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미 Ave Maria 2006년 파리 공연
어린 시절에 나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악가가 되고 싶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는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 내 페이퍼의 타이틀에서 나는 내 '편협한 기억'에 관해 충분히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직도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편협하고 지극히 주관적인 기억에 따르면 아마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의 첫번째 무늬는 엔리코 까루소Enrico Caruso의 어떤 오페라 한 곡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제법 전문적인 공부를 하게 되면서-여전히 독학이었고 돈을 내고 정식 레슨을 제대로 받지도 못했지만-그 곡이 'Paillasse'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극장에서 공연을 하는 광대가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자신은 웃기는 공연을 해야 하는 처지를 노래한다는 것이 그 곡의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복합적인 감정의 울림이 전해주던 기괴하고도 독특한 느낌을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우는 지 웃는 지 알 수 없는 외침에 담긴 절묘한 파동이 까루소의 놀라운 울림과 독특한 발성에 실리면 형용할 수 없는 전율이 된다.
복식 호흡과 창법을 배우고 이태리와 독일의 여러 가곡들을 하나씩 익혀나가던 당시를 떠올리면 여전히 행복해진다. 비록 중간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도 내 책장에는 '까루소와 질리'-이 두 사람이 왜 축이 되는지는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라 믿는다-를 축으로 티토 스키파와 쥬시 비욜링, 쥬세페 디 스테파노, 프랑코 코넬리를 거쳐 소위 '3명의 테너'라고 불리는 카레라스, 도밍고, 파바로티의 명음반들이 즐비하다. 이제는 구할 수도 없는 RCA社의 복원 음반들도 카세트 테입과 LP와 CD로 나뉘어져 있다. 지금은 전혀 호흡이 되지 않지만, 아주 가끔씩, 정말로 드물게 슈만의 '시인의 사랑'이나 다른 가곡집의 악보를 펼쳐놓고 피아노 앞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있다.
처음 그녀(조수미: 본명 조수경)의 공연을 직접 보았을 때를 떠올린다. 여전히 내 팸플렛 목록의 거의 첫 자락에 있는 그녀의 사진을 본다. 검은색 머리칼과 가슴이 많이 파인 검은 옷을 입고 입술만 아주 붉게 칠한 모습의 사진 속 그녀는 약간은 도도한 듯 내리깐 시선이다. 94년 7월 23일 토요일 늦은 저녁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공연이었다. 소문으로만 듯던 그녀의 육성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오페라 극장의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온통 그녀의 목소리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녀는 이미 자신의 몸과 그것을 통해 울리는 소리를 자유자재로 다스릴 수 있는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그런 그녀의 일종의 '도도함'이 싫지 않았다. '겸손'과 '수줍음'이 미덕인 우리 사회에서 어쩌면 좋게만 보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그녀의 태도는 마술같은 목소리와 압도적인 비브라토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굳이 카랴얀이라는 권위가 합세하지 않았더라도 그녀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가 자서전 같은 에세이집을 냈을 때도 사람들은 이러쿵 저러쿵 하기보다는-내용은 어떻게 생각하면 무슨 위인전 같이 구성되었던 것도 사실이다-오히려 더 놀라와하고 신화화했던 것 같다.
오랜만에 그녀의 공연을 다시 보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적으로 더 자유로워진 것 같았고 여전히 아름다왔다. 그런데 함참 듣고 있다보니 그런 것과는 다른 어떤 것들이 느껴졌다. 예전의 그녀가 일종의 '사이렌'처럼 사람들을 홀리고 영혼을 좌지우지했다면 지금은 그런 그녀의 모습보다 노래가 훨씬 더 앞으로 나와있는 느낌이랄까. 마치 피아노나 어떤 악기 하나가 고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자에 따라 자기의 소리를 내는 것과도 같았다. 폭발할 듯한 열정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지만 여전히 내부에 잠재되어 있는 듯 했다. 겉으로 내보이는 선율은 아주 위태로우면서도 고요하고 금방 터질 듯 하면서도 견고하다. 이 기묘한 균형이 몰고오는 효과는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왔다.
마침내 공연의 말미에 그 내막이 소개되는 순간, 그 기묘한 아름다움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술 행위 그 자체와 거기에 몰입하는 주체의 개인사는 필수불가결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개인사를 정면으로 비추어 그 예술 행위를 이해하는 것처럼 몰상식한 방법도 없지만 또 개인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그 예술 행위를 파악하는 것도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 형식주의자들이 자주 범하는 오류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이 '결정적 순간'은 그녀의 개인사에서 비롯한 고통과 슬픔이 예술 행위와 팽팽한 균형을 이루면서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의도했건 그렇지 않건간에 개인사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지도 않고 또 그럴 필요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될 것이다. 다만 이 기묘한 아름다움이 아주 오랫동안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과 에너지를 줄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지극한 아름다움이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관한 하나의 예를 보여주는 그야말로 '결정적 순간'의 탄생을 이렇게라도 기념하고 싶다.
─ 몽상의 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