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결과적으로 나는 세 가지에 실패했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멋진 첫 해외여행계획>의 전부였다.
첫째,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충분히 설렘을 만끽할 것
둘째, 미리 보딩패스를 받아 창가 자리를 택할 것
섯째, 옆 자리에 젊은 금발의 백인여인이 앉을 것
마지막 계획은 운에 달린 것이었지만, 나머지는 아침에 조금만 서둘렀어도 충분히 달성 가능했다.
아니 전날 밤 늦게까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어떤 멘트를 날려두고 떠나야 멋질까 궁상만 떨지 않았어도 됐다.
리무진버스가 공항에 나를 내려놓았을 때, 다른 모험을 앞둔 사람들처럼 폼나게 입장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에 쫓긴 나는 고작 버스 화물칸에서 짐을 끌어내면서도 낑낑 거리며, 여지없이 풋내기임을 증명했다.
물론 영국신사처럼 입장하기에 짐도 너무 많았고(장기간 어학연수였으므로) 결정적으로 팔자 콧수염도 없었다.
신사보다는 신밧드가 고용한 아라비안 짐꾼에 더 가까웠다.
창가자리는 일찍 일어난 신사들이 낚아채 갔음이 당연했다.
버스에서 내려 보딩패스를 받아 출국심사대를 지나 게이트까지 가는 나의 동선은 거의 직선에 가까웠다.
아슬아슬하게 말레이시아 산 쇳덩어리 잠자리에 올라탔을 땐,
막 500미터 허들을 마친 육상선수처럼 헐떡거렸다.
꿈꾸던 해외여행자의 품격은 고사하고 쫓기는 해외도주자의 모습이었다.
오른쪽 옆자리에 앉은 부장 아저씨는 한국 사람이었다.
내가 아는 건 김부장님은 해외출장을 자주 가는데 동남아만 가서 아쉽다는 것,
초등학교 5학년인 딸에게 무시당한다는 것,
아무래도 아내의 홈쇼핑 중독이 의심된다는 것,
사실은 로맨스 중이라는 것뿐이다.
내 자리는 기내 한가운데, 다섯 명이 한 줄로 붙은 자리의 정중앙이었다.
그건 화장실에라도 한 번 가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2명의 사람을 일어섯! 자세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는 걸 의미했다.
굉장히 큰 비행기였지만, 내가 본 외국인은 말레이시아인 승무원 4명과
오른쪽 옆에 앉은 말레이시아인 청년이 다였다.
다행히 청년은 이륙부터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때까지 한번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했다.
다행이라 한 이유는 청년이 너무나 옹박을 닮아,
아마도 내게 말을 걸었다면 난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큭큭 댔을 것이고,
모욕적이라 느낀 그는 CG없는 과감한 액션으로 날 죽사발로 만들지 모른다고 혼자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도착할 때까지 내 유일한 낙은 조그마한 창을 힐끗거리는 것뿐이었다.
너무 멀리 있고, 고개를 직각으로 돌려야만 볼 수 있어 목이 아팠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난 군대도 갔다 왔으니까.
거기는 목을 170도까지 돌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그 병사가 얼마나 창을 보고 싶었을지 당시 난 이해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