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인사
부인사는 동구 신무동 팔공산 남쪽 중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현재의 부인사는 옛 부인사 경역의 뒷쪽 산밑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절이지만 한때는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호국사찰로서 매우 중요한 사찰이다.
그러나 부인사에 관한 개창시기나 연혁은 잘 알려지지 않아 부인사의 창건연대와 위치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 편이다.
당시 7세기 초 창건으로 전해오고 있는 현 부인사에는 신라 선덕여왕 어진을 모시고 매년 음력 3월 보름에 신무동 주민과 사찰측 및 경주 김씨 종중에서 선덕여왕 숭모제를 지내는 것에서 부인사의 내력을 짐작할 만하다.
옛 절터가 지금은 포도밭으로 변해 있지만 현 사찰에서 200m 남쪽에 당간지주가 남아 있고 팔공산 순환도로 남쪽으로 추정 금당좌가 연접하고 있어 옛날 번창기의 사역 범위를 보여주고 있다. 현 부인사는 6.25동란 때 불탄 것을 1959년에 중건한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국내에서 유일한 승시장이 부인사에 개설될 정도로 아주 번창했던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정도전의 송화암종사우운시서의 기록 중에도 부인사가 팔공산에 위치한 거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인사는 고려 초조대장경의 판각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현종 3.4년(1013)경부터 조각되기 시작하여 숙종 4년(1099)에 완성된 총 1만 여권의 초조대장경은 처음 여왕사, 개국사 등에 봉안하였다가 그 후 어느 시기에 이곳 부인사에 봉안하게 되었고 이곳에서 여러번의 인간(印刊)이 있었다. 그후 고종 19년(1232) 몽고의 제2차 침입시 원군이 부인사 대장경과 황룡사 9층 목탑을 불태워버렸다.
이상의 자료들을 통해서도 부인사의 창건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사찰의 위치가 지금의 영천 근방으로 팔공산 동화사와 인접해 있었고 거찰로서 고려 초조대장경을 보관하여 외침을 극복하려 했던 호국사찰임을 알 수 있다.
찾아 가시는 길 : 팔공산 자연공원 내 위치.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신무동 356
2. 파계사
파계사 일대는 울창한 숲,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속세를 벗어난 듯한 기분에 젖어들게 한다. 부인사에서 서쪽 방향으로 차로 10여 분 정도 달리면 검문소와 함께 사거리가 나타난다.
이 사거리는 왼쪽으로 대구시내 방향의 내리막 길이 뻗어 있으며, 오른쪽으로 파계사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펼쳐진다. 파계사는 804년(신라 애장왕)에 창건되었다. 부인사가 신라 선덕여왕과 인연이 있었다면, 파계사는 조선 영조대왕과의 인연이 깊다.
조선조 숙종 임금이 어느날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그 꿈이 너무 선명하여 신하를 시켜 남대문 밖을 살펴보게 하니, 정말 한 승려가 그 앞에서 쉬고 있었다. 그 승려가 바로 파계사의 영원선사였다. 기이하게 여긴 숙종 임금은 영원선사에게 왕자 탄생을 위한 백일기도를 부탁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숙빈최씨에게 태기가 보였고, 이듬해에 왕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훗날의 영조대왕이다. 크게 기뻐한 숙종 임금은 영원선사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린다. 현응은 지혜로운 승려였다. 당시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로 승려들이 고역을 치르고 있었다. 이에 현응은 왕실 선대 임금의 위패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냈다고 한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그리고 영조대왕의 도포가 보관되어 있다.
파계사 경내에 들어서면 원통전을 중심으로 진동루·설선당·적묵당 등 격조높은 당우 4채가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원통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영조대왕의 도포가 발견되었으며, 목관음보살상(보물 제992호)이 안치되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末寺)로 1988년 7월 28일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문화재로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992호), 영산회상도(보물 1214호) 등 2점의 보물과 주요민속자료 제 220호인 영조대왕 도포가 소장되어 있다. 또한 대구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인 원통전(圓通殿 : 제 7호)과 다섯점의 문화재자료<설선당(設線堂), 기영각, 산령각(山靈閣), 적묵당(寂默堂), 진동루(鎭洞樓)>가 있다. 팔공산 자연 공원내 위치하고 있다.
