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흔히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그것은 사람이란 동물이 이 땅에 태어나 진화에 진화를 거쳐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렀고 자신에게 처한 상황 즉,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다른 거대한 동물들이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동물들에 비해 작고 허약하여 쉽게 죽을 수 있는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무기를 만들었고 나아가 따로따로 지내며 스스로를 지키는 것에 비해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 하에 하나, 둘씩 모여 소규모 촌락(村落) 또는 군락(群落)을 이루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같이 먹고 자며 서로가 서로를 가족처럼 챙겨주며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초기 수렵(狩獵)사회는 정착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먹잇감이 되는 동물들과 함께 떠돌아다녀야만 했다. 그로인해 많은 이들이 사방팔방(四方八方)으로 떠돌게 되었고 그 와중에 죽거나 또는 사라지는 이들도 더러 있었는데 시간이 흘러 신석기(新石器)에 접어들자 몇몇 모여 이동하던 이들이 물가에 정착하게 되는데 이것이 농경(農耕)사회를 만들게 되며 이것을 시초로 하나의 거대한 국가(國家)를 생성되어 거대한 사회(社會)를 이루게 된다. 물론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며 살아가던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가리켜 유목(遊牧)민족이라 했다.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으로써 서로 얽히고설키며 그렇게 부대껴가며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 어느새 개인적 편의(便宜)에 의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졌고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침범하지 않으며 개인과 개인 사이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으며 활동할 수 있는 최소의 영역으로 남게 되었으니 이것을 일컬어 Personal space 즉 개인적 공간(個人空間)이라 하는데 이것은 곧 개인주의(個人主義)로써 발전하게 된다. 지금의 사회는 이 개인주의가 팽배(澎湃)하여 일명「나만 잘 살고, 나만 잘 되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잘못된「배려(配慮)」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공간에 침범하지만 않으면 되겠지,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바로 옆집에서 팔순의 노인이 죽어가도 모르는 무관심한 사회가 되어 버렸다. 과연 이것이 사회이고 구성원들이 살아가는 현실이라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스스로 꽃다운 생명을 꺾을 수밖에 없었던 고(故) 장자연씨와 고(故) 우승연씨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조명과 천년만년 지속될 아름다움이 아닌 누군가에게 토로하지 못할 내면적인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관심이 아니었을까?
적어도 과거 한국의 정서(情緖)는 그러하지 않았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같이 눈물 흘리며 슬픔을 반으로 줄이고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같이 웃어주며 기쁨을 배로 늘리는 민족(民族)이 바로 우리 민족이 아닌가? 오래전 흥행했던 TV 광고를 기억하는가? 말하지 않아도 안다며 정(情)이라는 글자를 내세운 어떤 과자의 광고. 그것은 한국의 정서를 잘 표현해주는 광고라 할 말했다. 앞집건너 옆집 숟가락의 개수까지 세는 것이 과도한 관심이라 해도 할 말은 없지만 적어도 우리 민족은 서로의 돈독한 정(情)으로 살아가는 민족이었고 그렇게 반만년의 세월 동안 울고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타인에 대한 배려는 무관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작은 관심이 아닐까 싶다. 5월 가정의 달은 잠시 무겁고 힘든 짐을 내리고 적어도 누군가에게 작은 관심을 나눠주는 뜻 깊은 달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