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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마음 고향 (by 현종 스님)』

김민경 |2009.05.15 13:10
조회 57 |추천 0

 

*24
인간들은 자기중심적으로 좋고 나쁨과 이익과 불이익과 남과의 비교 우열을 따져서 무리하게 욕심내고, 시기 질투하고, 화내고 좌절하며 끊임없이 마음을 괴롭히는 망상을 지니고 있다. 또 좋은 일에도 의심하고 주저하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 그뿐인가, 조용히 생각하고 뜯어보면 '나 자신'과 '내 소유'란 덧없고 실체가 없는 것인데도 불변의 내가 있는 것인양 착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게 하여 많은 갈등과 큰 괴로움을 겪은 뒤 뒤늦게 후회하게 하는 망상, 나의 소유물 때문에 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의식 저 깊은 곳에 밝고 편안한 인간 본성을 가린 채 저장되어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그것도 끊임없이 튀어 나오기 때문에 자기를 속이고 판단을 그르치게 하는 망상, 그래서 편히 좀 쉬려해도 쉬지도 못하게 하는 갖가지 망상을 안고 있는 존재들인 것이 사실이다.
인간은 사고 능력을 가졌지만 그렇게 망상 속에서 불안하고 이기적이며 욕심많고 배타적인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29
불교의 생명은 안정되고 꾸준한 명상의 길에 있다.
*46
왜 명상을 가르치고 보급하는 일이 인권 증진과 복지 증진에 근본적인 도움을 줄까?
명상은 인간이 가진 밝고 고요하고 편안한 본성을 회복시키고 안정시켜주며 깊은 만족과 즐거움을 알게 한다. 또한 스트레스, 분노 등을 없애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자가변역 능력을 극대화시켜 준다. 바쁜 사회생활 속에서 명상을 꾸준히 하면 높았던 혈압도 낮아지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lol)도 줄여준다고 한다.

 

*37
케네디가의 가훈 두번째 항목은 '이 세상의 가장 고귀한 것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라는 조항이다. 그것도 '일체의 보수를 바라지 않고 봉사하는 존귀함'에 관해 쓰여져 있다.
불교의 육바라밀 가운데 첫번째 항목인 보시바라밀(몸과 마음과 물질로 하는 봉사)의 가르침과 통한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그것도 일체의 보수를 바라지 않는 무주상보시이다.
이것은 인간은 인간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는 존재, 즉 더불어 살아야만 되는 존재이며 따라서 인간 삶의 목적은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을 위한 일을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60
정업필보(定業必報)라는 말은 정해진 업은 반드시 받게 된다는 것이다.
... 비록 부인은 전생에 많은 업을 지었지만 금생에 보시하는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전생에 지은 업을 가볍게 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났다. 이렇게 보시나 참회 등 바라밀을 행하고 좋은 복을 지으면 그로 인해서 좋은 인연을 만나게 되고, 전생의 업을 덜고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생의 업은 지은 대로 받아야 하는 것이지만 금생에 내가 어떻게 하는가에 따라 그 업장을 가볍게 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71
보통 인간은 불보살님처럼 수행을 하여 삶과 죽음이 끊어지지 않고 변화로 이어지는 변역생사 즉, 삶과 죽음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 그러니 속박과 고통 속에서 삶과 죽음이 완전히 끊겼다가 이어지는 분단생사 즉, 육도윤회의 삶을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윤회의 삶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죄가 없을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 이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흐름을 타고 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죄가 없어 참회할 일이 없다면 태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물결 속에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늘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러한 물결 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물들어 습관화 되고 깊게 뿌리박힌 죄의 습성을 들추어내어 참회를 해야만 한다.

 

*76
때가 끼게 하는 가장 큰 주범은 물론 말할 것 없이 실재적인 '내'가 있다는 착각과 거기서 비롯되는 탐,진,치이다. 불교의 처음과 끝은 '무상'과 '무아'이다. '나'라고 하는 육체와 정신의 존재는 순간 늘 변해버리기 때문에 진정 일시적이고 임시적인 존재일 뿐이다. '나'라고 할 만한 고정적 불변의 실체는 결코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항상 불변의 고정적 내가 있다는 착각 아래 모든 사고와 생활을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근본 원인이다. '나'란 관념의 허망성을 모르는 것이 근본 죄인 것이다. 우리는 '나'라는 관념의 형틀 속에 갇혀 있으며 '내 것'이라는 관념의 큰칼을 항상 목에 차고 다닌다. 이것을 항상 꺠어 있는 마음으로 크게 참회하자.

 

*91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곧 썩게 되지만 업을 간직한 중음(사람이 죽은 뒤에 다음 생을 받아 날 때까지 49일간의 존재)은 생전에 지은 업에 따르느 일종의 업식 사이클을 가지고 사후 세계를 거쳐 천상, 인간,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등 육도 세계 가운데 그 사이클이 맞는 세계로 들어간다.
이어 다시 그 세계 가운데서 세밀하게 분류되어 그 사이클과 인연이 깊은 몸과 환경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은 대게 죽은 지 삼일 안에 새로운 몸을 받게 되며 늦어도 49일 안에는 새로운 몸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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