찾아 가시는 길 : 팔공산 자연공원 내 위치.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중대동 7
3. 송림사
송림사는 팔공산의 서쪽 자락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행정구역상 칠곡군 동명면에 속하지만, 대구시내에서 가깝고 팔공산 순환도로와 연결되고 있어 대구시민들이 즐겨찾는 명소이다.
송림사는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창건되었다. 당시 중국에서 귀국한 명관이 진나라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이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후, 1092년에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였으나 몽고군의 침입으로 폐사되었으며, 조선시대에 또 한차례 중건되었으나 임진왜란때 불타 없어졌다. 현재의 절은 1858년에 영추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송림사는 아름다운 5층전탑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이 탑은 방형과 장방형의 벽돌을 적절히 섞어 16.13m높이로 쌓아올렸으며 위로 올라갈수록 폭을 좁게 하여 안정감을 주었다. 이처럼 웅장미와 균형미를 동시에 살린 송림사 5층전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탑으로 보물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다. 더욱이 1959년 해체 수리 때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다시 한번 진가를 드러냈다.
유물들은 불상·사리기·장식구·돌궤·상감청자 등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보물 제325호로 지정되어 국립 대구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 이외에도 송림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목불이 모셔진 대웅전과 명부전·산신각·요사채가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맑은 생수가 샘솟고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숙박 : 팔공산 일대에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 : 팔공산 순환도로 주변 식당가에서 삼계탕,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등 다양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주소 : 경북 칠곡군 동명면 구덕리
4. 은해사
은해사는 영천시내에서 서쪽으로 16㎞ 떨어진 팔공산 동쪽 기슭에 들어서 있다.
809년(신라 헌덕왕 1년)창건되었으며, 경내에는 대웅전·보화루 등 10여 채의 당우들이 질서있게 배치되어 있다. 특히 서예의 대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내걸려 눈길을 끌고 있다.
은해사 인근에는 깊은 내력과 보물을 간직한 암자들이 자리잡고 있다. 거조암은 원래 은해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본사로 국보 제14호로 지정된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은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어진 목조건물로, 내부에 500나한이 모셔져 있다.
비구니승의 암자 백흥암에는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대좌 수미단(보물 제486호)이 있으며, 여기서 500m 떨어진 중암암에는 김유신 장군이 수도하며 마셨다는 장군수가 샘솟고 있다. 이외에도 청동보살좌상(보물 제514호)이 모셔진 운부암, 산책로가 멋진 기기암이 있다.
숙박 : 치일리에 여관, 민박집이 있으며 은해사 인근에 은해사 관광농원(054-335-3435)이 있다.
별미 : 전통 손칼국수 - 구수하고 담백한 전통 손칼국수로 밀가루와 콩가루로 반죽하여 고유의 비법으로 요리한다. 은해사 입구의 식당가에서 맛볼 수 있다.
찾아가시는 길 : 대구 동부정류장에서 하양행 버스가 5, 1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주소 : 경북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5. 불로동 고분군
불로동 고분군은 금호강유역에 접하고 있으며, 불로동에서 팔공산으로 가는 도로에서 경부고속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 구릉에 분포하고 있다.
총 211기의 대소고분들이 밀집되어 있는 이 곳은 1938년과 1963년 두차례에 걸쳐 몇기만 표본 발굴 조사한 결과 내부구조는 냇돌 또는 깬돌로 사방 벽을 쌓고 큼직한 판석으로 뚜껑을 덮은 장방형의 수혈식 석곽으로 금동제의 장신구와 철제무기, 토기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된 바 있다.
