 주민을 돕거나 전 세계 기아 어린이들을 후원하고 싶다면 바로 옆 캔들숍에서 향초를 사거나 직접 일정 액수를 기부하면 된다.
돌무지를 지나면 평화누리공원의 중심점이라고 할 만한 전망 좋은 언덕길이다. 공연장 ‘어울터’에 서는 부채꼴 모양의 평화누리 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너른 잔디 광장 위에서는 아이들이 연을 날리며 뛰어논다. 최평곤 작가의 조형물 ‘통일 부르기’가 북녘을 향해 서 있고, 수백 수천 개의 노랑, 빨강, 파랑 바람개비가 휘휘 돌아간다. 어울터 옆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꽤 큰 연못이 나온다. 연못 위에 떠 있는 카페 ‘안녕’에 앉으면 공원 전체가 정원이다. 어울터 가까운 쪽에서부터 생명길, 소망길, 하늘가 등의 길 이름이 붙어 있다. 산책하는 이들이 있고, 사진을 찍는 연인들이 있고, 사진 동호회 사람들도 보인다.
‘음악의 언덕’에서는 공연장이 잘 보인다. 공연이 열리면 이곳에서 돗자리를 펴고 느긋하게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도 적지 않단다. 5월에는 매주 클래식 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평화누리공원에서는 느리게 걷고, 풍경을 즐기고, 음악에 취할 수 있다. 다시 공원 입구 쪽으로 나오면 작은 규모의 놀이공원인 평화랜드가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올 만한 가족나들이 코스로는 최적인 셈이다. 산책만 한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 임진강역~임진각~자유의 다리 임진강역과 관광지 입구 사이의 마정교 아래에 낚시터가 있다. 휴장 기간이 길었지만 지난해부터 자연산 붕어와 잉어를 풀어놓는 낚시터로 새단장을 하면서 강태공들의 발걸음이 잦아졌다.
마정교를 지나 임진각관광지로 들어서면 대포, 탱크, 경비행기 등이 보인다. 남자들의 발길이 오래 머문다. 경기평화센터에서는 분단의 역사를 사진과 영상물로 만날 수 있다. 어린이들이 방문 소감을 남길 수 있도록 방명록도 별도로 마련해 놓았다. 주변에는 ‘통일의 횃불’조각상이나 미국군 참전비도 있다. 3월 말부터 흐드러지게 피는 자줏빛의 등나무꽃이 장관이란다.
경기평화센터를 지나면 땅에서 하늘로 활강하는 모양의 임진각이 나타난다. 실향민 부모와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3대가 나들이 나선 모습도 종종 눈에 띈다. 임진각 전망대 망원경으로는 날이 맑으면 개성 시내까지 눈에 담아갈 수 있다. 실향민들은 망배단에서 제사를 지내기도 한다. 소나무가 드리워진 길에 벤치들이 있어 팍팍한 다리를 쉬어갈 수도 있다. 평화랜드를 한 바퀴 도는 열차도 있다. 어린이 2000원, 청소년·성인 3000원이고, 8분 정도 걸린다.
망배단 조금 오른쪽으로 작은 오솔길이 하나 있다.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남측과 북측이 서로의 포로를 교환했던 83m 길이의 ‘자유의 다리’가 시작된다. 다리 아래에 ‘평화연못’이 있다. 다리 끝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막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걸을 수 있는 마지막 지점이다. 임진각관광지 입구에서 자유의 다리까지는 1km가 채 되지 않지만, 전시물과 전망대 등을 둘러보려면 40분~1시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