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시천주수련-기고만장했던 내가 작고 보잘것없었다.
난 예전의 나, 집착, 욕심, 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로였다.
그 못난 모습으로 '나만 예쁘다'고 하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내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화악리. 화악산 등산로를 따라 한 시간쯤 올라 해발 700미터 지점에 이르면 정확히 북위 38도선이자 한반도의 정중앙에서 하늘이 열린 듯 툭 터진 평지가 나온다. 바로 100여 년 전 동학농민혁명 이후 일본군과 관군을 피해 들어온 동학(천도교) 교도들이 화전을 일구던 아픔의 땅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끝없이 펼쳐진 산하를 보노라면 오를 때 한 걸음 한 걺을의 고초는 정작 한바탕 웃음이 된다. "시천주 조화정...." 천도교 화악산 수도원에서 들려오는 주문의 합창에 단군이 잠들어 있다는 이 산이 깨어나는 듯하다. 70여 명과 함께 주문을 외는 김동숙 씨. 한때 라디오 진행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그는 이혼의 아픔을 겪고 2년 전 재혼했지만 여전히 할 말은 하는 성미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말다툼을 할 때도 적지 않다.
그런데 이날 그는 자신을 잊어버린 듯 주문에 몰두했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그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강령 체험에 들어간 것이다. 재봉틀 바늘이 진동하는 것처럼 몸동작이 빨라졌다. 그 흐름 속에 잠겨 있던 그에게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일까.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우연이었을까 바로 그때 남자들 쪽에 앉아있던 남편 권씨도 울음을 터뜨렸다. 난물을 닦지도 않고,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어린애처럼 부부의 울음은 30분 이상이나 계속됐다. 울음을 그친 김씨는 갑자기 남편을 향해 무릎을 꿇더니, 큰절을 했다. 남편 권씨도 맞절을 했다. "한순간 맑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기고만장했던 내가 실은 고집불통에다가 작고 보잘 것 없었습니다. 정작 그 모습을 보니 다른 사람을 시비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비로소 남편이 한울님임을 알았고, 함부로 대했던 죄송함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한순간에 어린애처럼 밝아진 그의 얼굴에서 남을 예리하게 재단하곤 했던 시비의 그림자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수련을 통해 자신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내면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수련자들은 일렇게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 '섬기는 자세'가 된다. 주문은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내 몸 안에 한울님의 영이 있고 몸 밖에 한울님의 기운이 있음을 깨달아 한울님의 덕에 합하기 위해 한울님과 하나가 되려는 기원이다. 21자 주문수련을 통해 우주에 가득 찬 영기이자 한 생명체인 한울님을 체험하고, 한울님의 가르침을 직접 받으며, 한울님과 하나가 되어간다. 이날 동숙 씨가 체험한 것은 주문수련의 첫 관문인 강령이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지난날의 허물을 참회하면서 사특하고 망령된 상각을 다버리고 천지의 은덕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열심히 주문을 외면 마음이 맑아져 감개무량한 경지에 이르고, 정신통일이 되면 강령에 이른다.
강령은 성격과 체질에 따라 여러 가지 현상으로 나타난다. 대체로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떨린다. 팔과 다리가 먼저 떨리기도 하고, 때론 숨결이 가빠지고 맥박이 빠르게 뛰거나, 반대로 맥박이 느려지기도 하고, 머리 혹은 뒷등이 떨리기도 한다. 온몸에 오한을 느끼며 떨리거나 혈맥이 잘 통하기 시작하면서 얼굴과 몸이 가려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온몸이 시원해지기도 한다. 이런 변화를 겪으면 처음에는 두려운 생각도 들지만, 대개는 시간이 흐를수록 몹시 상쾌해지고 경외감이 발동해 지난날의 허물을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며, 감사하는 자세로 돌아서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때 자기 안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경우에 따란선 영부를 받기도 한다. 영부는 자기 안의 한울님의 계시에 따라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는 대로 종이 위에 글을 쓴 것이다. 천도교에선 영부를 태워 물에 타 마시면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는다. 이날 동숙 씨도 영부를 썼다. 그가 쓴 것은 한자로 '我'였다.
"예전의 나는 집착, 욕심, 습관을 그대로 지닌 채였다. 한울님은 영부를 통해 그런 나를 비춰보게 했다. 그 못난 모습을 거울로 보며 '나만 예쁘다'고 하는 내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내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동숙 씨는 "이제 못된 습관에 넞은 '나'에서 벗어나 한울님을 모시고 살 수 있는 장소로 향하는 문고리를 잡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이윤상씨도 이날 처음 강령체험을 했다. 부인의 권고로 10년 전 처음 주문수련을 하긴 했지만 그는 수련자들의 몸이 떨리는 현상이 일부러 과장하는 거도 같고, 마치 무당들 같이 느껴지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그런 체험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이번 수련을 시작한지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강령체험을 한 것이다. "수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없어졌기 때문에 주문을 외며 몸을 주문에 맡겼다. 몸이 흔들리면 거부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한번 진동이 시작되니까 그 다음부터는 자동으로 되었다."
