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전 대통령이 29일 한 줌의 재가 되어 자연의 한 조각으로 돌아갔다.
부조리한 현실에 안주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았던 그는 변화와 개혁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은 ‘비주류’였다. 손해볼 것이 뻔해도, 질 것을 알면서도 ‘버림의 정치’를 통해 ‘더 큰 것’을 얻어온 사람이었다. ‘도덕성’은 그에게 유일한 정치적 자산이자, 무기였다.
그런 도덕성이 자신을 공격하는 순간, ‘비주류 노무현’의 선택은 스스로를 완전히 버리는 것밖에 없었다. 재임시절 비록 성공한 대통령이란 평가는 받지 못했을지언정 그가 추구했던 이상과 가치는 죽음을 통해 되살아나고 있다.
◆‘버려야 산다’= 노 전 대통령은 숨지기 한달 전인 4월 2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더 이상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 없다”며 “저를 버려 달라”고 했다. 3월초에는 “열심히 싸우고, 허물고, 쌓아올리면서 긴 세월을 달려왔지만 그 흔적은 희미하고, 또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실패의 기록뿐”이라고 좌절했다. 검찰의 수사 칼날이 겨냥해 오자, 그때부터 자신을 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유서에서 “슬퍼하지 마라, 원망하지 마라,미안해 하지 마라”고 썼다. 모든 것을 버린 그가 되살아나고 있다. ‘미안함’에, ‘안타까움’에 흩어졌던 지지층은 결집했고, 등을 돌렸던 시민들이 그의 영정앞에 줄지어 몰려들었다. 대통령 탄핵 시절 그를 지켜줬던 거리의 촛불도 다시 켜졌다. 그에 대한 재평가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완벽하진 못했지만 꿈을 가진 대통령’= 그는 재임기간 좋은 대통령이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항상 정치적 논란에 휘말렸고 그 중 상당수는 스스로 자초한 것이었다.
17대 총선 직전인 2004년 선거중립의무 위반 등으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또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해 파란을 낳았고, 임기말에는 대통령 4년 중임제 개헌을 제시해 역풍을 맞기도 했다. 권력은 있었지만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비주류 대통령으로서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권위주의 타파를 시도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내는 정치개혁은 멈추지 않았다. 특권과 반칙없는 사람사는 세상을 꿈꾼 그의 노력은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83학번 노무현’= 노 전 대통령은 생전 “나는 대학생으로 치면 83학번”이란 말을 하곤 했다. 1981년 부산 시국사건이었던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사회문제에 눈을 뜨고 본격적인 민주화운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나이는 적었지만 평생 동지이자 친구였던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운동권 출신도 사회에 나가면 열정이 식기 마련인데 노무현은 반대였다”고 회상했다. 그는 1988년 부산 동구에서 당선돼 5공 비리 및 광주항쟁 청문회로 ‘스타 의원’이 됐다.
그러나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김영삼 전 대통령과 갈라선 뒤 1992년 총선,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총선, 2000년 총선에서 연거푸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지역주의에 맞선 노 전 대통령에게 ‘바보 노무현’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이 힘은 2002년 대선 승리로 절정을 맞았다.
유병권기자 ybk@munhwa.com
■ 어록으로 살펴본 ‘노무현’

▲“미국에 안 갔다고 반미주의자냐. 또 반미주의자면 어떠냐.”(대선후보 시절인 2002년 9월11일 한 대학 강연에서)
▲“만약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2003년 5월13일 방미 중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
▲“전부 힘으로 하려 하니 대통령이 다 양보할 수도 없고, 이러다 대통령직을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위기감이 든다.”(2003년 5월21일 5·18 행사추진위 간부들과의 면담에서)
▲“나는 한국에서도 공산당이 허용될 때라야 비로소 완전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2003년 6월9일 방일 중 일본 공산당 위원장을 만나)
▲“북핵문제만큼은 정말 섬세하게 한발 한발 물어보고, 짚어보고 정말 신중하게 한다. 속된 말로 통박을 굴린다.”(2003년 11월19일 한국청년회의소(JC) 임원단 초청 다과회에서)
▲“우리가 쓴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대통령직을 사퇴하고 정계를 은퇴하겠다.”(2003년 12월14일 여야대표 회담 도중 대선자금과 관련해)
▲“부활은 예수님만 하시는 건데 한국 대통령도 죽었다 살아나는 부활의 모습을 보여줬다.”(2004년 6월주한 외교단을 초청한 자리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해서라도 집값을 안정시키겠다.”(2005년 2월25일 국회 국정연설에서)
▲“대통령 시작부터 레임덕이었다. 어쨌든 시작할 때보다는 걱정거리가 1g이라도 줄어들었다.”(2005년 7월 한인회장단 초청 다과에서)
▲“권력을 통째로 내놓는 방안도 검토하겠다.”(2005년 8월25일 KBS TV ‘국민과의 대화’에서 대연정을 제안하며)
▲“노무현이 하는 것 반대하면 다 정의라는 것 아니겠느냐. 흔들어라 이거지요, 흔들어라. 난데없이 굴러들어온 놈…. 미국한테 매달려 가지고 바짓가랑이 매달려 가지고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 ‘형님, 형님, 형님 백만 믿겠다’, 이게 자주국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일 수 있겠나.”(2006년 12월21일 민주평통자문회의 연설에서)
▲“대운하도 민자로 한다고 하는데 제정신 가진 사람이 대운하에 투자 하겠느냐”(2007년 6월 참여정치 평가포럼 초청 연설에서)
▲“캬, 토론 한번 하고 싶은데 그놈의 헌법 때문에.”(2007년 6월2일 참여정부평가포럼 연설에서)
- 마당쇠 - 칼럼
흥부는 신중하고, 자익을 도모하기위해 애쓰다 체결 못하니 놀부는 흥부를 "반미주의"라고 외쳐대며
자기 자식들에겐 외교못한다는 소리 듣고,
흥부는 신중하고, 통일을 위해 조심히 다가 섰지만 놀부는 "빨갱이"라 외치며 음모론을 조작하고,
흥부가 놀부 똥꼬 안 긁어주고, 개혁을 도모하니 자기내 집에서 월세가 올랐으니 현재 없으면 당장 나가라고 윽박지르고,
자식들은 여태 무관심으로 지애비를 바라보다 고인이된 흥부에게 줄지어 다가가 눈물을 퍼붓내..
- 풀리지 않는 의혹 -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압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 아니라 자살로 위장한 타살 ???
자살장소에서 혈흔이 묻지 않았고 경호원은 청와대 출신인 경호원이였습니다.
경호원은 어떻게 30분만에 119도 부르지않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업고 그것도 혼자서 차를 몰고 동네병원으로 갔을까요???
두팔이 골절을 입었다는 것은 강하게 저항을 했다는 것입니다.
들어보니 유서는 컴퓨터로 작성하면 효능이없다는데 변호사라서 더욱 잘 아시는 노전대통령께서 그렇게 컴퓨터로 유서를 쓰셧을까요?
그리고 유서속에는 화장을 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장기기증을 한다고 하셨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연예인이 자살하면 기본 몇주는 수사를하는데 이 엄청난 분이 서거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단하루만에 투신자살로 단정짓는건
무언가이상하지않나요 ??? 이 의문점은 정말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 생각 됩니다.
내용은 신선하고, 짜임새있고, 재밌었는데 그다지 뜨지는 못했던 - 야수 - 영화가 생각나는 오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