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야동 보는 여자의 고백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두시 반. 드라큘라가 눈을 뜨고 좀비들이 무덤에서 일어나며 야동 매니아들이 컴퓨터를 켜는 시간이다. 지금 내 컴퓨터 C:드라이브에는 My Documents – 회사 자료 – 2007년 – 10월 – 업무일지 – 논병아리 순으로 차례차례 폴더가 정리 돼 있다. 마지막 폴더인 논병아리에서는 2007년 10월의 업무 일지 파일도 논병아리에 대한 자료도 찾을 수 없다. 대신 C:드라이브 용량의 절반 가량을 잡아 먹고 있는 동영상 파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클릭하기 전 주위 점검 필수, 스피커 볼륨 체크 필수, 관람 후 히스토리 삭제는 옵션. 그렇다. 내가 바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어 미스터리에 싸여 있던 ‘야동 보는 여자’다.
성욕과 식욕은 비례한다고 했던가? 그런 날이 있다. 뭔가 고픈 날. 생리를 할 때쯤이면 뱃속에서 초콜렛을 잡아 먹는 괴물이 눈을 떠 재빨리 초콜렛을 던져 주지 않으면 내 온 몸을 집어 삼킬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 것처럼 내면 깊은 곳 어딘가에서부터 허기가 느껴질 때가 있다. 식욕이 아니라고 판단되는 순간, 바로 그때가 야동이 고플 때이다.
여자들도 야동을 보냐고? 물론이다. 하지만 남자들이여, 이 대답에 “하하, 그래 그럴 줄 알았어. 여자도 사람이니까”라며 돌아서지 말라. 아직 설명하고 싶은 것이 남았다. 여자와 남자는 다르지 않다가 아니라 여자는 이런 것에서까지 남자와 다르다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
오늘도 쭈뼛쭈뼛 눈치만 보며 키스할까 말까 고민하는 남자 친구. 벽이 부서져라 밀어 붙여줘도 좋겠건만 점잖게 키스만 하다가 가슴으로 내려가는 손길에 작은 앙탈 한번 부리자 바로 손길 거두시는 센스 덕분에 오늘도 허전함 가득 안고 귀가할 수 밖에. 아~ 그대는 내 안에 숨은 짐승을 만족시켜 주기엔 너무 젠틀해요.
이전 같으면 주린 속을 안고 잠자리에 들었겠지만 이제 나에게는 C:드라이브에 사는 애완동물, 논병아리가 있다. 이런 날은 어쩔 수 없이 약간은 하드한 스토리를 찾게 된다. 남녀가 아무 갈등 없이 침대로 직행해 순조롭게 일을 치르는 것보다는 남자의 강압적인 요구, 여자의 두려워하는 눈빛 또는 앙탈, 점점 더 짐승이 되어가는 남자… 이런 것들이 필요한 밤이다.
그래도 또 마음은 약해서 너무 리얼한 건 못 본다. 여자는 별로 무섭지도 않으면서 무서워하는 척, 티가 팍팍 나야 하며 남자는 거칠게 행동하되 욕을 하거나 폭력을 써서는 안 된다. 대부분의 야동은 어설픈 연기로 끊임없이 연출된 상황임을 주지시키며 나를 안도케 하지만 어쩌다가 실제 상황인 것처럼 보이는 몇몇 영상은 나를 당혹감에 빠뜨린다. 만약 정말 있었던 일을 찍은 거라면 강간 영상을 보고 즐기는 나는 뭐란 말인가. 이럴 땐 나를 변태로 만든 남자 친구가 살짝 원망스럽기도 하다.
야동에 눈을 뜬 것은 의외로 늦은 나이였다. 십대 때 우연히 보게 된 포르노에 대한 기억은 더러움 그 자체였다. 때문에 이십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야동을 찾아본 적도 없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의해 우연히 보게 된다 해도 당연하다는 듯 찡그리며 외면해 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유일한 스킨십은 키스와 따뜻한 포옹(그것도 뒤에서), 딱 거기까지였다.
그러던 이십대 후반의 어느 날, 그때도 아마 새벽 두 시 반쯤 되었을 것이다. 생리 기간이었을 지도 모른다. 케이블 채널에서는 영화 <섬머 타임>을 내보내는 중이었다. 룰라 출신 모 양의 영화 데뷔작으로, 내용은 황당하다 못해 점점 코믹으로 흘러갔지만 그녀와 상대 남자의 베드신에서 느꼈던 그 기묘한 포근함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마치 혈기왕성한 고등학생처럼 가족 중 누군가 거실로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면서도 리모콘의 전원 버튼에 손가락을 올린 채 브라운관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뭐 그다지 훌륭한 베드신은 아니었다.
