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 재료로 피부 상식 없이 만든 화장품.
“제가 만든 화장품을 동생에게 권했는데 처음에는 괜찮았거든요. 지금 와서 트러블이 생기는 건 왜일까요. 명현 현상이라고 하기엔 그렇잖아요. 잠깐 중지하고 시중 제품을 사용하라고 할까요. 계속 사용하다 더 심해지면 어떡해요…ㅠㅠ.”
“얼마 전부터 천연 화장품과 비누를 사용했어요. 라벤더 워터에 레몬·티트리 등 여드름에 좋은 오일을 넣어 만들었고요. 근데 일주일이 지나니 얼굴에 불긋불긋한 것들이 생겼어요. 재료를 조금 바꾸면 괜찮을까요. 훌쩍, 가르쳐 주세요 고수님들.”
DIY(Do It Yourself) 화장품을 쓰고 부작용을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다.
DIY화장품 열풍이다. 일부 화장품에 석면이 함유된 탈크가 포함됐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쓰는 여성이 크게 늘고 있다. 한 대형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천연 화장품 만들기 카페는 400개가 넘는다. 한 카페는 5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을 정도다.
화장품 제조법을 배우겠다는 여성이 늘어나자 강좌 개설도 우후죽순 생겼다. 전국 규모의 대형마트·OO문화센터 등에서 실시하는 교양강좌는 물론 지자체의 문화원·복지관, 화장품 재료 매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교육과정도 있다.
공인되지 않은 자격증을 주겠다고 소비자를 유혹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했다. 경기도 고양시 소재 ‘P 천연화장품만들기’에선 전문 강사반과 창업반·전문가반을 운영한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복지관이나 문화원 등은 10만원 이하지만 8~12주의 프로그램을 이수하는 전문 학원은 교육비가 60만~80만원에 이른다.
M평생교육원 교육사업부 민모씨는 “탈크 사건 이후 강좌에 대한 문의가 30~40% 늘고, 강좌 개설도 급증하고 있지만 교육의 질은 보장할 수 없다”고 말했다.
천연 재료 화장품은 오염에 약해
천연 화장품은 자연에서 얻은 재료에 인공색소·향료·알코올·방부제 등 피부 자극을 일으키는 성분을 일절 넣지 않은 것을 말한다. 먹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면 피부에도 안전할까.
분당서울대병원 피부과 허창훈 교수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피부 손상의 형태는 다양하다.
첫째는 피부 감염증이다. 허 교수는 “방부제를 쓰지 않은 DIY 화장품은 쉽게 오염될 수 있다”며 “스크럽제 등으로 피부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이를 통해 세균이 들어가 염증을 일으킨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재료의 강한 약성도 약해진 피부에는 독이 된다.
둘째는 접촉성 알레르기다. 특정 물질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사람에겐 알레르기 피부염을 유발한다. 피부가 붉게 변하는 것은 물론 좁쌀 같은 반점이 생기거나 심하면 물집이 잡힌다.
양모(28·서울 목동)씨가 대표적인 예. 그녀는 인터넷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천연 재료로 만든 스킨과 보습 오일을 나눠 사용했다. 피부 변화는 며칠 뒤 나타났다. 홍반과 뾰루지가 얼굴에 번지면서 가려움까지 동반해 결국 병원을 찾았다.
아름다운나라피부과 김현주 원장은 “과거에는 없던 DIY 화장품 트러블 환자가 1주일에 7~8명은 내원한다”며 “심하면 피부 발진이 온몸으로 퍼지고, 물집이 흉터를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셋째, 비누의 경우 산성도(pH)를 맞추지 못해 피부가 망가질 수 있다. 인체 피부는 pH 5.5의 약산성. 하지만 pH 8~9 의 강알칼리 비누를 만들 경우 피부를 보호하는 표피층을 녹인다. 비누 사용 후 피부가 매끈해졌다면 의심할 수 있다.
자신에게 좋다고 남에게 권하지 마라
화장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기 위해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김한성 연구원은 “여름과 겨울에도 화장품의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길게는 6개월씩 테스트를 한다”며 “이런 과학적인 지식과 규격화한 시설 없이 화장품을 만들다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화장품 제조의 불편함을 덜어주기 위해 재료를 세트로 만들어 파는 회사들도 인터넷에서 성행하고 있다. 베이비 파우더, 탈모 방지용 샴푸, 아토피 환자용 크림 등 기능성 화장품 재료는 물론 첨가제·보존제·유화제 등도 판매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이 화장품 제조업 허가를 받지 않은 일반사업자다. 신고필증을 인터넷에 올려놓은 회사도 신고번호가 흐릿하게 처리돼 있다. 이 경우 부작용에 대한 피해 보상은 물론 제품의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이미 2007년 화장품 DIY키트가 화장품 법규를 위배한 불법 행위임을 천명했다.
대한피부과학회 박기범 홍보위원장은 “화장품은 약과 같아 잘못 쓰면 독이 된다”며 “DIY 화장품은 오랜 기간 피부 반응을 시도해본 뒤에 사용하고, 남에게는 가능하면 권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