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어가며 >
1. 내용이 조금은 길 수도 있습니다. 흥미가 없으신 분은 백스페이스 누르셔도 됩니다.
2. 혹시 글의 결론만 알고 싶으신 분들을 위하여 미리 말씀드리자면,
많은 분들이 "현 정권은 과거의 독재정권과 다를바 없다"라고 하시는 것과 동일한 맥락에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몇몇 기사들을 접하면서 '전 정부였던 참여정부와는 뭔가 좀 다른데?' 라는 '느끼는 수준'에서 이야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법률적 / 정치적 차원에서 나름의 논리구조를 세워놓고 한번쯤 이야기 해보고 싶었습니다.
3. 쭉 읽어보시면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뭐 그리 주절주절 길게 썼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어떠한 정치 혹은 사회적 이슈에 관한 글을 쓰는 경우, 그 이슈를 주도적으로 생산해내근
집단의 행태를 기반으로 쓰여질 수 밖에 없는 바, 가장 잘 알아야 하는 그 이슈생산집단이 그렇지 못하고 뭐같이
행동하고들 있으셔서 나오는 현상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4. 시간이 없어 날림으로 쓰다보니 중간중간 문구의 반복 등이 있을 수 있고, 오탈자가 있을 수 있으며,
각각의 문단의 연결등이 매끄럽지 않을 수도 있으니 감안하시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시위, 그 정치적 의미
처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당일 경찰측 인사가 불교계가 준비한 대나무 만장을 금지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였습니다. 사실 대나무 만장 금지 이외에도 유사한 사건이 노무현 전 대통령 애도기간 동안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설치한 분향소 주변에 만일의 사태에 대한 대비를 이유로 전의경들을 배치한 일, ② 서울시 광장이 그 설치목적과 다르게 이용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사 금지(나아가 영결식 다음날 추모시민들의 강제 해산), ③ 영결식 당일 노란색 스카프를 압수한 사실, ④ 어린 아이가 촛불을 켠 채 아버지의 무등을 타며 걸어가고 있자 주변의 경찰들이 득달 같이 달려들어 통행을 막은 일(결국 주변 어른들의 아웅다웅댐에 꼬마아이가 스스로 촛불을 끄자 그제서야 경찰들이 물러났다고 하죠?) ......
이러한 현상은 본질적으로 한 가지 이유에 기인합니다.
짐작하고 계시겠고, 경찰측도 공공연히 말하는 사실인데 바로
"대중들의 집단적 추모가 시위로 발전될 개연성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그렇다면 "시위"란 무엇일까요? 시위란, 흔히들 말하는 "데모(demo-)"를 의미합니다. 그것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들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공공연하게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를 말하고,
집시법에 근거한 법률적 정의는 '여러 사람이 공동의 목적을 가지고 도로, 광장, 공원 등 일반인이 자유로이 통행할 수 있는 장소를 행진하거나 위력 또는 기세를 보여, 불특정한 여러 사람의 의견에 영향을 주거나 제압을 가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정치적으로는(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의정치 /간접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인터넷'과 더불어 부분적인 직접 민주주의의 실현방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으로는,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대의제 / 간접적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인터넷과 더불어 직접 민주주의의 부분적 실현 방안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의 포커스는 바로 이 정치적 의미에서의 시위인데, 여러분도 잘 알고 있으시다시피 '데모'는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데모크라시'의 어원입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아테네의 정치형태는 지금과는 다르게 '직접 민주정'이었고, 이러한 언어적/역사적 기원을 살펴보면 시위가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민주적 특성을 쉽게 확인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버나드 마냉 교수는 그의 저서 「선거는 민주적인가」를 통하여 아테네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라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민회의 존재와 그것을 통한 일반 시민들의 직접적인 정치 참여의 기회 보장'이 아닌 '추첨제도'를 통한 '공직 배분 기회의 평등성 보장'에 있다고 하는 등 일부 다른 견해도 있지만
이 글에서는 특정의 견해가 아닌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논의를 하고자 합니다.)
