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송광사의 부도)
[김삿갓과 징역 40년]
75세의 남자, 12살에 부모를 잃고,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다가 결혼을 하였으나 얼마뒤 처도 사별하고 자식들도 모두 어려서 잃었다.
집도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15번에 걸쳐 40년 이상을 교도소에서 살다가 출소한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범행을 하여 구속되었다.
중풍 고혈압, 신경통, 관절염 등 노환에다가 수전증으로 한 손마저 잘 쓰지 못하고 있으면서....
이 사람이 평생동안 행한 범행은 편의점이나 가게 등에서 가짜 금장시계 등을 맡기고 20만원 전후의 담배를 외상으로 교부받아 편취하는 것이었다(물론, 그 담배를 어디 싸게 팔아 목숨을 부지하였겠지만....).
법원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김삿갓의 시 전문을 판결문에 인용하면서 피고인의 항소를 받아들여 징역 7월이라는 파격적인 감형을 해주었다.
피고인을 보면 김병연(김삿갓, 1807~1863)이 자신의 일생을 읊은 난고평생(蘭皐平生)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면서 피고인과 김삿갓을 같이 슬퍼하였다.
법원은 시인으로서의 김병연의 삶과 죄인으로서의 피고인의 삶이 완연히 다를 것도 같지만, 조실부모하고 젊은 시절부터 유랑생활하며 떠돌다 결국 객사한 김병연의 삶을 그린 시가, 역시 조실부모하고 젊어서 유랑극단 생활을 하다가 범죄에 연루되어 가족이나 재산 등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잃고 20대 후반부터 70대 후반이 된 지금까지 50여년간 이 교도소, 저 교도소, 심지어는 감호소까지 제집처럼 들락거리면서 인생을 허비하고, 급기야는 중풍에 걸려 한 손 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고, 고혈압 등 신병에 걸려 험난한 인생이나마 돌이켜 정리할 시간도 잘 주어질 것 같지 않은 그런 처지에 처하여서도 자질구레한 범죄 외의 다른 연명수단도 찾지 못하여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딱한 피고인의 처지를 읊은 것처럼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고 평하였다.
피고인이 이렇게 된 근본적인 잘못은 물론 피고인에게 있겠지만, 호구지책으로 담뱃값이나 사기 쳐 생활하는 잡범에 불과한 피고인이, 어찌 보면 실질적으로 무기형을 선고받은 무기수가 복역하는 기간보다도 더 길지 모르는 40년 이상을 복역하게 된 것은 바꿔 말하면 현행 형벌 및 교정제도가 피고인에 대하여는 실패하였음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면서
피고인의 구금기간이 이미 7개월여에 이르러 이사건 범죄에 대한 징벌은 어느 정도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도 있으므로 비록 돌아갈 고향집이나 기다려주는 가족이 없을지라도, 노쇠한 피고인이 1년씩이나 되는 기간을 교도소에서 보내도록 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으로 보이고, 피고인 스스로도 참회하면서 마지막 기회를 부여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으므로
피고인으로 하여금 얼마나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남은 시간이나마 심신을 잘 추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또한 비록 늦었지만 방황을 끝내고 인간다운 삶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마지막 기회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누범 전과나 범행수법, 범행 횟수 등으로 인하여 실형 자체는 불가피하지만 원심에서 선고한 형보다 대폭 감하는 형을 선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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蘭皐平生(난고평생)--> 金炳淵(김삿갓)
鳥巢獸穴皆有居(조소수혈개유거) 날짐승도 길짐승도 모두 제 집이 있건만
顧我平生獨自傷(고아평생독자상) 돌아보니 한평생 혼자 슬프게 살아왔다
芒鞋竹杖路千里(망혜죽장로천리) 짚신 신고 지팡이 끌고 천릿길을 떠돌며
水性雲心家四方(수성운심가사방)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었다
尤人不可怨天難(우인불가원천난) 사람도 하늘도 원망할 일이 못 되니
歲暮悲懷餘寸腸(세모비회여촌장) 해마다 세모에 혼자 가슴아파 하였다
初年自謂得樂地(초년자위득락지) 어려서는 이 몸도 넉넉한 집에 태어나
漢北知吾生長鄕(한북지오생장향) 강남의 떵떵거리는 곳에서 자랐고
簪纓先世富貴人(잠영선세부귀인) 조상들도 부귀영화를 누려왔고
花柳長安名勝庄(화류장안명승장) 장안에서도 이름 높은 가문이었다
隣人也賀弄璋慶(인인야하농장경)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다고 축하해주고
早晩前期冠蓋場(조만전기관개장) 언젠가는 출세하리라 기대마저 컸었건만
髮毛稍長命漸奇(발모초장명점기) 세월이 흐르면서 운명은 자꾸 기구해지고
灰劫殘門飜海桑(회겁잔문번해상) 마침내 상전이 벽해처럼 변하였다
依無親戚世情薄(의무친척세정박) 세상에 의지할 친척없고 인심마저 각박한데
哭盡爺孃家事荒(곡진야양가사황) 부모마저 세상을 떠 집안이 망하였다
終南曉鍾一納履(종남효종일납리) 새벽에 남산 종소리 들으며 방랑길에 오르니
風土東邦心細量(풍토동방심세양) 생소한 객지라서 마음마저 애달프다
心猶異域首丘狐(심유이역수구호) 마음은 고향 그리는 떠돌이 여우와 같고
勢亦窮途觸藩羊(세역궁도촉번양) 신세마저 궁지에 몰린 양과 같구다
南州從古過客多(남주종고과객다) 남쪽지방은 자고로 과객이 많다 하지만
轉蓬浮萍經幾霜(전봉부평경기상) 부평초처럼 떠돌아다니기 몇 해였던가
搖頭行勢豈本習(요두행세기본습) 머리굽혀 굽신거림이 어찌 내 본성일까마는
闋口圖生惟所長(결구도생유소장) 목구멍에 풀칠하자니 어쩔 수가 없구다
光陰漸向此中失(광음점향차중실) 그런 중에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흘러
三角靑山何渺茫(삼각청산하묘망) 삼각산 푸른 모습 어찌 그리 아득할까
江山乞號慣千門(강산걸호관천문) 떠돌며 구걸한 집 수없이 많았지만
風月行裝空一囊(풍월행장공일낭) 풍월을 읊는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
千金之子萬石君(천금지자만석군) 큰 부자 작은 부자 두루 찾아다니며
厚薄家風均試嘗(후박가풍균시상) 후하고 박한 집 모두 거쳐보았지만
身窮每遇俗眼白(신궁매우속안백) 팔자가 기구하여 남의 눈총만 받다보니
歲去偏傷鬢髮蒼(세거편상빈발창) 흐르는 세월 속에 머리만 희었도다
歸兮亦難佇亦難(귀혜역난저역난) 돌아가기는커녕 머물기마저 어려워
幾日彷徨中路傍(기일방황중로방) 길바닥에 헤매는 것이 몇 날 몇 해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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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의 깊은 뜻은 알겠으나
김삿갓도 아닌 저 노친네가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을까?
아니 갈 곳 없고 비빌 데가 없는 저 노친네
어디 가서 다시 입에 풀칠을 할 수 있을꼬?
근데 저렇게 판결을 힘들여 쓰면
언제 그 많은 사건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
(‘09. 6. 2.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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