윤상씨는 강령체험을 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직원들을 과연 한울처럼 대했는지 반성했다. 박혜수씨는 8년 전 천도교에 입교한 뒤 매년 한 번씩 남편과 함께 수련에 참가했다. 그는 수련에 참가하기 전에 대학 때 기독학생운동과 한살림운동을 함께했던 내과의사 남편이 심장병으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큰 시련을 겪었다. 남편의 병간호 때문에 아이들에게 손길이 미치지 못해 아이들마저 아프자 가정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자신감을 갖기 힘들었다. 아픈 남편을 대신해 가정을 유지할 힘이 없는 자신에 대한 무력감 때문에 고통스러웠다. 이런 처지에 있는데도 시가에서 제대로 도와주지 않는다는 원망만 늘어갔다. 남편의 병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만이 겹쳐 고통은 배가 되었다.
그런 그가 첫 수련을 마치고 가장 먼저 시가에 들러 시부모님에게 울면서 큰절을 올렸다. 수련하면서 원망은 어느새 감사의 마음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수련생들의 마음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부부나 부모, 자식을 공대하는 모습이다. 천도교를 창시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도 오랜 구도 끝에 집에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부인에게 큰절을 올렸다. 이어 노비 두 명을 각각 수양딸과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1860년 조선 땅에서의 일이었다. 수운 대신사가 큰 깨달음을 얻은 가장 먼저 취한 이 행동은 '귀천이 따로없이 누구나 한울(人乃天)'이라는 평등과 인간에 대한 존엄정신을 여실히 보여준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천도교는 부부화목을 강조한다.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 신사는 부화부순은 천도교의 제일종지라고 밝혔다.
도를 통하고 통하지 못하는 것이 도무지 내외가 화순하고 화순치 못하는데 있느니라. 내외가 화순하면 천지가 안락하고 부모도 기뻐하며, 내외가 불화하면 한울이 크게 싫어하고 부모가 노하하니, 부모의 진노는 곧 천지의 진노이니라. 여자는 편상이라, 혹 성을 내더라도 그 남편된 이가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절을 하라. 한번 절하고 두 번 절하며 온순한 말로 성내지 않으면 비록 도척의 악이라도 반드시 화할 것이다, 이렇게 절하고 절하라. 천도교에선 부인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한울을 대하듯 한다. 의암 손병희의 사위인 소파 방정환 선생이 펼친 어린운동의 정신도 천도교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해월 최시형은 천도교의 경전인 에서 이렇게 밝혔다.
도가의 부인은 경솔히 아이를 때리지 말라. 아이를 때리는 것은 곧 한울님을 때리는 것이니 한울님이 싫어하고 기운이 상하느니라. 도인 집 부인이 한울님이 싫어하고기운이 상함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경솔히 아이를 때리면, 그 아이가 반드시 죽으리니 일체 아이를 때리지 말라.
이 가르침 덕일까 참가자 중 아흔 살 넘은 한 노인이 아이나 젊은이에게도 마치 부모를 하듯 절하는 모습이 참으로 숭고해 보였다. 천도교 수련은 최제우 대신사와 2대 교조인 해월 최시형 신사, 그리고 3대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성사의 수련을 교과서로 삼고있다. 수운선생은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수 있는 새로운 진리를 찾고자 10여 년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민심과 풍속을 살피고 도를 구했다. 그는 서른두 살 때인 1855년에 울산 여시바윗골에서 수행을 하던 중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한 도인으로부터 천서를 받았다고 한다. 그 책의 가르침에 따라 양산 통도사 내원암에서 49일 기도에 들어갔다. 그러나 47일째 되는 날 숙부의 환원(사망)_을 직관하고 귀가해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이듬해 양산 천성산 적멸굴에서 49일 기도를 마쳤다.
그 뒤 고향인 경주 구미산 자락에 있는 용담으로 돌아와 산에서 나가지 않기로 작정하고, 한울님께 기도를 시작했다. 그동안 부패할 대로 부패한 유교사회외 서양의 침략으로 인한 위기감 속에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자, 세상을 구할 수 없음을 절감하며 기도에만 전념했다. 용담정에서 수련에 전념하던 1860년 4월 5일, 서른일곱 살의 수운선생은 갑자기 형언할 수 없는 기운을 느끼며 황홀한 지경에 들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문득 공중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두려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상제라고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수운선생과 한울님의 문답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처럼 첫 문답은 마치 한울님을 대하듯 시작했지만, 천도교에선 차츰 자기마음이 곧 한울님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했다. 해월선생이 특히 이를 강조했다.