굳이 이러한 언어적/역사적 기원에 근거하여 시위가 가지고 있는 민주주의와의 관련성에 대하여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의 특성에 기인한 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하여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현대 사회의 특성상(고교 시절 사회교과 과목 내지 학부 수준의 정치학개론 강의를 들어보신 분들은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영토가 넓고, 인구가 많고 하는 등의 이유 말이죠) 시민들이 모든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참여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에 권력이나 정책 등에 관하여 유의미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는 사실상 '선거'가 거의 유일하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어떠한 방식이나 형태로든 선거를 통해 일단 선출만 된다면, 권력을 부여받은 세력들은 일정기간 사실상 견제를 받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에 미루어본다면 선거싸이클만으로는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조차 민주성을 획득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요. 다시 말해, "성립 과정상에서의 민주성"은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어느 정도 확보될 수 있겠지만, "일단 성립된 권력의 운용"에서는 반대로 어느 정도의 비민주성을 내포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은하영웅전설이라는 일본소설에서의 주인공 중 한명인 양웬리는 이와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를 합니다.
'권력은 그것을 획득한 수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따라 정당화 된다.')
이와같은 "성립된 권력의 운용"에 있어서의 비민주성을 보완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정치적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해줄 수 있는 '국민의 의사'가 지속적으로 표출됨은 물론 그것이 실제 권력의 운용의 결과물인 각종의 정책 등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그것은 개인적으로 생각컨대 '인터넷'과 오프라인 상에서의 집단적인 의사의 표출, 즉 '시위'로써 가능합니다.
결론적으로, "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히"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자,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정당한 권리 중 하나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시위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입니다.
법률적 차원에서의 정부의 잘못
그런데 이러한 집회/시위의 자유, 권리 등은 일정한 경우 법률에 근거하여 제한과 통제가 가능합니다. 시위의 통제에 대한 법률적 근거가 익히 들어 알고 계신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법률의 존재, 그리고 그에 입각한 일정 수준에서의 시위에 대한 통제 등에 대하여는 크게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최근 위헌 여부가 논란이 되어던 '집회의 사전신고의무(합헌 판결)'와 '야간 집회 금지(조만간 헌재의 입장이 밝혀질 예정)' 등에 대하여도 개인적으로는 일응 타당한 통제 수단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서두에서 거론한 여러가지 정부의 행태가 그러한 법률적 근거 하에 이루어지는 정당한 통제의 수준을 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고교 시절 사회관련 교과목을 배울 때 한번쯤 들어보셨을텐데, 법률과 윤리(도덕)의 차이점에는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윤리는 내부적 통제, 법률은 외부적 통제", 즉 내심의 의사만으로는 윤리적 제재를 받을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행동으로 표출되기 이전까지는 적어도 법률적으로는 제재받지 않는다는 이야깁니다. 물론, 형법이나 기타 법률에 의하여 '내심의 의사'만으로도 처벌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그러한 경우에도 일정한 의무가 전제될 때의 이야깁니다. 예컨대, 형법상 유기의 죄는 '피유기자에 대한 유기자의 보호의무'가 인정되어야 형법상의 죄에 속하죠. 즉, 부작위 자체가 행동으로 표출되었다는 것을 전제로 처벌한다는 이야깁니다.
보다 쉽게 예를 들자면, 제가 가끔 푸른 지붕에 사시는 어떤 분을 '죽여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했을 경우, 저는 도덕적 차원에서의 비난이나 제재를 받을수는 있어도 법률적으로 '살인의 죄 - 미수범 처벌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결국, 법률에 의하여 개인의 권리나 자유가 통제되기 위하여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외부적 표현을 전제로 합니다. 집시법 상 통제의 대상이 되는 "시위"도 결국 '잠재적 시위'가 아닌 '표현된 시위'를 의미하고 , 이것을 넘어서 대중들 전체를 '잠재적 시위자'로 규정한 채 둘 이상 모이거나 그 동안 시위세력이 가지고 있던 물리적 도구(예컨대, 촛불 등)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통제를 한다는 것은 법률에 의한 자유와 권리의 제한의 정당성을 넘는 조치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부가 보여준 첫번째 잘못, "법률적 차원에서의 잘못"입니다. 이러한 관점에 의한다면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사전 예방의 조치를 취한다고 항변하는 정부측 입장은 법률적으로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볼 수 있겠죠.