이들 출토유물로 보아서는 대구지역의 타 고분들 특히 비산동, 내당동 등의 고분군과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고분의 입지가 구릉이라는 점과 내부가 할석으로 축조되었고, 석곽이 좁고 긴 점 등이 이들과 유사하여 같은 계통임을 짐작케 한다. 전체 고분군의 축조시기는 대략 5∼6세기에 걸치는 것으로 추정된다.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 일대에 현존하는 고분들 중 외형적인 형태를 가장 잘 갖추고 있고 좁은 지역에 많은 고분들이 밀집해 있는 점 등에서 고대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고, 대구분지내에서 비슷한 권력집단이 내당동, 비산동, 불로동 등 곳곳에 할거하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자료로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사적 제262호(1978.6.23.지정)이다.
찾아 가시는 길 : 팔공로와 경부고속도로 고가도로와 만나는 지점의 동쪽에 위치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 335 일대
6. 신숭겸 장군 유적지
이 곳은 고려 태조때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장군이 순절한 곳이다.
신숭겸 장군은 태봉의 기장으로 배현경 등과 궁예를 내몰고 왕건을 받들어 고려를 개국하였다. 장군은 그 뒤에 대장군이 되어 927년(태조 10)에 신라를 위기에서 구하려고 태조 왕건과 함께 후백제군을 상대로 대구 공산(公山)에서 싸웠으나 후백제군에게 대패하였다.
이 싸움에서 장군은 왕건의 목숨이 경각에 달하자 왕으로 변장하여 김락(金樂) 장군과 같이 싸우다 왕건을 대신해서 전사하였으며, 이틈을 탄 왕건은 장졸로 변장하여 적의 포위망을 뚫고 단신 탈출 한다.태조 왕건은 장군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겨 그이 시신을 거두어 광해주(지금의 춘천)에 예장하고, 전사한 자리인 이곳에는 지묘사를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한편 일품전지 삼백묘를 하사하여 이를 수호하게 하였다.
그후 지묘사는 고려 멸망과 더불어 폐사되었으나 1607년(선조 40)에 경상도 관찰사 류영순이 폐사된 지묘사 자리에 표충사(表忠祠), 표충단, 충열비를 건립하여 공의 혼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였다.
지금도 산기슭의 봉무정 앞에 있는 큼직한 바위는 왕건이 탈출하여 잠시 앉아 쉬었다고 해서 독좌(獨坐)암이라 부르며 표충사의 뒷산은 왕산(王山)이라 부르고 있다. 이러한 지명이외에도 대구에는 이 싸움에서 유래된 안심, 해안, 반야월 등의 많은 지명이 남아 있어 당시 격전지의 자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대구광역시 기념물 제1호이다.
찾아 가시는 길 : 파군재삼거리지나 공산동사무소 200m거리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지묘동 526 일대
7. 갓바위 (관봉석조 여래좌상)
갓바위는 해발 850m의 관봉 정상에 정좌한 거대한 불상이다. 관봉은 팔공산 능선의 최동단 봉우리로 산 밑에서부터 돌계단이 길게 이어져 있다. 주차장, 식당 등 편의시설이 조성된 갓바위 집단시설지구에서 돌계단을 밟아 1시간 정도 오르면 정상에 당도하게 된다.
갓바위는 전체 높이 4m인 좌불로, 정식 이름은 관봉 석조여래좌상이다. 머리 위에 두께 15cm 정도의 평평한 돌 하나를 갓처럼 쓰고 있어 갓바위라 불리며, 둥근 얼굴에 굳게 다문 입, 당당하고 건장한 몸체에는 위엄과 자비가 깃들여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걸작으로, 보물 제431호로 지정되어 있다.
갓바위는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돌아 이른 새벽부터 치성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매월 1일이나 입시철에는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며, 매년 1월 1일은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더욱 붐빈다.
