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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최영호 |2009.05.27 14:12
조회 71 |추천 0

(뉴질랜드 남섬, 어느 시골의 순회법원 앞)


                      [여보, 나랑 살아줘서 고마워!]


어제 뻐꾸기가 왔다

꾀꼬리가 온지 두어 주쯤 되었는데 뻐꾸기는 좀 늦게 와서 아침을 달군다


아침에 잠깨면 새들의 지저귐과 불타는 듯한 여명이 창에 스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새들도 밤에는 잠을 자겠지만 뻐꾸기 같은 녀석은 아마 집도 없이 나뭇잎을 이불삼아 잠이 들 것이라 생각하며 웃는다


언젠가 본 다큐프로에서 뻐꾸기의 생태를 조명한 일이 있었는데 그 화면이 마음에 자리한 봄새라는 반가움 보다는 얄미운 새로 낙인된 것이다


개개비라는 아주 작은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놓고 제 자식을 기르는 모정이 갸륵하다 하겠지만 뻐꾸기의 본능은 이미 알속에서부터 정해져 있는 듯 갓 태어난 어린 새끼 새가 개개비라는 작은 새의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는 장면이 오래오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다


이 세상에도 참 나쁜 사람들이 많다


뉴스 사회면을 보면 착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약점을 노린 사기꾼들 이야기도 넘쳐나고 도처에서 인간답지 않은 행위를 일삼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친다


침묵하는 다수의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다


착하면 잡혀 먹히는 세상, 구석구석에서 노리는 뻐꾸기 같은 약삭빠른 사람들로 채워지는 게 안타깝다


지난 세월 내가 살아온 궤적들을 돌아본다

살아남기 위해 지탱해온 시간 속에 나는 뻐꾸기 같은 마음을 먹고 있지는 않았을까?


조국 해방에서부터 6.25, 4.19, 5.16 같은 크나큰 격변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들을 스스로 익히고 터득하는 자각의 세월이었다


내 한 몸 눕힐 곳을 찾아 거리를 맴돌 때도 어느 누구를 속이며 인간 뻐꾸기가 되는 것은 양심이 거부를 했다


배고픔으로 친구 집을 전전하면서 터득한 것은 살아있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본분을 지탱하는 것이라 생각하여 친구 부모님의 신임을 받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친구가 사는 공간에서의 작은 한자리를 얻어 잠시 머무르는 행복한 순간에도 나는 슬픔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었다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며 나와 같이 있음으로 얻어지는 효과를 자신들의 삶에 채우려 왔다 바람처럼 돌아서는 작은 배신을 보고 나이들어 문득 사람도 뻐꾸기 같은 마음으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무런 조건없이 서로 공생하는 세상에서의 자리매김은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계산기를 감추고 다가온 사람들을 발견하려는 의도 역시 상대에게서 나 자신의 신뢰를 잃는 것이라 생각하여 매몰차지 못했었다


세상이 같은 시간을 흘러가는 것이지만 누구나 갖고 채워지는 목적이 다르다


돌아보는 지난날들의 삶 속에 너무나 아쉬운 순간들도 많이 남아있고 미련스런 시간들도 후회스런 시간들도 남아있어 문득 온몸에 전율을 느끼듯 얼굴을 붉힐 때도 있다


하루는 시작하는 시간에 뻐꾸기 소리를 들으며

걷고 또 걸으며 다짐하는 것이있다


“너처럼 살지 않은 게 다행이다..”


조금 더 약삭빨랐으면... 아니 조금 더 악착같았다면...이라는 후회섞인 탄식이 나올 때도 있지만 남의 마음 아프게 하지 않고 남의 가슴에 피멍 들지 않게 조금 손해본 듯, 조금 밑지는 듯 살아온 나의 지난날이 대견스럽다


아내는 늘 나를 다독였다

힘든 일이 생겨도 넘치게 좋은 일이 생겨도 늘 나를 자제시키고 진정시켰다


“그냥 손해를 봅시다. 그것 없어도 살 수 있으니 더 열심히 일합시다”


아내도 아침기도를 하며 뻐꾸기 소리를 들을 것이다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서도 뻐꾸기가 나쁜 새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제 인연으로 태어나 제 본분이 타고난 대로 열심히 사느라 저리 울어대고 제 부모로부터 받은 유전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는 거라 생각하는 마음이 편할 텐데 자연의 법칙조차 우리의 삶에 견주는 나의 속된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내일이 부부의 날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살아오면서 같이 늙어가고 같이 바라보고 지나온 세월 속에 미쳐 채워주지 못한 것들을 조금씩 더 채우려 할 것이다


뻐꾸기 우는 오월이 있어 그래도 살아있음은 축복이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퇴근하며 그냥 놀리듯 아내를 안고 멋쩍은 고백 한 번 해봐야겠다


“사랑해..나랑 살아주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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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은빛바다”라는 필명을 쓰시는 구xx선생님의 “어느 오월의 아침에”라는 글입니다(http://blog.naver.com/sonkoos/50047807249).


구선생님은 회갑을 훨씬 넘기신 전문직업인으로 경기도 여주에서 열심히 일하시고, 사랑하는 아내와 따듯하고 진실한 사랑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분입니다.


저보다 훨씬 연배가 높으신 분이 저렇게 아내를 안아주시면서 “사랑해..나랑 살아주어 고마워”라고 사랑표현을 하시는데 저는 아내에게 저런 표현을 한 번도 해 본 일이 없어 부끄럽습니다.


구선생님의 삶에 대한 진솔함과 아내에 대한 진지한 사랑에 늘 감복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을 나가다가

내 옆자리에 평화롭게 잠든 아내의 얼굴을 봅니다.

생전 늙을 것 같지 않던 형수도 이제 많이 늙었다고 하던 시동생의 말에 크게 아쉬워하던 아내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어떻게 하면 아내를 더 늙지 않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아내를 더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요?


뻐꾸기처럼 살다가는 수많은 사람들

뻐꾸기처럼 죽는 날까지 울면서 살아가지 않으려면

뻐꾸기처럼 비겁하게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들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나는 아내가 옆에 있어 슬프지 않습니다.


“여보, 사랑해!

나랑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09. 5. 27.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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