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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풍경
2006년 [괴물] 이후 봉준호 감독이 내놓은 장편영화 [마더]. 궁금하고 기대되는 영화였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나보다 먼저 이 영화를 본 어느 후배의 말처럼 [마더]는 오프닝 시퀀스부터 엔딩 스크롤이 오를 때까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면서 한시도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했다.
늦가을일까, 초겨울쯤일까. 바싹하게 말라 도무지 생명력이라고는 감지되지를 않는, 희멀겋게 누런색의 갈대밭으로 가득 메워진 화면. 그리고 그 화면의 정면으로 점점 다가와 둥둥둥, 심장 고동 같은 타악기 소리와 라틴 춤곡인 듯 한 기타 연주에 맞추어 균형 잡히지도, 아름답지도 않은 춤을 매우 익숙하게 추는 여인, '마더'. 춤이란 보통 흥에 겨워서 움직이는 몸동작인데 그녀의 표정과 몸짓에선 즐거움을 읽을 수 없다. 그보다는 상식을 벗어난 광기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 영화는 '광기'에 관한 영화가 될 터였다.
어느 작은 마을에서 약재상을 하며 아들 도준(원빈)과 단 둘이 살고 있는 엄마(김혜자). 엄마는 온 생각을 아들에게 집중하며 살고 있다. 아마도 20대의 도준이 마을 사람들로부터 ‘바보’라고 놀림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의 조바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준은 끊임없는 엄마의 당부를 귀찮아하며 흘려듣는다. 그리고 좀 불량해 보이는 친구 진태(진구)와 함께 시끄러운 일들을 벌이고 다닌다. 그것이 좀 모자란 청년 도준의 일상이고 그 뒷수습에 숨이 가쁜 것이 도준이 엄마의 나날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고등학교 여학생이 밤길에 살해되고 도준이 살인 용의자로 지목된다. 게다가 그는 경찰 취조 중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말아 하루아침에 살인범이 되고 만다.
경찰은 허술한 수사 끝에 서둘러 사건을 종결짓는다. 애써 엄마가 찾아간 동네 인기 변호사는 건성으로 도준을 면회한 후 딱 4년만 그를 정신병원에 있게 하자며 엄마를 설득하려 한다. 아들의 무죄를 믿고 주장하지만 이를 증명하기 위해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엄마는 도준의 결백을 밝히려고 직접 나선다.
영화는 시종일관 어느 누구도 제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는 어느 마을의 사람들을 묘사하고 있다. 경찰은 이 마을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이 도대체 얼마만 인가며 큰 사건임에는 놀라지만 그 심각한 사건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 비극적으로 죽은 여학생에 대한 동정도, 살인범으로 지목된 도준에 대한 분노조차 이들에겐 존재하지 않는다.
변호사는 변호가 아닌 다른 일들로 바쁘고 약재를 사러오는 단골 여인은 남편의 지위를 이용해 도준 엄마와의 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한다. 도준의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중국산 약재를 국산으로 속여 파는 그 단골 여인의 속임수에 동조한다. 더 나아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진관 여주인에게 불법으로 침을 놓아준다. 사진관 주인은 여학생 손님의 얼굴에 난 흉터를 쓱싹 없애주는 사진을 만들어낸다. 학생들은 폭력, 본드흡입, 원조교제, 핸드폰 불법개조 등등을 서슴지 않는다. 진태는 도준을 치고 달아난 어느 유명 교수의 뺑소니차를 끝까지 따라가-여기까지는 그가 정당해 보인다-그들의 외제 승용차에 일격을 가해 백미러를 부러뜨린 후-이것은 불법적인 행위이다-경찰서에서 그것을 도준의 행위라고 거짓말을 한다. 더욱이 그는 교수들과의 몸싸움 중에 골프채 하나를 슬쩍하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상식을 찾아 볼 수 없다. 상식을 찾아 볼 수 없는 곳에서 만나게 되는 것, 그것은 바로 ‘광기’이다.
이 마을에는 따뜻한 인간관계도 없어 보인다. 도대체 모두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실제로 죽은 여학생의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어 제 정신이 아니기도 하다-이곳에 정상적으로 보이는 인간관계가 있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서로 서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사람 사이에 돈을 매개로 한 거래가 이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이다. 이 사람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다.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는 아마도 ‘엄마’가 유일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그 정도를 지나친 듯하여 불안하고 또 병적이며 그런 사랑이 불편한 도준은 엄마로부터 떨어져 나가려고만 한다.
몰상식과 사람 사이의 고립을 초래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극히 비정상적인 자기애 혹은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타인에 대한 고려나 배려가 없이 자기에게 좋을 대로 결정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의 바탕은 이기주의이며 이기주의는 사회적 관계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내가 아닌 남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상식을 바탕으로 해야만 사회적 관계는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했을 때 비록 그것이 옳은 말일지라도 상처받고 분노하게 하는 확실한 자양분인 자기애는 지극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며 이 자기애는 쉽게 자기연민을 허용한다. 자기연민은 또한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지 않은 것인지 비이성적으로 노심초사하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혹 누군가가 치명적인 약점이나 상처, 즉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면 그만 이성을 잃고 과잉된 반응을 하고 마는 것이다. [마더]에서 도준이 ‘바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피살된 여학생 아정이 “남자가 싫으니?”라는 말을 들었을 때, 엄마가 도준에 대한 험담을 들었을 때 폭발했던 것처럼.
그래서 [마더]가 묘사하고 있는 것은 지옥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나 고려는 싹 무시한 채 아들을 위해서라면(도준의 엄마에게 아들은 연장된 자아 같은 것이다. 따라서 도준에 대한 ‘엄마’의 사랑은 자기애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고 보여 진다) 비도덕적 행동이나 범법 행위 등 어떤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엄마는 지옥에 어울린다. 그녀는 괴물이다.
[마더]가 으스스한 호러영화처럼 마음을 서늘하게 하는 이유는 지고지순한 모정(그것은 어쩌면 ‘모성신화’에 세뇌된 결과일지도 모르지만)의 '광기'와 아무런 악의가 없는 우리 친근한 이웃들의 ‘광기’를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악인에게서 광기를 보는 것은 그다지 무섭지 않다. 어쩌면 ‘악’은 그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이라 ‘광기’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터이니. 그러나 착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서 보여 지는 광기는 무섭다. 그것은 익숙하거나 당연한 것이 아니라서 그 향방을 예측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마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영화의 말미에서 희미한 희망이 느껴는 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도준 대신 감옥에 갇힌 또 한 명의 정신 지체 청년을 바라보며 한 없이 눈물을 흘리는 ‘엄마’가 그녀 스스로 양심을 일깨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철장너머에 앉아있는 다른 ‘엄마’의 아들인 타자를 비로소 인식하고 그에 대한 연민을 그녀가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에게 아킬레스건과도 같은 ‘비밀’을 공유하게 된 ‘엄마’와 도준의 앞날이 실로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도준이 그의 엄마를 돌보기 시작하게 되었다는 데에서, 엄마가 지난날에 대해 뉘우치고 있다는 암시에서, 그리고 그들의 잘못을 비겁하게 부조리한 운명을 지워 준 신의 탓, 혹은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리며 복수 따위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꾹꾹 각자의 내면으로 눌러 담으며 고스란히 스스로 감당하려고 한다는 데에서 그래도 희망을 애써 찾아본다.
그런데 이 마을은-혹은 우리나라는-도대체 어디에서부터 잘 못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