갓바위에서 산아래로 내려서면 경산 와촌 방면으로 가는 길이 있고, 능선을 따라가면 인봉, 노적봉 등 각양각색의 봉우리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특히, 능선재, 신령재를 지나 동봉에 당도하는 길은 팔공산의 오른 날개를 이루는 주능선길로, 등산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찾아 가시는 길 :
열차
- 경부선 - 동대구역 하차 - 시내버스 이용
- 대구선 - 동대구역 하차 - 시내버스 이용
고속도로
- 동대구 IC 하선 - 동화사 방향 - 갓바위
도로이용
- 동대구 - 동화사 - 갓바위(경산시 와촌 방향보다 등반 어려움 소요시간 1시간)
8. 가산산성
팔공산 순환도로를 타고 군위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기성리 삼거리가 나타난다. 여기서 산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가산산성에 이르게 된다.
가산산성은 해발 901m의 가산에 축조된 산성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국방상의 중요성이 대두되어 산성 축조가 거론되던 중 이곳이 물색된 것이다.
가산산성은 내성, 중성, 외성의 3겹으로 이루어져 있다. 1639년 경상도 관찰사 이명웅이 내성을 축조했으며, 영조 17년에 중성을 숙종 26년에 외성을 각각 쌓아올렸다. 산성 내에는 군관청·군기고·보루·포루·장대 등 군사시설을 설치하여 전란에 대비했으며, 천주사를 세워 승병을 양성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가산산성에는 성벽과 문터가 거의 남아 있어 당시의 위용을 살펴볼 수 있다. 사적답사를 겸해 가벼운 등산을 즐길 수 있으며 주차장, 야영장도 완비되어 1박 코스로도 훌륭하다.
숙박 : 가산산성에 야영장이 있고, 팔공산 주변에 숙박시설이 많다.
별미 : 옻닭백숙 - 가산산성으로 가는 팔공산 순환도로변에 옻닭백숙 식당이 많다.
주소 : 경북 칠곡군 가산면 가산리
9. 삼존석굴
군위 삼존석굴(일명, 제2석굴암)은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250년이나 앞선 석굴사원이다.
이 석굴사원은 493년(신라 소지왕 15년)에 극달화상이 창건했으며, 오랫동안 인근 주민들의 치성터로 쓰였다가, 1960년대에 들어와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현재는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석굴은 높다랗게 치솟은 바위벼랑 중간쯤에 조성되어 있으며, 입구는 둥글고 내부는 방형을 이룬다. 당당한 기상의 아미타불이 가운데에 앉고, 화려한 장식의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좌우에 서 있다. 삼존석굴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한밤마을이 나타난다. 한밤마을은 수백년된 기와집과 돌담길이 이어진 전통민속마을로, 부림 홍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대청·석불입상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마을 입구에 노송숲이 운치를 자아낸다.
숙박 : 인근에 여관, 호텔, 민박집, 야영장 등이 다양하게 갖추어져 있다.
별미 : 석굴 앞 식당가에서는 손칼국수, 파전, 도토리묵 등의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찾아 가시는 길 : 대구 북부정류장에서 효령행 버스가 운행된다. 효령버스정류장
(054-382-8023)에서 삼존석굴까지 수시로 버스가 운행된다.
주소 : 경북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10. 동화사
493년(소지왕 15년) 극달존자가 창건하여 유가사라 불리고, 832년(신라 흥덕왕 7년) 심지왕사가 중건할 때 가져온 간자 892개를 던져 그 떨어진 곳에 불당을 이룩하였는데 때마침 오동꽃이 천우와 어울려 그 아름다움에 동화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8번의 중창(重創)을 거듭하였으며, 현존하는 대부분의 건물들은 조선 영조때 지은 것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영산전, 봉서루 등이 있고 부속 암자로는 비로·부도·내원·양진·염불암과 금당선원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6점의 보물(동화사 입구 마애불좌상, 비로암 삼층석탑, 금당암 삼층석탑, 당간지주, 도학동 석조부도)과 대구광역시 지정한 5점의 문화재(대웅전, 극락전, 부도군 부도) 등이 있다. 또한 경내에는 1992년 완성된 팔공산 통일약사여래대불에는 부처님의 진산사리와 금동사리함 등을 복장하였다. 임진왜란때 사명대사가 동화사에 영남승군사령부를 두어 승군을 조련·지휘하던 곳이 봉서루 뒤편의 영남치영아문(嶺南緇營牙門)이 있다.
