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일수록 기업 내부 조직 관리에 대한 중요성이 커진다. 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업 철학은 물론 미래 성장 가능성과 조직문화에 대한 학습을 통해 구심점을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최고교육책임자 CLO다. CLO는 기업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파트너로 기업 성장을 이끄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 사이에서도 CLO에 대한 관심이 여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당장 눈앞에 놓인 불황에 움츠리기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인재'에 투자해 경쟁력 있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강한 의지로 풀이된다.
CEO, Chief Executive Officer의 준말로 최고경영자란 뜻이다. CEO는 언론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사장, 회장보다 흔하게 쓰이는 말이 됐다. 그러나 CLO(최고교육책임자)는 다소 생소하다. 금융권 종사자라면 자산담보부증권(ABS)의 한 종류인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을 떠올리기가 더 쉽다. 최고노무담당책임자인 CLO(Chief Labor Officer) 혹은 최고법무담당책임자(Chief Law Officer)와 혼동하기도 한다.
기업 내 최고교육책임자를 일컫는 CLO
CLO는 ‘Chief Learning Officer'의 준말로 기업 내 최고교육책임자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가 안철수연구소의 CEO직을 버리고, ‘CLO' 타이틀을 달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1990년대 중반, 벤치마킹·6시그마·경영리더 양성을 위한 액션 러닝(action learning) 등의 경영 철학을 직원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책임자를 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CLO란 용어가 자리 잡았다. 당시 GE의 인재개발교육기관인 크로톤빌의 책임자였던 스티브 케르(Steve Kerr)가 초대 CLO를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왜 지금 CLO가 주목받는가
실물경기가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구조조정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오히려 이럴 때일수록 직원 단속을 철저히 하는 분위기다. 한 차례 IMF 외환위기를 겪은 바 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을 주축으로 직원 역량과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 직원 교육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면서 CLO가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최근 기업들은 인재전쟁(The war for talent) 시대의 한 가운데 있습니다. 특히 글로벌이 화두가 되면서 글로벌 인재 확보 및 육성은 CEO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고 있으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 방향의 조직문화를 구축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조직 내 인재 확보 및 육성의 과제는 CEO의 경영 현안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를 최고경영자의 전략적 파트너 입장에서 미래지향적이고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람이 바로 CLO(Chief Learning Officer)입니다.”
송영수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의 설명이다. 송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자주 참가하는 ASTD(American Society for Training & Development) 국제 컨퍼런스에는 CLO 커뮤니티 및 포럼이 중요한 행사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비용 면에서도 오히려 이득이란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최근까지 외부 인재 영입을 통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대기업마다 해외에서 인재를 영입해 오는가 하면 외국인 전문가를 임원으로 데려오는 등 순혈주의를 뛰어넘는 인사정책을 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용 대비 효과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 회사들의 경우 오히려 “해외파가 국내 사정을 무시하고 무리한 전략을 펴 조직 전체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불만도 일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007년 말 ‘CLO 역량개발 연구'란 보고서를 낸 이정택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해외파가 더 잘하고 국내파가 상대적으로 뒤진다는 건 IMF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 간의 실험에서 허구인 것이 드러났다. 국내외 사정을 동시에 이해하는 인재라면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우선 조직문화와 비전을 공유하는 내부 교육 시스템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를 관장하는 CLO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라고 말했다. 이정택 선임연구위원은 외부 인재 영입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는 현재 있는 인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지원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열쇠가 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CLO, 종전의 CKO, CHO와 무엇이 다른가
CLO는 임직원 채용과 배치 위주였던 기존 인사담당 임원의 업무를 보다 확장시켜 교육을 총괄하고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밖에 핵심 인재 육성 업무는 물론, CEO의 비즈니스 전략을 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중개자' 역할도 맡고 있어 CEO의 ‘전략적 파트너'로도 불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최고지식책임자(Chief Knowledge Officer), 인사담당 최고책임자(CHO, Chief Human-resource Officer)가 있는데 굳이 CLO를 또 신설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미 국내 많은 기업들에서도 인재 양성의 책임자가 통상 임원급을 말하는 “C(Chief)” 지위에 올라와 있다. 그러나 여전히 조직원의 ‘학습'을 따로 규정하고 이를 전담하는 책임자란 개념이 명확히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지적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종전의 CKO나 CHO와 역할 구분이 보다 명확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전성철 세계경영연구원 이사장은 “종합적 지식을 관리하고 활용하여 지식경영을 추진하는 사람이 CKO, HR 전반을 다루는 역할을 하는 이가 CHO라면 CLO는 기존 CKO(최고지식책임자)의 임무 중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조직원의 ‘학습'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CHO의 경우 CLO 역할에서 보다 확장해 조직 관리까지 총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한국형 CLO 가능한가
GE는 교육 과정에서 공유한 교육 자료를 전사적으로 전달해 실제 기업 실적을 높이기도 한다. 2003년 GE헬스케어 사업부에서 효과를 본 ‘순수추천고객지수(NPS: Net Promoter Score)'는 이후 GE머니와 합작관계에 있는 국내 업체인 현대카드로까지 전파돼 실적 개선에 적극적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안철수연구소의 경우 안철수 CLO 겸 이사회 의장이 매달 직원들을 대상으로 공개 실전토의와 직급별 워크숍을 통해 기업의 전략을 이해시키는 한편 직접 이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다만 ‘CLO가 CEO의 전략적 파트너'라는 데에 대해 공감대를 지닌 삼성, LG, SK, 두산 등 국내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들이 지난해 10월 자발적으로 ‘한국 CLO 포럼'을 결성해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것에서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다만 CLO가 위력을 발휘하려면 조건이 있다. CLO의 역량이 인사담당자 수준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송영수 교수는 “바람직한 CLO 역할을 수행하려면, 종합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CKO 역량은 기본으로 갖추고 그에 더해 조직의 학습에 관한 전략 수립에서부터 실천까지 전 과정을 담당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닐루 살다리 볼보 CLO 역시 “비즈니스에 초점을 맞추고, 비즈니스 니즈와 비즈니스 리더의 니즈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CLO 의 가장 중요한 핵심 역량이다”고 강조했다.
* CLO: 최고교육책임자(Chief Learning Officer)로 기원은 GE다. 1990년대 중반 잭 웰치 당시 회장이 비전·신념·전략과 함께 경영 철학을 직원들에게 교육해야 할 필요성을 느껴 GE의 인재개발교육기관인 크로톤빌의 책임자였던 스티브 케르(Steve Kerr)를 영입해 교육을 총괄케 하면서 CLO란 개념도 처음 썼다.
* CKO: 최고지식책임자(Chief Knowledge Officer). 종합적으로 지식을 관리하고 활용해 지식경영을 추진하는 최고책임자를 뜻한다. 빌 게이츠는 CEO의 자리를 스티브 발머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CKO를 맡았다.
* CHO: 인사담당 최고책임자(Chief Human-resource Officer). 인재개발과 양성, 배치 및 관리 등을 총괄한다.
- 박수호 / 매경이코노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