정치적 차원에서의 정부의 잘못
이는 서두에서 말씀드린 시위 자체가 가지고 있는 민주성으로부터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시위는 과정상에서 폭력 등이 수반되지 않는 한 그 자체로 민주적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집권세력이 시위 자체를 통제하거나 시위에 대하여 일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권력자는 원래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는 법이니 '두려움'자체는 문제삼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이 국민들의 질타와 비판거리를 만들지 않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질타와 비판의 수단을 아예 강탈해버리는 것이라면 문제라 할 것이고, 여러분도 느끼다시피 아쉽게도 현 정부는 후자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적 차원에서 볼 때, 현대 민주주의 국가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성립된 권력의 운용에서의 비민주성"을 극복하기 위한 시민들의 직접적인 의사 표출 수단을 보장하지 않는 행태이고,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할 의무를 가진 자들이 스스로 귀를 닫아버리는 꼴이라 할 것입니다.
결국, 현재 집권세력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력의 민주성에 대한 자기부정"이요,
나아가 강압적/억압적 수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국민들을 적절히 설득하거나 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무능함에 대한 자기선언"이라 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첫번째 법률적 차원에서의 잘못은 정부측의 잠깐의 오해와 착각 정도로 치부하여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믿을 용의도 있지만, 두번째 정치적 차원에서의 잘못에 관하여는 .... 암울하기만 합니다. 자기들 스스로
민주적이지 않다고, 우리는 무능하다고 이야기하는 작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개선의 여지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결론 : 이명박 정부가 아닌 이명박 정권
그런 이유로, 저는 앞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세력에 대하여 과거 문민정부, 국민정부, 참여정부와 같은 호칭과 달리 "이명박 정권"이라 부르겠습니다.(개인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이 아닌 각하의 호칭을 쓰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제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예의를 많이 차린것이기는한데 ....
정권은 한 나라의 통치기구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권력을 의미합니다. 행정부를 구성하여 정치를 실제 운용하는 군력을 말하는데, 여러가지 형태로 결합되어 사용됩니다. 예컨대, 정당 자체나 정부를 조직하는 정당의 수를 기준으로 '공화당정권', '민주당정권'이라 할수도 있고, '단독정권', '연립정권'이라 할수도 있는 겁니다. 결국, "정권"이라는 키워드 자체가 비민주적인 색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적어도 정치학적으로는 말이죠.
그런데 경험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비민주적인 독재-군부정권에 대하여는 '정부'라는 호칭을 쓰기보다는 '정권'이라는 호칭을 써왔고, 표면적으로나마 직선에 의하여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권력기관이 형성된 노태우 시절부터는 '정부'라는 호칭을 써오는 등 상대적으로 비민주적 색채를 띠는 집권세력과 그렇지 아니한 집권세력 간의 구별수단으로서 '정권' 혹은 '정부'라는 명칭을 구분하여 사용해왔다는 점을 본다면 일응 타당성이 있는 명칭이 아닐까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여 이명박 정권은 과거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 다를바 없는 비민주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란 뜻입니다.
어떻습니까? 그들은 과연 "정권" 입니까, "정부"입니까?
판단은 여러분이 하실 일이지만 적어도 제게는 정당하게 성립/운용되어져서 지지를 해주어야 할 권력이 아닌
87년 민주화 이전의 권력들과 마찬가지로 투쟁과 타도의 대상이 되어져야 하는 권력으로 보입니다.
- 2009년 6월 민주화의 달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