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당신은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군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나는 2002년 대선 당시 주변 친구들 모두가 당신을 지지할 때에도 다른 후보를 지지했고 대통령 재임 기간 중 보여줬던 경솔한 언행들 때문에 당신에게 더욱 실망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해외 체류 중 로밍폰으로 친구들이 보내준 문자를 통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가더군요. 하지만 거듭된 친구들의 문자를 통해 상황이 확실해지자 눈가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리고 어제 한국에 돌아오니 유래없는 추모 열기가 전국을 휩쓸고 있네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충격인데 다른 사람들한테야..’하는 생각도 들지만 고작 1년 3개월 전까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었던 당신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택해야 했는지, 그리고 그 죽음 앞에 우리가 이렇게 슬퍼해야 하는지(혹은 슬퍼하는 척을 해야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당신을 지지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내가 지지한 사람이 못할 것을 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이 때문에 정성들여 쓴 사연으로 당신의 취임식에 갔었고, 국회에서 당신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글썽였고, 학교에서의 당신 특강에 가서 열심히 당신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내게 남아있는 당신의 모습은 당당함이었습니다.
가끔은 ‘저리도 뻔뻔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당당했던 당신의 모습을 이번에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변호사, 국회의원, 대통령을 하면서 항상 당당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당신이 수사 과정에서 억울한 것이 있으면 당당히 해명하고 그 대신 죄를 지은 것이 있다면 국민들 앞에 당당히 사과하고 죄값을 지고 나올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아는 노무현,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끝까지 나를 실망시키는군요.
내일은 양복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대한문 앞에 있다는 당신의 빈소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당신은 나를 몰랐겠지만 내가 그렇게 관심갖고 희망을 가졌고 욕하고 실망했던, 내가 아는 인간 노무현에 대한 조문을 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죄 앞에서 비겁하게 죽음이란 방법을 택한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내 평가는 영원히 부정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래도 부디 이제는 편안하소서.
p.s. 마치 주유의 영전에 찾아가 눈물로 조문해서 오나라 장수들의 마음을 움직인 제갈량인척 하는 정치인들과 같은 위선은 차마 못 보이겠습니다. 용서하세요.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