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 누군가의 글을 인용할 때 그 사람을 꼭 개인적으로 알아야 하진 않지만, 본인이 싫어하시길래 이름은 뺐습니다. 인신공격이나 그 사람을 직접적으로 비방할 생각은 없었기에 처음 글을 작성할 때 부터"내가 지적하는 댓글들에 나타난 의식"이라고 비판의 대상을 최대한 제한했다는 점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방금 싸이월드 뉴스에서 뉴시스의 권철암기자가 쓴, “사춘기 여학생 생활지도 때는 '말조심'” 이라는 기사와 그 아래 달린 댓글들을 보았다. 기사 내용은 전주시의 한 체육교사가 여고생에게 몰상식한 언사를 하여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이 체육교사는 “지난 5일 수업 중 한 여학생이 교복을 줄여 입은 것을 보고 ‘왜 옷을 줄여 입느냐, 옷이 터질라고 한다’는 식의 말을 했다.” 학생은 이에 심한 수치심을 느끼고 자신의 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한국의 교육환경을 감안하면 아주 잘한 일). 학부모의 항의에 한동안 잘못이 없다고 맞서던 교사는 학교측의 권유에 따라 “9일 하교 이전에 공식 사과를 할 예정”이라고 기사는 밝힌다[*].
이 기사에 대한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희망’이었다. 여고생이 아직은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인격을 인지하고 현명한 대처를 하였다는 점이 한국 교육이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였다. 학생의 부모 역시 전형적인 기성세대의 반응에서 벗어나, 학생의 인격이 인정될수 있는 교육환경이 되도록 적극적인 요청을 하였다. 또한 학교측의 협조 역시 한국 교육의 발전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마음은 댓글을 보면서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추천수가 가장 많은 댓글은 “학생이 잘못했다 추천” 이라는 글이다. 두번째 베플 “애가 집에와서 그런말을 했다고 쫄래쫄래 학교로 쫓아가는 애미는 뭐하는 사람이냐?”와 마지막 베플, “참나 교권이 무너지면 나라가 휘청거린다 / 잘잘못을 떠나 지금 상황을 직시할 안목이 필요하다.” 역시 학생측의 반응을 비판하고 교사를 옹호하는 내용이었다.
위와 같은 댓글들이 다수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또 댓글중 대부분이 학생을 비난하는 내용(“처지는 무슨 처지여..사과 안해도 되겠구만..오히려 부모님이 선생한테 사과해야할거 같은데”, “학생아...개념없니? / 부모야...개념없니? / 제발좀 적당히 하자”)이라는 것은 아직 많은 한국 사람들이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뒤쳐지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뒤쳐지는 사고방식이라는 표현도 사실 부드러운 측에 속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지적하는 댓글들에 나타난 의식은 몰상식하며, 성차별적이고—군대적, 인격모독적, 비논리적이며, 비성숙하고, 후진국스러우며, 구태의연하다.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정신적으로 건강하며 성숙한 사람이라면 언사를 함에 있어서 상대방의 인격을 건드리지 않으려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나 공개된 장소에서 타인의 인격을 해하는 유치한 발언은 성인이라면 누구나 지양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사상에 나타난 교사의 언사는 상식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언사가 상식적인 일이라 생각하는 이는 많은 사람들이 피하고 싶어하는 인물일 것이라 나는 확신한다.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이 상식을 인지하면서도 교육환경 내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면책권을 준다. 하지만 누구하나 이 비논리와 부조리에 의문을 갖거나—혹은 이를 표면적으로 인정하는 이조차 없다. 이것은 많은 한국인들이 인격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이 무시되는 환경에서 교육된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어떻게 인격이 무엇이며, 이것이 어떻게 존중되어야 하는것인지 이해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타인에게 특정한 옷 치수를 강요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문제의 체육교사가 타인의 겉모습에 대한 자기 생각을 표현하고자 했으면 신중한 방법으로 이를 전달했어야 했으며, 기사에 나온 표현방식은 학생의 수치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누군가가 공개적인 장소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의 신체에 대한 묘사를 부정적으로 한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인 수치심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즉, 학생의 수치심은 정당한 근거가 있는 반면 교사의 발언은 그 근거가 타당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문제의 교사가 교칙을 집행하기 위해 학생을 지적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 교칙이란 것 자체에 대한 의문은 가지지 않는가? 지정된 사이즈의 교복을 입는 것이, 그것을 수업시간에 확인하고 강요하는 것이 진정 교육에 필요한 것인가? 이런 것을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어를 통해 지적하는 것이 교권을 높이는 일인가?
이런 기본적인 의문을 무시하는 무조건적인 면이 한국 교육이 마치 군대와 같은 환경 안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많은 한국인들은 이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런 점들을 느끼지도 못하고, 고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런 낡은 생각들이 어우러져서 경제성장에 비해 낮은 인권의식, 낮은 여권(女權)으로 표면화되고 있지 않은가.
비논리에 너무 익숙해졌기때문에 당연한 것이 비난받을 일이 되고 상식적인 대처가 비상식적인 비약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이 기사에서 단지 ‘희망’이 보인다고 말한 이유는 교사가 뒤늦게 사과해야 하는 이 상황 역시 나에게는 한참 불만족스럽기 때문이다. 애초에 교사는 무례한 언사를 하지 말았어야 했고, 본인 스스로 문제점을 인식 했어야 했다. 그리고 학교 역시 학생이 수업중 수치심을 느꼈을때 (참 신기하게도 한국교육에서 학생의 수치심이란 것은 정말 100% 무시되는 요소이다) 당당히 사과를 요구할 수 있는 분위기를 제공해야 하는 것이다.
어리기 때문에, 또는 학생신분이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처사를 받고 참아야 할 이유는 없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당연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더 나아가, 기사제목이 연상시키듯 사춘기 소녀에게만 수치심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떤 특정 집단에게 “너희들은 이런 위치이니까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을것”이라는 입장을 취한다면 어느 누구도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권철암. "사춘기 여학생 생활지도 때는 '말조심'". 뉴시스. 2009년 6월 9일. <http://news.cyworld.com/view/20090609n13215?mid=n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