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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로 무시 당하고 학력차별로 괴로워하는 내 친구들에게

김창규 |2009.06.19 22:30
조회 942 |추천 7


가끔씩 허접스런 글을 기고하거나 자잘한 대회에서 상금을 받아 용돈벌이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내 공식적인 직책은 백수다. 물론 국내 유수의 대기업에서 수많은 스카우트를 거절한 탓도 있지만(웃음), 이 생활을 하고 있노라면 내 적성이 바로 이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거의 천직수준이다.


 


일전에 군대라는 게 길게 보면 꽤 괜찮은 경험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했는데, 개인적으로 백수도 그에 못지 않는 좋은 인간단련이 되는 듯하다. 물론 나처럼 대책 없이 낙천적인 사람에 한해서 일수도 있지만 내 인생에서 이 기간만큼 인간을 아는데 좋은 경험을 한적도 없다. 군대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조금은 손에 잡힌다.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얼마나 비열하고 나약한 존재인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강하고 선한 존재인지. 백수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가끔은 새로운 눈이 뜨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이 인간을 보는 제3의 눈인가 싶을 정도로. (웃음)일전에 친구들과 모여 이런저런 세상얘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는데 그 중의 반은 졸업반이었고 그 중의 반은 휴학이나 유학을 다녀온 관계로 1년 이후에 졸업 할 친구들이었다. 물론, 이미 졸업을 한 친구도 있었다. 그런데 아직 졸업까지 1년이나 남은 친구가 졸업 후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친구를 은근히 무시하기 시작했다. ‘아니.. 저렇게 인간적인 친구가 저런 말을 하다니’ 하고 귀를 의심했지만 인간의 본성이란 게 또 그렇게 드러나나 보다. 그의 철없는 한마디 한마디가 그 곳에 앉아 있는 여러 사람을 아프게 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가 인간을 판단하는 기준은 이런 듯하다. 졸업하고 바로 번듯한 회사나 직업을 갖지 못하면 한심하고 가망 없는 녀석, 그 반대라면, 번듯한 기업에 다니게 될 거라고 상상하는 자신과 동급. 물론 나는 그 친구가 졸업하고 어디에 취직되든 상관없이(내가 사장이라면 안 쓴다. - 웃음)내 마음의 기준표에서 이미 F를 한번 주었다.


 


옛날 같으면 소주병으로 머리를 한대 후려친 뒤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어떤 경우가 있어도 친구를 무시해선 안돼. 이 X만한 10xx야’라고. 나도 좀 마음이 약해져서(마음이 약해진 것 치고는 어제 또 화나는 일이 있어 벽을 쳤더니 손이 시뻘겋다. 이 버릇 고쳐야 하는데-웃음)그러진 못했다. 대신 그들이 차근차근 준비하는 어떤 일들에 대해서(니가 무시할 만한 녀석들이 아니야 따위), 그리고 역시나 빠짐없이 내 자랑도 좀 했던 것 같다. 알다시피 나는 너무 잘나서 자랑을 안 할 수가 없다. (웃음)

 



또 한번은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와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는데 이 친구도 예상치 못하게 은근슬쩍 자랑 아닌 자랑을 하는 것 아닌가. 당연히도 ‘얘가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지… 뭐 잘못 먹었나..’ 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웃음) 내 기준으로 대기업에 다니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부러워할 일이 아니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알다시피 나는 신부나 스님이 되는 친구들, 그리고 세계여행을 다니거나 그림솜씨가 좋은 친구들을 부러워한다. 그러니까 내게 질투를 유발하려면 적어도 ‘요번에 남미 지대로 보고 올려구 한 2달간 떠나~’따위의 발언을 하는 게 좋다. 그러면 나 진짜 배 아파서 이틀 동안 잠 못 잔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살다 보면 남의 시기심이나 질투로 밖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만큼 불쌍한 사람도 없다. 왜? 끊임없이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니까. 자기가 무얼 하고 싶고 무얼 원하는지 보다, 남이 얼마나 자기를 부러워하고 질투하냐가 이런 친구들의 인생 목표다. 그래서 이들은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고 평생 남을 까야 한다. 자기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 하는 일보다 얼마나 뛰어난지, 자기 친구가 다른 이의 친구보다 얼마나 잘났는지. 내가 이따금 놀러 가는 한 게시판에는 자기가 배우는 언어가 더 위대하다고 서로 까는 애들도 있다.(진짜다)심지어 연애조차도 자기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보다 남들이 얼만큼 부러워야 하는지가 관건인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 달라 내가 뭐라할 건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서 나중에 뭐가 남을까 싶다.



