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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25 대상방’을 아십니까?

최종길 |2009.04.23 10:04
조회 110 |추천 0

1999년 ‘4.25 대상방’을 아십니까?

파룬궁 수련인 1만명 수련 자유 요구

등록일: 2009년 04월 23일 07시 26분 26초

  1999년 4월 25일, 국무원 청원사무실이 있는 베이징 중난하이를 찾은 파룬궁 수련생들. 맞은 편 붉은 벽이 중공의 정치 중심지 중난하이다.ⓒ 명헤망 4월 25일은 중국의 파룬궁 수련생 1만 명이 당국의 파룬궁 탄압에 평화적으로 청원한 ‘4.25 대상방’ 10주년이다. 이 사건으로 파룬궁은 국제사회에 알려지게 됐으며, 위기감을 느낀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은 3개월 후 대대적인 파룬궁 탄압에 착수했다.

  파룬궁은 1993년 개최된 동방건강박람회에서 최고상인 ‘학제과학진보상’과 ‘특별금상’을 수상했다.ⓒ 명혜망 센세이션 일으킨 파룬궁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선생은 장춘시에서 제 1기 파룬궁 학습반을 개최하고 전수에 들어갔다. 당국은 1993년 ‘중국 기공 과학연구회 직속 공법 등록증’을 발급하고, 국가 주관 행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명예증서를 수여했다.

1993년 개최된 동방건강박람회 최고상인 ‘학제과학진보상’과 ‘특별금상’을 동시에 수상했으며, ‘대중에게 환영받는 기공사’ 칭호를 받는 등 대중적으로도 주목받기 시작했다.

  중국 정부가 주최한 아시아체육대회에서 만 명의 수련생들이 파룬궁 연공을 시범보이고 있다. 중국 북부 선양(瀋陽)ⓒ 명혜망 1995년에는 저서 전법륜(轉法輪)이 관영 중국방송TV 출판사에서 출판됐고, 이듬해 1월 베이징청년보 선정 베이징 10대 베스트 셀러에 등극했다.

국가체육총국은 1998년 5월 의학전문가로 구성된 연구팀은 광둥성 파룬궁 수련생 12553명을 표본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상의 97.9%가 파룬궁 수련 이후 병을 치료했거나 호전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장은 보고에서 “파룬궁 공법의 효과가 우수하고 사회의 안정과 정신 건강에도 효과가 뛰어나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는 아주 확실하다”고 밝혔다. 다롄과 베이징에서도 유사한 연구가 진행됐고 비슷한 결과를 얻었다.

  1999년 4월 25일 베이징 중난하이 앞. 중국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청원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명혜망 근거 없이 시작된 탄압

1996년 6월 17일 국무원 기관지인 ‘광명일보’는 파룬궁을 비판하는 평론을 발표했다. 1996년 7월 24일 중국 신문출판부는 파룬궁 출판물 발행을 전면적으로 금지한다는 통지를 중국 전역에 발송했다.

1997년 초 공안부는 전국 공안국에 ‘파룬궁이 사교라고 규정할 만한 증거를 수집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모든 공안국에서 ‘어떠한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는 보고가 접수됐고 조사 작업이 중지됐다.

1998년 5월 중국과학원 소속 과학자인 허쭤슈(何祚庥)는 베이징 TV와 인터뷰에서 쑨(孫)씨 성을 가진 중국과학원 대학원생이 파룬궁을 수련하다 정신병에 걸렸다고 거짓 증언한 뒤, 파룬궁을 ‘봉건미신’으로 규정했다. 파룬궁 수련생들은 곧바로 베이징TV에 진상을 규명할 것을 촉구했고, 조사 결과 허쭤슈가 주장한 쑨씨는 파룬궁 수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베이징TV는 ‘방송국 설립 이래 최대 실수’라며 사과와 함께 정정보도했다.

1998년 7월 21일 공안부 1국은 공정[1998] 제555호 ‘파룬궁 조사를 전개하는 것에 관한 통지’를 발표했다. 당국은 통지에서 선(先) 판결, 후(後) 조사를 천명했다. 판결은 파룬궁 핵심 인사들이 파룬궁을 이용해 위법 행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통지에 따라 각지 공안국은 파룬궁 연공장 폐쇄, 수련자 강제 해산, 가택 몰수, 재산 몰수 등을 아무런 제약 없이 진행했다.

