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전 유대교 분파 오늘날과 너무나 흡사 이방 왕과 결탁, 다스리는 도구는 권력, 교리 다르면 이단 규정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만 생각했지, 자신들이 하나님을 대적했을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지 못했던 바리새인. 오늘날 한국교회가 바로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하고 있다며 회개를 외치는 목소리가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다.
박득훈(언덕교회) 목사는 “현 교계가 하나님이 손쓰시지 못할 정도가 돼가고 있어 눈물 흘리며 호소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모 대학교수는 “현 목회자들의 행위가 과거 바리새인과 너무도 같다며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외치고 싶다”고 그 심정을 밝혔다. 그렇다면 어떤 점에서 이들은 심각성을 느끼고 경각심을 심고자 하는지 좀 더 자세히 고찰해보자.
하나님이 택하신 아브라함을 통해 육적인 혈통으로 말미암아 선민이 된 이스라엘은 대를 거쳐 유대교로 그 맥을 이어온다. 이들을 예수께선 ‘뱀, 독사의 자식, 소경, 외식하는 자’등으로 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와 같이 심판 받았던 당시의 상황을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을 재조명 해보자.
이방으로부터의 유대인 독립운동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BC 323년 바벨론에서 사망하고 이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팔레스타인을 통치한다. 이후 BC 198년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가 점령했다. 이 두 왕조로 인해 유대교를 신봉하던 백성들에게도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된다. 급기야 안티오코스 4세에 와서는 칙령을 내린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관습을 버리고 한 백성이 되어야 한다”고 하며 유대인의 이름까지 헬라어로 바꾸게 했다. 이때 유대인은 결합해서 마카비 독립운동을 벌인다. 특히 이방신에게 희생제물을 바치려하는 유대인을 처단했던 마카베오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안식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은 안식일에는 싸우지 않았기에 희생도 감수해야 했다. 이 저항에서 유대인들은 종교에 대한 권한을 획득하고 안티오코스 칙령도 철회됐다.
유대교 분파의 원인은 정치적 문제
유대교의 종파가 여러 갈래로 나눠진 것은 이스라엘 종교사 후반에 등장한다. 조직신학자 허호익 교수는 “이러한 종파의 분화가 일어난 원인으로 무엇보다도 포로 후기의 정치적·문화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밝혔다. 유대인들은 사회적 계층과 종교적 신념에 따라 정치적인 문제와 종교적인 문제에 대해 타협적이거나 비타협적인 자세를 원인으로 대립적인 종파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마카비 독립운동 이후 하시딤을 모체로 에센파, 바리새파, 사두개파, 열심당 등으로 분리됐다. 에센파는 친외세 정책에 반대해 예루살렘을 떠나 쿰란 공동체를 만든 제사장으로 구성된 조직이다. 역시 초기에 친외세에 반대했으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평신도들로 구성돼 율법을 연구하며 이방 시리아의 화친을 최초로 받아들였던 바리새파가 있다. 이와는 반대로 처음부터 친외세 세력이었던 소수의 사두개파와 자신들의 정치적 견해가 다르면 테러도 서슴지 않았던 열심당 등이 있다.
전혀 하나 될 수 없는 종파
이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었지만 하나가 되기에는 서로가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다. 바리새파는 구약의 모든 전통을 지켰다. 토라(모세오경)와 예언과 기록들에 대한 것을 풀이하고 해석하기도 했다. 육신의 부활과 죽음 이후의 삶도 믿었다.
반면 사두개인들은 토라만 인정하고 나머지 구전되는 기록이나 예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죽음 이후의 생과 부활을 믿지 않았다. 에센파는 매우 금욕주의였다. 자손을 유지시킬 명목으로 몇 명을 제외하고는 성도 전체가 서원했고 회당예배를 거부했다.
열심당은 대체로 바리새파와 비슷하나 유대교적 신앙과 율법에 대한 헌신이 순교적 경지에 이르기까지 열광적이어야 한다는 특성이 있다. 이와 같은 각각의 특성들은 서로가 이해하지 못해 하나가 될 수 없었다.
최고의 권력을 자랑한 바리새파
이 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세력을 형성했던 종파는 바리새파라 할 수 있다. 그들은 평신도 계층으로서 포로기 이후부터 율법에 대한 해석을 담당한 그룹이었다. 헤롯 왕 때 바리새파의 수는 6000여명이 넘었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하나님나라의 대제사장을 이방국 시리아의 셀류코스 왕조가 임명했다는 점이다. 셀류코스 왕조는 초창기 대제사장들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사람들을 임명했다. 그러나 영향력은 사실상 바리새파가 더 컸다. 하지만 요한 히르카누스 시대에는 바리새파가 정권에 참여하다가 사두개인들의 모략에 의해 숙청된 사건도 있었다.
1세기 역사학자 요세푸스는 자신도 바리새파였음에도 바리새파에 대해 부정적이다. 바리새파는 그들의 종교적 행동으로 받은 좋은 평판과 이로 인한 대중에 대한 영향력을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한다는 점을 꼬집는다.
당시 바리새인들에 대한 국민들의 신용은 커서 실제 수보다 영향력이 더 컸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용은 정치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큰 세력이 됐다. 알렉산드리아 여왕은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해 정치고문까지 하도록 했다. 바리새파를 인정하는 것이 권력유지에 도움이 됨을 현실적으로 판단한 것이다. 후에는 예루살렘에 있는 강력한 정치세력을 가진 산헤드린에서 상당한 의원 수까지 확보하게 된다.