모 양의 퍼런 아이섀도와 뻘건 루즈, 입을 벌리고 헐떡거리는 모습은 예전에 나를 포르노에서 멀어지게 만들었던 그 영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여자의 살진 둥근 가슴은 나도 한 번 잡아 보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고, 서로를 핥는 혀, 쾌감 어린 탄성은 나에게 그 이상 깊어질 수 없는 남녀의 친숙한 결합으로 다가왔다. 살색 영상이 더 이상 역겹게 느껴지지 않을 때, 그때 나는 비로소 야동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로 심심하면 직접 야동을 찾아서 보곤 했다. 5분짜리 짧은 무료 영상들이 모여 있는 사이트를 찾아 다니거나 시간이 남아도는 휴일에는 자료 공유 사이트에 가서 내 돈을 주고 영상을 다운 받기도 했다. 어쩌다 메일로 날아 오는 성인 사이트 광고는 더 이상 짜증스러운 수신거부 대상이 아닌 반가운 손님으로 둔갑했다. 살짝 둘러본 후 결제는 안 하고 빠져나올 때의 그 상콤함이란.
그러나 보면 볼수록 야동의 세계는 참으로 나를 외롭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포르노 시장은 철저히 남자들의, 남자들을 위한, 남자들에 의해 돌아가는 세계였기 때문이다. 아~ 정말 어찌나 취향에 맞는 것을 찾기가 힘든지. 남녀 사이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삭막한 모텔 방에서 냅다 피스톤 운동만 15분씩 해대는 영상은 보다가 도중에 깜빡 졸 정도로 지루했다.
성기와 유두 근처를 오래오래 클로즈업 하는 카메라 앵글 역시 진정 사양이다. 그게 남자 것이든 여자 것이든 그런 열악한 화질 속에서는 왠지 오징어 냄새가 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체모라도 나올라 치면 제 아무리 펄펄 끓어오르던 성욕도 저만치 달아나 버렸다. 조금씩 스토리를 가미한 것도 있었는데 ‘부장님 사무실에선 무슨 일이?’ 라든가 ‘애인 바꿔 먹기’ 등은 그 조악함이 우습다 못해 존재론적 회의를 불러 일으킬 정도여서 “차라리 그냥 해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였다.
여자의 성감대는 뇌라고 했던가? 그렇다. 나는 섹스하기까지의 분위기를 사랑한다. 서로에게 화가 나 있는 것도 좋다. 부적절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금지된 장난이나 처음으로 선을 넘으며 망설이는 상황 등은 나를 빳빳하게 흥분시킨다. 이런 배경이 뒷받침 될 때야 비로소 뒤에 이어지는 애무나 인터코스가 제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요구를 가장 근접하게 만족시키는 것을 마침내 찾았으니 다름아닌 에로 영화다.
<색계>에서 탕웨이에게 싫은 소리를 내뱉으며 거칠게 속옷을 잡아 찢는 양조위의 우울한 얼굴은 나까지 덩달아 자극했다. <정사>에서의 오락실 장면은 또 어떤가. 정숙한 이미숙의 얼굴과 이정재의 젊고 고독한 표정, 그리고 그들의 위험한 관계만큼 최고의 흥분제는 없었다. <색즉시공> 같은 B급 영화라도 상관 없다. 가슴을 애무하는 손길을 “으응~안돼~” 하며 뿌리치는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후끈 달아오르니까.
단, 야한 것 한번 보자고 영화 한 편을 다 보기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기존의 야동으로 만족하려고 노력해 보지만 제대로 흥분하고 싶은 날, 그 욕구가 채워지지 않으면 에로 영화의 주요 장면만을 편집해 놓은 자료를 찾아 헤맬 수 밖에 없다.
참, 남자들 중에는 야동 보는 여자에게 꼭 물어보고 싶어하는 게 있던데 야동을 보면서 자위를 하는지 안 하는 지 궁금해 하더라. 물론 여자들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안 한다. 아무래도 여자에게는 발딱 서서 풀어달라고 다그치는 제 2의 분신은 없으니까 남자보다는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감상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모를 일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야동을 틀어 놓고 급하게 욕구를 해결하고 있는 여자가 있을 수도.
PS: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는 금물. 이 글을 읽고, 거부하는 여자친구에게 내숭 떨지 말라며 덮치다가 보기 좋게 뺨 한대 얻어 맞을 수 있다. 한 가지 도움을 드리자면 여자 친구가 공포물, 피, 일본 애니 등에 유난히 집착한다면 뺨 맞을 확률은 반으로 줄어 든다는 것.
Editor 황수현
Designer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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