 

학창시절, 부모님과 차를 타고 가는데 한번은 이런 말을 들었다. 너처럼 너무 그렇게 사는 것도 안 좋다고. 무슨 대학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은데 내가 너무 그런데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소위 일류 대학에 합격한 애들을 좀 부러워하거나(난 초중고대 통틀어 무조건 내가 다니는 곳이 일류라고 생각한다-웃음)열등감을 가져야 발전이 있을 텐데 하고 말이다. 물론 무지하게 잘난 나도(웃음)열등감이 있기는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애를 부러워 한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건 맘만 먹으면 내가 최고로 잘할 수 있는 거니까.(다만 당신과 마찬가지로 맘을 먹어 본적은 없다-웃음)


 


하지만 이것 때문에 마음이 아팠던 적이 딱 한번 있었다. 친한 친구가 취업 준비를 하다가 ‘난 한번 졌다 아이가’라고 말을 하는데 약간 울컥했다. 웬만해선 누가 앞에서 질질 짜고 난리를 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내가 그땐 정말 울컥했다. 한번 졌다는 말은 지방의 그다지 지명도 없는 학교를 졸업한 관계로 차별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이 친구는 자기 분야에서 전국 제일의 상까지 받은 친군데, 그가 이런 말을 할 정도면 대한민국의 학력차별이 얼마나 두터운지, 만사에 낙천적인 나도 그 순간은 좀 그랬다. (물론 나는 이 친구가 언젠가 대박을 칠 거라는 사실을 초등학교 이후부터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릴 때부터 줄곧 이 이야기를 강조했는데 사실 그게 이유가 있다. 고백하건 데 난 어릴 때부터 내가 대기만성형이란 걸 눈치채고 잘 될 놈들을 좀 골랐다. 내가 잘될 때까지 떡고물이라도 받으면서 버티려고. - 웃음)     


 


지금 백수로 무시 받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학력차별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친구들. 나도 잘난 것 없고 낙천적인 게 전부인 한심한 사람이지만 인생, 길게 봐야 된다. 내가 보기에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능력 있는 친구들인데, 조금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는 이유만으로 받아서는 안될 상처를 받거나, 필요이상으로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모습을 보자면 너무 가슴이 아프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는 얘기 몇 개하고 끝내자. 내가 알고 있는 가장 한심한, 아니 주위 사람들에게 한심하게 보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무대는 십 수년 전, 서울의 한 집이다. 삼십이 넘게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는 한 남자가 있었다. 멀쩡한 아들이 10년 동안 집에서만 빈둥거리고 있으니 한심해서 공무원 시험이라도 보라고 하는데 아들은 언제나 묵묵부답, 어머니 속이 터져 나갈 지경이었다. 서른 중반쯤, 시나리오가 당선됐다고 하니 어머니가 ‘이제 거짓말까지 하는구나’라고 하면서 슬픈 눈으로 바라보셨단다. 이 사람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그리고 ‘달콤한 인생’을 만든 김지운 감독이다. 백수 시절에는 아무도 자기랑 안 놀아줬다는데 지금은 주위에 사람이 북적 인다.



    

영국의 한 작은 마을. 폭력 남편과 이혼한 후 싱글맘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는 정부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수년간을 실업자로 지냈다. 분유 값을 벌기 위해 예전에 쓰던 소설을 겨우 이어나가 완성했지만 십 수 군데의 출판사에서 모조리 거절당했고 마지막에 이름없는 조그만 출판사가 겨우 그녀의 책을 출판해 주었다. 그 책이 바로 전세계 65개국 언어로 출판되고 있는 해리포터. 참고로 저자인 조앤롤링의 공식재산은 이미 2004년도에 1조원을 넘었다. 해리포터가 10년간(1997년~2006년)벌어 들인 돈이 같은 기간 한국의 반도체 사업에서 벌어들인 돈보다 77조원이 많으니(해리포터: 308조, 우리나라 반도체: 231조)가히 백수계의 지존이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한 분만 더 소개하자. 백수 계에서 이 분을 빼면 뺨 맞는다. 약 500년 전에 32살까지 백수로 지내다가 겨우 무관에 급제한 분이 있었다. 조선 시대 평균수명이 40세 전후였으니 지금으로 치면 굉장한 나이에 취직한 셈이다. 그 후에도 14년 동안 미관말직에 전전했던 그는, 아마 시대가 평온했다면 변방의 이름없는 말단 장교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몇 번의 좌절을 거친 후, 역사에 이름을 남긴다. 그가 바로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23전 23승 무패의 싸나이 성웅 이순신이다. 이분께서는 백수 계에서도 성웅 되시겠다.



 

상고출신의 고 노무현 대통령도 막노동판까지 전전하며 약 10년간 백수생활을 하지 않았던가? 백수로 무시 받고 학력 때문에 차별 받는 내 친구들. 서럽고 슬프더라도 자신에 대한 믿음만은 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이럴 때가 인생의 황금기를 위한 단단한 받침대이자 진짜 친구를 가릴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니겠는가. 어둠이 길수록 새벽도 가깝다. 적어도 난 그렇게 믿는다.


 

 

 







photo by 공광승
note by 죽지 않는 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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