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표준
이제부터 나는 이 파도를 대자연으로부터 잠시 빌린다. 일 분도 안 되는 짧은 라이딩 동안, 이 거대한 파도는 이 나약하고 작은 인간을 받아들여 바다와 하나가 되게 허락하는 것이다. 이 바다의 아들은 나에게 스피드와 무대를 제공하고, 나는 그 고귀한 선물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보드에 몸을 맡긴 채 나를 표현한다. 파도의 끝에 올라갈 때마다, 다시 떨어져 내려올 때마다 그 동안 연습하고 실패하고 고민했던 순간들이 머리 속에 스쳐간다. 그리고 마침내 태풍 파도에서 내가 몇 개월간 준비해 온 동작을 성공했을 때, 여기까지 오게 한 내 자신에, 써핑이라는 위대한 스포츠에,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대자연에 감사하게 된다.
고성용
파도에 취해 트랜스 상태로 라이딩을 하는데, 뒤를 따라오던 파도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부서지며 따라오는 파도에 시선을 던지는 순간 엄청난 굉음을 내며 하얀 파도가 내 얼굴을 강타했다. 나약한 인간은 파도의 힘에 중심을 잃고 날아가서 물 속에 거꾸로 박혀버렸다. 이런 일은 하루에도 수 차례 겪는 다반사지만 이 번엔 뭔가 느낌이 달랐다. 수면으로 떠올라 숨을 쉬려 하는데 코가 아팠다. 멀리서 표류하고 있는 보드를 찾아 리쉬(leash code)를 잡아당겨 나에게로 부른 후 그 위에 팔을 얹고 물 위로 떠올랐다. 손으로 코를 만져보니 피가 나고 있었다.
고성용
뼈도 얼얼한 걸 보니 부딪힌 것 같은데 어디 부딪혔는지 너무 순식간에 파도에 쓸려서 알 수가 없었다.
보드에 떨어지는 피가 선명할 정도여서, 일단 지혈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나왔다. 모래사장에 도착해서 보드를
들려는데 보드에 상처가 나 있었다. 코를 보드에 받았구나… 보드는 수리해야할 만큼 깨져있었다. 오늘 꺼내어
정성스레 왁스를 칠한 새 보드인데 마음이 아팠다. 다행히 코뼈는 무사했고 피부만 보드 모양으로 찢어졌다.
보드가 깨졌는데 코뼈는 멀쩡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피부가 좀 찢어졌다고 매일 오는 것도 아닌 태풍 써핑을
그만둘 순 없었다. 태풍을 기다려본 그 어떤 써퍼라도 그랬을 것이다.
대충 지혈을 한 후 점점 거세어지는 바다로 다시 들어갔다 .
사진 구지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