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yone can become angry-that is easy.
But to be angry with the right person,
to the right degree,
at the right time,
for the right purpose,
and in the right way- that is not easy.
누구나 화를 낼 수는 있다. 그건 쉽다.
허나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한 정도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목적으로
적절한 방식으로
화를 내는 건. 그건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남긴 말이다.
너무나 절절한 방식으로 사회화된 덕분에 '화'라는 감정은
무조건 못된 거라고.
화를 낸다는 것은 어쩐지 내가 잘못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나는 내가 당연히 화를 내야 할 대상에게 그에 합당한 시간과 정도와 방식을 취해
요목조족 따지면서 화를 낼 줄을 몰랐다.
그래서 적절히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무척이나 부러웠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을 모델링하면서 열심히 연습해보지만
지금도 나는 화를 내는 것에 서툴다.
우리가 화를 너무 억누르다보면 내가 화가 나는 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오히려 주변 친구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너는 화 안나?'
그래서 난 요즘에야 화를 적절한 방식으로 '잘'내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기는 하나
오랜 생활 속에서 내 몸에 자연스럽게 배어온 화 안내고 넘어가기라는 방식은
쉽게 떨어져나가 고쳐지기를 거부한다.
그래도 나는 계속 노력은 해볼 것이다.
화를 '안'내는 게 능사는 아니며
화를 '안'내는 게 화를 내는 것보다 더 큰 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에.
출처 | 화
많은 사람이 화를 내는 것을 어렵게 생각한다.
그들은 당연히 화가 나는 상황에 처해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정도로 화를 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는 화를 참다참다 나도 모르게 폭발적으로 화를 내 놓고
더 자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그런 것을 보면 '화'라는 격렬한 감정을 적절한 방식으로 잘 표현하는 가 마는가가
어쩌면 정신건강의 지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때에 타인에게 화가 나는 가를 생각해보면
일반적으로 '나'라는 경계가 침범당했을 때 화가 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타인의 나의 경계를 침범할 때(상징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우리는 화를 냄으로써 '거기까지!!'라고 표현하는 거다.
그러면 우리가 '거기까지!!'라고 화로써 표현하기 전에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타인에게 미리 경고를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타인이 우리의 경고를 받아들이고 우리의 경계를 존중해준다면
우리는 구태여 화를 낼 필요가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모든게 사람이 하는 일이라 꼬이고 얽히기 마련이다.
내가 미리 경고를 못했을 수도 있고, 그가 우리의 경고를 못봤을 수도 있고,
그가 그 경고를 무시하기로 작정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그만. 거기까지'를 표현하기 위해 화를 내는 거다.
그리고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그들의 생각 가운데는 '~해야만 한다'는 당위적인 생각이 보통 사람들보다 많은 것 같다.
그들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기준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당연히 ~해야만 했던 일이 나타나지 않거나 어그러지면
어김없이 화를 낸다.
자신에 대한 기준이 높다면 그 기준에 맞게 했었어야 했던 일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타인에 대한 기준이 높다면 그 기준에 맞게 해줬어야 했던 일을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거다.
이런 사람들은 사고 패턴은 영어 표현이 생각난다.
Must/Should/Ought to
그래서 나는 이런 사람들을 'Should가 강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가진 모든 감정은
진화론적으로든 심리학적으로든 생리학적으로든 사회학적으로든 정치학적으로든 등등등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거다.
문제는
어떤 대상에게, 어느 정도로, 어느 방식으로, 어느 시기에, 어느 목적으로
얼마나 잘 표현하는 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