한울울 공경함은 결단코 빈 공중을 향하여 상제를 공경한다는 것이 아니요, 내 마음을 공경함이 곧 한울을 공경하는 도를 바르게 아는 길이니, '내 마음을 공경치 않는 것이 곧 천지를 공경치 않는 것이다'함은 이를 이름이었다.
주문수행은 불교의 나무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옴마니반메훔 등 진언을 외거나 티베트와 인도에서 만트라를 외우는 것과 달리, 강령 등의 체험이 빨리 찾아오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은 거부감을 갖기도 한다. 그런나 천도교에선 내 마음 밖의 것을 털끝만큼도 용납하지 않는다. 내 안에 일체를 갖고 있으므로 제사음식조차 벽을 향해 차리지 않고, 내가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리는 '향아설위(向我說位)'로 하며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을 실천하고 있다. 강령이나 한울님과 문답ㅁ하는 강화단계에선 한울님과 자와 주객이 분별된 것 ㄱ4ㅏㅌ지만 자기 마음이 곧 한울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의심과 두려움과 근심이 다 없어지고, 한울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됨으로써 의심과 두려움과 근심이 다 없어지고, 한울님의 덕에 합하고 , 한울님의 마음으로 정해진다고 한다. 이로써 나와 나의 근본이 하나요, 우주 삼라만상이 한 이치 한 기운으로 생성되고 화와 복이 마음에 있고, 죽고 사는 것이 하나임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천도교는 육신관념에서 일어나는 번뇌망상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지에 이르는 해탈에 이어 나의 본래를 보고, 우주 인생의 근본을 알고, 한울님의 무궁한 힘과 지혜를 깨닫는 대도견성(大道見性)을 궁극적 목표로 하고 있다. 최제우 선생은 최시형 선생에게 법을 전하며, '수심정기'라는 넉자를 써주었다고 한다. '본래 나', 한울을 찾아가는 데 수심정기는 필수다. 신인합일의 길은 수심정기이니 갓난아기를 보호하듯이 하고, 흐린 기운을 놓고 맑은 기운을 어린아이 기르듯 한다. 이 마음 보호하기를 갓난아이 보호하는 것이 하며, 늘 조용하여 성내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고, 혼미한 마음없이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혜수씨는 남편과 함께 수련하면서 남편의 심장병이 상당히 호전되자 가정을 꾸려가는 데도 자신감을 회복하고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까지 약 일주일씩 열한번을 수련하면서 신비한 체험도 적지않다. 특히 그는 '선지식'체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자신도 모르게 다음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아는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다음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아는 것이다. 주문을 소리내지 않고 외는 묵송을 하면서 집중하면 텔레비전 화면처럼 다음에 올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옛 말에 지성이면 감천이고,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고 했듯이 주문수련에 집중하면 놀라운 힘을 얻는 경우가 많다고 참가자들은 증언했다.
줄넘기 세계신기록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칠십대 중반의 박봉태씨도 기록을 세우기 전 꼬박 49일동안 화악산 수도원의 바위 위에 좌정하고 주문수련을 했다. 그는 "기록을 갱신할 때마다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평생을 따라다니던 습관을 단번에 끊는 이들도 있다. 박영수씨는 70평생 술고 ㅏ담배에 찌들어 살아왔다. 잠지리에서도 담배를 물고 지내던 그는 하루 다섯 갑의 담배를 피웠고, 매일 소주 네댓 병을 비우기가 예사여서 맨 정신으로 살아본 기억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그는 석달 전 부인으로부터 황혼이혼 통고를 받고 이곳에서 21일 수련을 통해 거짓말처럼 술과 담배를 끊었다. "아예 돈벌이도 하지 않은 채 술에 빠져 세월을 보냈으니 가족들이 좋아할 리 없었다. 아내와도 마주앉아 얘기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직도 코끝이 빨간 것으로 보아 주독이 완전히 빠지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정신만은 정상인으로 돌아와 있었다. 가족들의 멸시에서 벗어나 이제 황제대우를 받으며, 사세아살 맛을 찾았다는 그는 이번 수련중에 틈틈이 자진해서 청소와 수도원 일을 했다. 이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모든 사람이 너나 할 것 없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앞 다투어 일을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해월 최시형 선생의 후예들답니다. 해월선생은 수운선생이 참수를 당한 뒤 평생 도망을 다니면서도 "한울은 쉬는 법이 없다"며 틈날 때마다 새끼를 꼬았다고 한다. 수련자들은 자신을 억누르던 고통에서 벗어나고 나면 자연스럽게 남의 일, 내 일을 구분하지 않고 일을 했다.
