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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ull Context 의 죽음

이유정 |2009.05.24 02:22
조회 39 |추천 1

 

 

context 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면

문맥, 전후관계, 정황, 배경, 환경 등의 뜻이 있다

 

 

나는 'context'라는 이 단어를 매우 좋아한다.

또한 내 삶속에서, 매우 중요시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context'는 상대방을 이해하거나 배려할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즉, 'context'는 이해와 배려의 틀이다.

한 사람의 상황, 정황, 배경, 환경을 깊게 고려해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입이 매우 무거워야 하며,

말 한마디를 신중히 해야 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던가.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고.

context에 의해 지배받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빗대어 한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인간의 본질, 본래부터 선한지, 본래부터 악한지 알길이없다

본질의 특성은 조물주만 알 것이니 말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해 보다 중립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다

'context'를 벗겨난 상태의 인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context를 벗겨낸 인간은, 빈껍데기 뿐인가?

너무 가벼워 증발해 버릴 것 같은 알코올 같은 것인가?

context없는 인간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오늘 그 물음에 대한 내 나름의 결론을 얻었다

인간은, 나는, context를 완전히 벗겨낸 나란 존재는,

능동하는 존재, 선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하셨다.

그 시험은 context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 시험을 극복하면,

새로운 context를 창조해 나갈 수 있다

 

 

즉, 인간은 context에 지배받으면서도,

우리의 능동적인 움직임과 선택에 의해,

다시금 새로운 context 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선택하는 그 능동적인 움직임에는

'방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방향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보며, 

내 머릿속에는  햄릿의 고통스러운 대사가 떠올랐다

'사느냐 죽느냐..'    

 

 

절벽위에 올라선, 노무현 전 대통령 앞에는

끔찍하고 처절한 context 가 놓여있었다

한 인간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러한 context 아래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다.

바로 죽음이었다.

그는 왜 죽음을 선택한 것인가

 

 

 

여기서 우리 모두는, 모두 숨죽여 울어야한다.

단지 그가 대통령이기 때문에 울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context를 벗겨낸 우리의 본질, 능동적이고 선택의 주체라는

이 본질이‘죽음’이라는 방향성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일이다.

그는 죽음을 ‘선택’하였다.

검찰은 그를 압박하였다. 언론은 그의 명예를 실추시켰다.

죽음을 통해서만, 그는 자신의 명예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인생 전체의 Full Context는

짓밟혀지고, 사정없이 뭉개졌다

그가 쌓아온 모든 것들, Full Context는

온데 간데없이 사라졌다

 

 

Full Context의 죽임은,

능동하는 인간, 선택하는 인간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그의 인생을 다시 재조명하는 방송들이 나가고 있다.

앞다투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리를 케낼 때는 언제고,

이제 죽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그의 인생을 재조명해본다니, 참으로 애석한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Full context를 죽이고,

그가 죽자, Full Context를 부활시키는 꼴이다.

언론은 단두대가 아니다.

사형집행을 하는 곳이 아니다.

균형을 잡아야 한다.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한쪽만 부곽해서 보도하면 안된다.

 

 

왜, 능동하고 선택하는 주체인, 인간이 죽음을 선택할까?

 

 

그것은 Context의 죽음이었다.

 

 

context는 살갗처럼 연약하다.

그 연약한 살갗을 사포로 문지르는 것과

손으로 어루어만지는 것은 천지 차이다.

사포로 문지르면 context는 피가나고,

살갗이 벗겨나간다.

 

 

나는 개개인의 context를

손으로 어루어 만져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개개인의 Full context를 이해하는 노력을

우리 모두가 갖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개인의 대해 극단적인 판단을 자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죄를 저질렀을때,

그것을 무조건 용서해주자,

따듯한 손으로 어루어 만져주자라는

의미로 오해해서는 안된다.

그 죄로 인해, 그 사람을 완전히

매장시켜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죄에도 적용하고 싶다

죄에는 죄로만 판단하라는 것이다.

한 사람의 죄= 한사람의 전부는 아니지 않는가

 

 

우리는 그 누구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로비의혹과 연루되어 검찰조사를 받게 되었을때,

죽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한번 슬픔에 잠긴다. 올 한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살했고,

OECD 국가에서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일반인은 물론이고, 연예인, 오늘은 한나라의 전 대통령이 그리하였다.

 

 

오늘은 울어도 된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낭떨어지로 이끌어가고 있는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인지, 죽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인지.

 

 

우리의 context는 보살핌이 필요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평범한

 

한 사람의 context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에게 ‘살 것을’ ‘선택’하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능동하는 본질을, 선택하는 본질을 가진 주체이다.

내가 아는 평범한 사람들,

그들이 죽음이 아닌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그들의 context를 보듬어주자.

 

 

가난하다고 따돌리지 말고

학력이 낮다고 우습게 보지 말고

나와 다르다고 이상하게 보지 말자

 

 

가난하면 더 베풀고

학력이 낮으면 더 상세히 설명해주고

나와 다르다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보자

 

그럼 그들은 죽지 않는다.

나와 같이 ‘삶’을 선택하며,

세상이라는 거대한 ‘context'를

같이 움직여나갈 것이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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