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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 대한 기억과 상념들

정연두 |2009.05.24 23:26
조회 68 |추천 0

그를 처음 만난건 tv에서였다.

중학교 1학년때였는가...

청문회바람이 불어서 학교마치고 청문회보는게 일이었다.

전두환한데 명패를 던지고, 내용은 어려웠지만 하여튼 논리적인말로 전두환을 괴롭히던 청문회...

불과 1년전 우리나라의 대통령이었고, 국민학교때 항상 학교 1층 로비에 걸려있던 전두환 아저씨를 그렇게 막 대하던 그가 나에게는 충격이었지만 영화에서 보던 착한편의 주인공 같았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청문회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 들은, 아니면 학교에서 들은

얕은 정치지식으로 우리는 정치토론(?)을 벌였다.

그후 그는 ‘청문회 스타’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95년 부산시장 선거였다. 최초의 민선 시장을 뽑는 선거였고, 그당시 대학가에서 민자당 후보 반대가 이슈였기 때문에 나는 학생회차원에서하는 노무현 선거 지원운동을 같이하였다. 부산대 정문앞에서 그를 보았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후보는 아니였지만 그가 당선되었으면 바랬다. 그의 유명세와 대학가 분위기로 봤을때는 박빙일거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당선되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불가능한 일이었다.

 

2002년...

누구나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거라고 확신했다. 정권교체는 5년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등장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그가 대통령후보로 뽑혔다. 경선과정을 지켜보면서 그에 대해서 좋은 감정이 생겼다. 저사람이면 괜찮겠다...믿을 만 하겠다 등등...

그도 일반 정치인과 다를 바가 없고, 한국사회의 변혁을 위해서는 진보진영의 후보를 밀어야 한다에 원론적으로는 동의했지만...그에게 기대가 걸어졌다.

권영길과 그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그에게 투표를 했다. 이회창이 대통령이 되는 걸 막고도 싶었지만 그가 대통령이 되면 좋을거 같았다.

 

개표날 저녁...

지금의 아내와 서면에 있었다. 조용한 곳을 잡아서 개표방송을 안주삼아 술한잔했다. 엎치락뒤치락 할때마다 가슴이 졸였고, 그럴 수록 그가 꼭 이기기를 바랬다.

그의 당선이 확정되고 그의 인생역정이 tv에서 나올때 감격의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그의 승리가 아니라 국민의 승리, 민주주의의 승리렸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릴거 같은 기대감에 들떴다. 그때 나도 첫직장을 잡아서 더욱 흥이 나 있었다.

2003년 새해첫날..

이제껏 맞이한 그 어떤 새해보다 기분이 좋았다. 내 인생도 잘 풀리고 이 사회도 잘 될거같았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혁명이 성공하고 새로운 나라건설을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아니...이 세상의 지배층이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자기들보다 권력도, 재력도, 학벌도 낮은 상고 출신의 그를

자기들의 대통령으로 모시는게 싫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놓고 그가 상고출신이라고 비아냥거렸다.

그들은 그가 못배워서 영어회화도 잘 못할거고 미국가면 망신당할거라고 했다.

(2MB가 미국가서 어설프게 영어연설을 하자 그들은 영어는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2MB처럼 자신감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치켜세워주면서...)

그들의 대표 논객이라 할 수 있는 조갑제는 군부는 지금 쿠데타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의 정책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그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그들은 끈질기게 물어졌다.

그들의 힘과 입은 막강했고 몇년이 지나자 국민들 사이에서도 일반화되었다.

 

다시 대통령선거가 가까이오자

이제 그들은 나라경제가 위기라고 했다.

해외여행객이 역대 최대를 기록하고, 주식시장이 호황인데도

계속해서 그들은 경제가 어렵고, 이 모든 책임이 그때문이라 했다.

언론들은 재래시장만 찾아당겼다.

당연히 재래시장 상인들은 살기힘들다고 대답을 하였다.

자기들인 추구하는 신자유주의때문에 부익부빈익빈이 당연한 결과인데도

그들은 이 모든 것이 그때문이라고 했다.

 

국민들은 경제만 살려주면 모든 걸 양보할 수 있는 분위기였고

2MB가 대통령이 되었다.

2MB는 국민들의 염원대로 모든 걸 내팽겨쳤다.

그리고 경제를 살렸다. 강남경제만.

강남주민들한데 세금을 되돌려주면서.

그들은 그들이 잃어버렸다는 10년을 멋지게 되돌린 것이다. 

 

그들은 생각했다.

다시는 정권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네티즌, 촛불, 그리고 그로 이어지는 2002년의 악몽을 그들은 잊고싶었다.

우선 촛불을 진압했다. 대통령마저도 부족했다고 인정한 소통을 도와준 촛불을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그리고 네티즌을 잡았다. 국가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면 잡아갔다. 포털을 그들의 수중으로 넣었다. 방송마저도 장악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가 남았다.

퇴임한 그였지만 많은 국민들이 퇴임후의 그에 대해 지지와 사랑을 보내고 있었다.

퇴임후 2MB정책에 대해서 가끔 비판하는 그에게 국민들이 지지를 보내자 그는 그들에게는 눈엣가시였다.

진보진영에서는 그를 진보주의자라고 전혀 인정을 하지않지만

그들이 보기에 그는 여전히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많은 국민들에게도 추구해야할 가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홈페이지에 마지막으로 자기는 여러분들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만 짓밟을 수 있다면, 그의 약점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국민들은 진보의 가치에 대해서 회의를 느낄 것이고,

5년간의 그의 임기를 부정할 것이고,

그들은 편안하게 장기집권을 할 것이다.

 

그들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는 말을 실행에 옮겼다.

그랬다. 한국 정치구조에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론을 통해서 여론몰이를 했다. 명품시계를 받았네..그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네..하면서 여론을 몰아갔다.

나조차도 그에 대해서 실망을 했고 냉소를 보냈다.

아마 그는 더 쓰라렸을 것이다.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가족에 대한 보호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호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진짜 나쁜 놈들은 그러지를 않는다.

전두환, 노태우는 사형판결까지 받는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잘 살고있다.

뇌물쳐먹고, 성추행 하는 나쁜 정치인들도 끝까지 개기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돌아온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까지 ‘바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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