식사시간이 가까워지거나 식사가 끝난 뒤 부녀자들은 앞 다퉈 부엌으로 달려가 밥을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 자신은 수련을 하지 못하더라도 밥을 하러 나선다. 수련에 대한 욕심마저도 놓고, 사욕을 내세우기보다는 한울을 공경하는 일에 나서는 것이다. 화악산 수도원에서 일구는 밭만도 수천 평인데 모두 수련생들이 틈틈이 가꾸는 것이다. 할 일 없이 노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도가 끝나기 무섭게 밭으로 달려가서 채소가 물을 원하면 물을 주고 거름을 원하면 거름을 주는 모습이 참으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수련기간 중 수도원 안에서 천연기념물인 까막까치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아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김석환씨는 그 까막까치 새끼를 노리는 청솔모로부터 까막까치가 해를 입지 않도록 정성껏 돌보았다. 그는 5개월째 이곳에서 수련하면서 어미 까막까치가 오동나무에 부리를 구멍을 팔 때부터 지켜보았다. 알을 낳을 때가 되지 손수 오동나무 밑동을 함석으로 둘러 청솔모가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다른 짐승이 까막까치 새끼를 해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한울님께 고하는 심고를 드렸다.
천연기념물 까막까치가 새끼를 깐 곳은 한반도의 정중앙이자 38도선이 지나는 한가운데였다. 우연이었을까. 그 까막까치가 38선의 나무를 쪼아 새 생명을 잉태하자 이곳 사람들은 상서로운 일이라면 기뻐했다. 때마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이들의 기쁨은 더욱 컸다. 김씨는 "동물도 한울이라서 마음으로 통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련 때 다른 수련자들처럼 시끄럽게 현송하지 않고, 몸도 요란스럽게 흔들지 않은 채 주로 묵송을 했다. 주문이 끝나면 자신의 일을 찾아 묵묵히 그 일에 임했다.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지만 사람들과 동식물에게 유익을 주고자 노력하는 것에서 숨은 도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주문수련에 쭈뼛쭈뼛하던 수도자들은 김승복 도정의 탁월한 설법에 마음을 열어갔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해탈하려고 노력했다. 의암 성사께서 이를 분명히 밝혔다. 시천주 조화정은 근본이요, 영세불망만사지는 단련이다. 해탈하려면 근본을 먼저 알고 단련해서 해탈견성하는 것이다. '한울이 한울됐다', '영이 영됐다'고 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는 물음에 누가 제대로 답하는가.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천지만물이 성품과 마음에 통해 있다. 그래서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3.1운동 때 33인 대표였던 의암 손병희선생이 천도교 3대 교조로서 천도를 만천하에 밝혀 놓았다는 것이다. "생각을 안하면 진리를 관통할 수 없다. 무엇이든 생각하면 이루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본래 한울님이다. 이 세상 언어는 전부 한울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주파수만 맞으면 다 알 수 있다. 한울님 주파수와 내 주파수가 딱 맞으면 통하는 것이다. 그 주파수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 한울님이 어디 계신지 분명치 않을 때는 밖에서 들린다. 예수는 어디로 재림하겠는가. 그대의 성령 속으로 재림하는 것이다. 의상조사는 갑사의 현판에 '사람이 하늘 되는 것이 큰 꿈인데 누가 이 큰 꿈을 이루겠는가'라고 적었다. 그 이상 다른 말은 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인내천'이다. 석가모니가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한 것도 인내천을 말한 것이다."
그는 설법을 통해 수도자들의 무지를 떨쳐주고 있었지만, 세상에 알려지고 스스로 이름이 드러나는 것을 꺼렸다. 공시은 씨는 대학 재학 때부터 지하서클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졸업 뒤에서 4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일했던 운동권 출신이다. 서울에서 대학입시학원 강사를 하던 그는 새 인생을 설계하기 위해 인도여행을 떠나려던 중 언니의 권고로 지난 겨울에 이곳을 찾아 49일 수련을 연이어 두 번이나 했다. "예전엔 제도나 조직의 변화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변하지 않고서는 세상의 변화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는 주변 사람들도 몰라볼 정도로 변했다. 나서서 말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화장실 청소하는 모습을 우연히 볼 수 있을 뿐이다.
천도교중앙총부 홈페이지 : http://www.chondogyo.or.kr
출처:나를찾아떠나는여행-31가지 수행, 수도, 명상을 통해 행복을 찾은 사람들의 이야기(한겨레출판-달라이라마,이해인수녀님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