1998년 하반기 전(前) 인민대표대회 위원장 차오스(喬石, 1997년 실각 당시 서열 3위)를 중심으로 한 퇴직 고위 간부들은 파룬궁에 대한 심층 조사를 토대로, “파룬궁은 국가와 국민에 백가지 이로움이 있을 뿐, 해로운 점은 하나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장쩌민을 대표로 하는 정치국에 조사보고서를 제출했다. 공안당국의 탄압 정책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당국의 석연치 않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파룬궁 수련자는 꾸준히 증가해 99년 초 당국 집계로 수련자가 7천만 명을 넘어섰다.

  중난하이에 모인 파룬궁 수련생. 1만 명이 운집했지만 물리적 충돌이나 교통 방해가 없을 정도로 평화롭게 진행됐다.ⓒ 명혜망 희망 보여준 4.25

1998년 베이징TV에 출연해 파룬궁을 허위 비방한 바 있는 허쭤슈는 1999년 4월, 톈진교육대학 발간 ‘청소년과기박람’지에 ‘나는 청소년이 기공을 연마하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는 문장을 발표했다. 허쭤슈는 이 글에서 1998년 베이징TV가 파룬궁을 비판한 프로그램에서 그가 제시한 예를 다시 인용했다. 베이징에서 이미 허위 사실로 밝혀져 당국의 제재를 받은 허쭤슈는 지역을 바꿔 톈진에서 유사한 문장을 발표한 것이다. 톈진시의 파룬궁 수련자들은 톈진교육대학과 관련 기관에 사실을 바로 잡을 것을 요청했다.

4월 23일, 24일 톈진시 공안국은 무장경찰을 동원해 진상 규명을 요청하던 파룬궁 수련자들을 구타하고, 45명을 체포했다. 톈진시 당국은 석방을 요구하는 파룬궁 수련자들에게 중앙 정부가 개입했다고 밝히고 베이징으로 가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건의했다.

이 사실은 전국의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순식간에 알려졌고, 4월 24일 저녁부터 베이징 국무원 청원사무실이 위치한 중난하이(中南海)로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고, 25일 아침에는 이미 만여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사무실 앞에 청원을 위해 길게 늘어섰다.

4월 25일 오전 8시 15분, 주룽지(朱镕基) 총리 일행은 국무원 정문(서문)에서 나와 큰길을 건너 수련생들 앞에 섰다. 수련생들은 박수로 총리를 맞이했다. 주 총리는 “여러분은 무슨 일로 왔는가? 누가 오라고 했는가?” 물었다. 수련생들은 “우리는 파룬궁 문제를 알리러 왔으며, 누가 조직한 것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주총리는 “왜 서신으로 상방(청원)하지 않는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왔는가?”며 물었다. 한 수련생이 “편지를 보냈지만 전혀 회신이 없었다”고 답했다. 주총리가 “나는 당신들 문제에 대해 답변을 보냈다”고 하자, 수련생들은 “우리는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주총리는 파룬궁 수련생들에게 대표 몇 명을 보내 자세한 상황 설명을 할 것을 요청했다.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고, 주룽지 총리는 임의로 몇 사람을 지목해 국무원으로 같이 들어갔다. 당시 수련생들은 행인들의 보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도로쪽으로 한 줄로 늘어섰으며, 현수막·전단지·구호 등을 찾아 볼 수 없었다.

25일 정오 경, 파룬따파 연구회의 리창(李昌), 왕즈원(王治文)과 베이징 수련생 3명은 파룬궁을 대표해 국무원에서 정부 관리와 회담을 진행했다. 수련생들은 ① 톈진에 감금된 파룬궁 수련생 석방, ② 파룬궁 수련인들에게 편안한 수련환경 제공, ③ 파룬궁 서적 출판 허용 등, 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정부측에서는 국무원 청원사무실 책임자, 베이징시 청원사무실 책임자, 톈진시 청원사무실 책임자가 교대로 회담에 참가했다. 저녁이 되자 톈진시는 중앙의 지시에 따라 구금된 모든 파룬궁 수련생을 석방했고, 수련생들은 자진해산했다.

