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생 : 1912년 5월 25일
사망 : 1989년 4월 21일
고종의 외동딸로 왕과 왕비의 사이에서 낳은 딸을 공주라 하고
왕과 차비 혹은 궁녀사이에 낳은 딸을 옹주라한다.
고종이 환갑이 되던해에 얻은 선물로 고종이 가장 아끼는 외동딸이었다.
덕혜옹주의 일상은 동아 일보 조선일보를 통해 민중들에게 알려졌다.
민중들에게 그녀는 한가닥 희망이었다.
덕혜옹주가 8살이 되던해에 아버지 고종은 갑자기 사망했다.
친일파들이 일본 강점의 불법성을 알리려는것을 눈치채고 궁녀를 시켜 밤참에 독을 타고 고종을 시해 한것이다.
그녀는 아버지의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중에 하나였다.
1925년 고종이 가장 우려하던 덕혜옹주의 일본유학명령이 떨어졌다.
앞서 영친왕 이은도 보내져 일본인과 결혼을 한 상태였다.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항상 보온병을 가지고다녔다고 한다.
친구들의 증언에 그녀는 자기 또한 언제 아버지 처럼 독살당하지 않으려고 보온병을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어린나이에 얼마나 무서웠을까..?
일본생활 5년째 그녀의 어머니 양귀인이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옹주는 고국땅을 찾았지만 일본에 의해 슬픔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다시 일본으로 보내졌다.
3년장을 했었어야 했지만 말이다.
일본으로 돌아온 옹주는 조발성 치매증(정신분열)증세를 보였다.
일본은 이러한 상황을 숨긴채 소오 다케유키 백작과 강제 결혼을 시킨다.
1931년 5월의 일이었다. 결혼을 했음에도 그녀의 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결혼 소식에 민중들은 분노하였지만 그녀는 점차 잊혀져 갔다.
소오 다케유키 백작과의 사이에서 마사에라는 딸을 얻었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일본에서는 신헌법의 시행으로 다케유키 백작도 평민과 같은 생활을 살아야 했다.
그는 덕혜옹주를 도쿄 근처의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보내고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하여 새결혼을 하였다.
훗날 그녀의 딸 마사에가 유서를 남긴채 사라졌지만 그녀는 알지 못한다.
우여곡절끝에 이승만 정부에서 귀환을 거절당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받아 들여져
15년간의 홀로 정신병원의 생활은 그렇게 끝이 나고 1962년 1월 26일 그녀는 고국땅을 밟는다.
38년만에 밟는 고국땅이었다.
그녀가 정신이 맑았을때 써놓은 낙서가 있다.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1989년 4월 21일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8살 어린이가 지기엔 너무 컸던 짐.
사춘기 소녀가 겪기엔 너무나도 무거웠던 현실.
덕혜옹주는 이런 짐을 내려 놓은 것이다. 정신을 내려놓음으로 인해...
그녀는 그저 부모님의 사랑이 필요로 했던 어린 소녀였을 뿐이었다.
어린 그녀에게 세상은 너무 큰 고통만 주었다.
그녀는 아버지 고종뒤에 묻혀졌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