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대 그림을 몽땅 불태워 버린 남자?
프랑스의 후기 인상파 화가 P. 고갱의 그림 한 장의 가격이 전 세계미술시장에서 수억대를 호가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을 스스로 불태워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S. 모옴의 <달과 6펜스>라는 소설 속의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고갱의 삶을 모델로 했지만, 실제 그의 삶과는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그 소설 속에 주인공 고갱, 아니 화가 스트릭랜드는 자신의 온 생명을 다 바쳐 한평생 자신이 그렸던 그림들을 아내에게 모두 불태우라고 유언을 남긴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가벼운 일상생활의 한 예로 해답을 찾아보자. 만약, 당신이 여름철 아이들과 물놀이를 가기 위해 풍선보트를 구입했다. 아이들은 그 풍선보트의 디자인과 색상을 너무 좋아했다. 그런데 그 풍선보트에 미세한 틈을 발견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당신은 그 풍선보트를 판매한 상점에 다시 찾아가서 새로운 제품으로 교환 할 수도 있고, 그냥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서 그것을 장식품으로 간직(?)할 수도 있을까? 어쨌거나, 미세한 틈이 있는 풍선보트는 디자인과 색상이 아무리 좋아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작은 틈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치명적인 목숨을 빼앗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철학(생각)에도 미세한 틈이 있을 수 있다. 여기에서 철학의 미세한 틈이란 자기 철학의 모순을 말한다. 자기 철학의 모순은 많이 배웠다고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공자가 한 제자에게 “너는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묻자, 그 제자는 “그렇습니다. 아닌가요?”라고 대답했다. 이에 공자는 “아니다. 나는 하나로 꿸 뿐이다.(일이관지, 一以貫之)”라는 깨달음을 전한다. 이 세상의 우주만물은 복잡하고 다양해서 도대체 알 수 없는 것 같지만, 그 하나(一)의 원리로 관통되어 연결되어 있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지식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학문이 확고할 수 없다.(子曰,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라고 하였다. 즉, 자기 철학의 모순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학문과 사색(생각)을 병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성현 공자님처럼 완벽한 철학과 깨달음을 추구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인들은 부단한 자기 철학의 모순을 발견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미세한 틈이 있는 풍선보트에 사랑하는 자녀를 태우는 위태함처럼 세상이 위태해 질 수 있다. 오늘날 인터넷 시대에 개인은 방안에서 개인 컴퓨터를 이용하여 글을 작성하고 사진을 찍어 간편하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파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글과 그림 혹은 음악이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고, 즐거움을 줄 수도 있지만 진리에 눈을 멀게 만들 수도 있다.
어쨌건,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재주가 없는 일반 사람들보다, 오히려, 자기 철학의 모순을 발견하지 못한 예술인들이다. 그들의 재능은 뛰어나서 글과 그림 그리고 음악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애석하게 그의 작품에 미세한 틈으로 인하여 치명적으로 진리를 왜곡한다. 그래서 훌륭한 지식인과 뛰어난 예술인들은 자신의 글과 작품에 애착을 지니기도 하지만, 치열하고 부단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다시 S. 모옴의 <달과 6펜스>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 주인공 화가가 죽으면서 자신의 아내에게 자신이 평생 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두 불태우도록 유언을 남긴 그 이유를 찾았는가?
PS : 이 글의 원제는 <예술인들이 체계적인 철학을 지니는 이유>이다.
추천글 : <예술인은 고급 창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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