바리새파와 다르면 이단?
바리새인이라는 명칭은 분리된 사람들이라는 말로, 정결케 하기 위해 스스로 분리됐다. 그들은 성서를 있는 그대로 보고 전통은 중요시하지 않는 사두개파의 보수주의와 대립됐다. 그들은 의식과 성서와 교리적인 면에서 변화를 추구했다. 성서를 확장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성서를 새로운 정세에 맞는 법규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해석원리를 고안해 내기도 했다. 바리새파에서 이탈한 자는 누구나 이단의 혐의를 받았다.
예를 들어 사마리아는 바리새파적 성서 기준으로 봤을 때 모세오경만을 경전으로 한정했기에 이단이 됐다. 사두개파도 역시 글자로 쓴 본문만 고수하고 구전돼 온 모든 첨가물과 해석을 거부했기에 이단자들이 됐다. 그들은 조상들이 율법을 새로 해석해 소위 장로들의 입으로 전해진 설명까지도 성서의 말씀과 동등하게 여겼다. 급기야 이들은 성경의 마태복음 15장에서 입증하듯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다고 나사렛 당이라고 표현하며 예수님을 이단으로 심판했다. 그러나 신학자 마르셀 시몬은 바리새파 사람들에 대해 지나치게 ‘궤변’을 좋아했다고 평가한다.
일제에 포로 당했을 때 신사참배
앞서 유대교의 종파들과 이들의 역사를 살펴봤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의 역사가 우리 한국교회가 치러온 역사와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이방에 의해 강제로 문화 강요를 받았던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역사 속 일제식민지 36년이라는 수치의 시절이 있다.
유대인들은 죽음까지라도 불사해 이방으로부터 그들의 신앙을 지켰다. 한국기독교방송문화원(KCMC)에서 평양부흥100주년을 기념해 2007년에 제작한 신사참배 회개 동영상을 보면 하나님을 향해 예배해야 했던 기독교 지도자들은 교회의 한쪽에 신당을 세웠고, 정오가 되면 동방요배를 하고 이어서 예배를 진행했다.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킨 주기철 목사와 같은 사람은 교단에서 파면돼야만 했다. 게다가 목회자들은 일본의 전쟁을 위해 성도들이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무기구입비용으로 일본에 기증했다. 일본 신사까지 가서 참배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이후 한경직 목사가 이 일에 대한 회개문을 발표하긴 했으나 당시 목회자들은 자리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신앙 공동체를 신이 아닌 사람이 조직
한국기독교는 이후 독립운동에 가담했고 우리나라는 해방됐다. 이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재출범했고, 이들이 민주화와 인권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판단한 교계의 원로가 모여 한 조직을 구성한다. 한경직, 임옥, 박맹술, 한명수, 정진경 목사 등이 교계의 대 사회적인 목소리를 모으고자 한국기독교총합회(이하 한기총)의 모태를 조직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말하고자 한 사회적인 목소리는 정치적 목소리가 포함돼 있었다. 제7회 기독언론포럼에서 심창섭 목사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뿌리는 박정희 군사정권 독재당시, 삼선개헌을 지지하는 보수 세력들을 결집시키려는 김종필의 정치적인 계획에 따른 보수 기독교인들의 결집이다”고 발제했다. 즉, 교계의 원로들이 정치세력과 손을 잡고 한목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유대인의 대제사장이 이방 시리아에 의해 임명됐었던 것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바리새인은 정치적 세력과 결부해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신앙과 관계없는 이방과도 같은 군부정치세력에 의해 세워진 단체가 교계를 대표하게 됐다. 하지만 세상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말하기에 앞서 한기총 내 도덕성 하락이 더 심하다는 평가가 일고 있다. 불법성 때문에 사회에서도 금지하는 10억에 달하는 고액금권선거가 공공연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메시야를 이단으로 규정한 바리새인적 행동은 경계 대상
한국기독교의 대표 단체인 한기총은 그의 설립취지문에서 신구약 성경으로 신앙고백을 함께하는 기독교 여러 교단과 연합단체들과 함께 시대적 소명을 감당한다고 밝히고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라는 목표를 내걸고 있다. 이는 어떠한 신학적 입장도 받아들이고 포용해서 한국교회가 연합해 나가는 데 목표를 둔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연합과 일치는 차이를 없애고 하나로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듯하다. 신구약 성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고 신앙을 할지라도 한기총 산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이단으로 규정지으면 이단이 된다. 이것은 유대교 바리새인들이 그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이단으로 규정하고 예루살렘 밖으로 출회시켰던 것과 유사하다.
사람의 기준으로 물고 뜯는 사이 성경을 기준으로 맹렬히 심판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되새겨야 한다. 과거 하나의 종파였던 바리새인이 정치권력과 연합해 유대교의 대표세력이 된 것을 사람은 인정했을지라도 하나님은 인정하지 않으셨던 점을 오늘날 거울과 경계 삼아야 한다.
- 참고 자료 -
이상호, 신약의 배경사, 정치사.
박정수, 고대 유대교의 종파 형성의 정치적 성격.
허호익, 예수와 유대교 4대 종파.
마르셀 시몬, 박주익 역, 예수시대의 유대교 종파들.
샤이 J. 코헨, 황승일 역, 고대 유대교 역사.
심창섭, 한기총 정체성과 교계 대표성의 문제.
강춘오, 한기총 현실을 진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