중국 언론과 외신은 중국 역사상 가장 이성적이고 평화로운 상방이라 표현하며 1만명의 수련생이 참가한 4.25 상방에 대해 상세하게 보도했다.

  톈안먼 광장에서 사복경찰이 파룬궁 수련생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 명혜망 돌아올 수 없는 강 건넌 장쩌민

국내외의 평가에도 불구하고 4월 25일 밤, 중공 총서기 장쩌민은 정치국 상무위원과 주요 부서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편지에서 장쩌민은 ‘4.25 상방사건은 배후 실력자의 ‘계획된 지휘’가 있다고 비난했다. 이 사실은 『일급비밀, 중앙반공청 전보 [1999] 14호 ‘중공 중앙반공청이 ‘장쩌민동지가 정치국 상무위원과 관련 부서 지도자 동지들에게 보낸 편지’를 인쇄발행하는 것에 관한 통지』에 기록돼 있다.

1999년 5월 하순부터 각지 공안국은 파룬궁 수련생의 연공활동을 금지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주요 파룬궁 수련생들은 공안의 조사와 감시, 미행, 도청을 받기 시작했으며, 주거지 이탈이 금지됐다.

6월 7일 장쩌민은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파룬궁 문제는 깊은 정치사회 배경과 복잡한 국제배경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는 1989년 당시의 정치풍파(6.4 톈안먼 사태) 이래 가장 심각한 사건”이라고 말했다.

장쩌민의 발언이 담긴 문건은 13일 각지로 하달됐다. 이 사실은 『일급비밀, 중앙반공청 전보 [1999] 30호 ‘중공중앙반공청이 ‘장쩌민동지가 중앙정치국 회의에서 말한 ‘파룬궁’문제의 긴급한 처리와 해결에 관한 발언’을 인쇄발행하는 것에 관한 통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위의 두 문서는 일부 중공 고위 간부가 폭로하면서 드러났다. 문건을 공개한 간부들은 장쩌민이 4.25 상방을 개인 권력에 대한 과도한 보호심리로 대했다고 밝혔다. 이는 “도대체 국외 및 서양과 관련이 있는가 없는가? 배후에 이를 진두지휘한 실력자가 있는가 없는가?”라고 반문하는 과정에서 드러난다. 장쩌민은 탄압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실행을 명령한 것이다.

7월 19일 장쩌민은 파룬궁을 전면적으로 탄압하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고, 20일부터 전국적으로 파룬궁 수련생 체포가 시작됐다.

  공안의 고문과 구타로 사망한 파룬궁 수련생 자오신의 사망 직전 모습.ⓒ 명혜망 최소 3259명 사망, 장기적출 횡행

탄압 10년째를 맞는 4월 현재, 최소 3259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탄압으로 사망했다. 2001년 10월 말 중공 정부의 내부 통계에 따르면 사망한 파룬궁 수련자는 이미 1600명을 넘었다.

현재 불법 판결을 받은 수련생은 최소 6천명, 불법 노동교양형을 받은 수련자는 10만 명을 넘어섰다. 수천 명이 정신병원에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약물을 주입당해 장애인이 됐다. 중공 당국은 각지 공안, 행정, 사법기관을 총동원해 파룬궁 수련자를 가정, 직장에서 격리시켰으며, 재산을 몰수하고 법적 근거나 절차 없이 강제로 노동교양소에 수감해 고문을 가했다.

2006년 3월, 중국 선양시 쑤자툰 노동교양소에 수천 명의 파룬궁 수련생이 감금되어 있으며, 살아 있는 상태서 장기를 적출당한다는 사실이 폭로됐다. 이후 관계자들의 증언이 잇따르면서 ‘생체 장기적출’이 중국 전역의 노동교양소와 군과 당국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이뤄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대기원 편집부 http://www.epochtimes.co.kr/news/article.html?no=13702  대기원 편집부의 전체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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