일자로 뻗은 팔공산 진입도로가 서서히 곡선을 그리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 파군재가 나온다. 파군재는 파계사와 동화사가 갈라지는 길목으로 여기서부터 고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팔공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길을 차로 30여 분 정도 달리면 동화사가 나타난다. 동화사는 유서깊은 신라 고찰로서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이 좌우로 몰려든 도학동 골짜기에 자리잡고 있다.
동화사에서 맨 먼저 만나는 건물은 누각 봉서루이다. 봉서루는 오동나무 숲에 둥지를 튼다는 봉황새를 상징하는 누각으로, 오동나무를 뜻하는 동화사와 짝을 이루고 있다. 봉서루를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동화사의 중심 전각인 대웅전이 정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웅대한 건물로 조선 영조대에 지어졌다. 뒤틀린 나무를 그대로 기둥으로 사용해 자연미를 살렸으며, 내부에 아미타불·석가모니불·약사여래불을 모시고 있다. 고개를 숙여 글을 읽고 있는 듯한 이 불상들은 조선시대 선비를 떠올리게 하며 진경산수화풍의 탱화, 천장을 장식하는 극락조가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동화사 동편에는 부속암자인 금당암이 별채를 이루고 있다. 금당암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고요한 암자로 단아하게 균형잡힌 3층석탑 2기가 마주 서 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물 제248호로 지정되어 있다.
금당암 앞으로 펼쳐지는 길은 원래 동화사의 입구였던 곳으로, 절을 알리는 당간지주(보물 제254호)와 석조부도(보물 제601호)가 세워져 있다. 여기서 조금 내려서면 거대한 규모의 통일약사여래대불 이 숲 사이로 우뚝 솟아 있으며, 이 길이 끝나는 곳인 주차장 벼랑바위에는 부드럽고 인자하게 미소짓는 마애불좌상(보물 제243호)이 새겨져 있다.
이외에도 동화사 주위에는 비로암, 염불암, 부도암 등의 유서깊은 암자들이 몰려 있다. 비로암은 매표소 입구 연못에서 바로 보이는 자그마한 암자로 통일신라시대 흥덕왕때 조성된 비로자나불(보물 제244호)과 삼층석탑(보물 제247호)이 있으며, 비로암에서 산길로 1시간 30분 가량 오르면 염불암이 나타난다. 염불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의 바위 위에 부처와 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암자를 포근히 감싸면서도 앞길은 훤히 틔운 산세가 일품이다. 염불암은 1시간 거리에 팔공산 정상인 동봉이 있어 등산객들이 많이 들르는 암자이기도 하다.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이 군사기지로 쓰이면서부터 동봉은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최고봉이 되었다. 동봉에 올라서면 팔공산의 장쾌한 산세가 한눈에 펼쳐지며 맑은 날에는 비슬산, 가야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전통사찰 등록 : 1988.7.28)
서거정이 노래한 대구 10경중 한곳- 동사심승(桐寺甚僧)
동화사 통역안내의 전화번호는 053)985-0980 이다.
○전설
동화사의 창건자는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대사로 알려져 있다. 신라 말 왕위쟁탈전 과정에서 숙부인 흥덕왕에게 왕위를양보했던 심지는 정치에 회의를 품고 인생무상을 느끼며 출가했다. 그는 중악, 지금의 팔공산에서 살다가 속리산의 영심율사가 그의 스승 진표율사로부터 물려받은 불골간자를 가지고 과증법회를 연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참예하러 갔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어 법당에 올라가 참예할 수 없었다.
찬겨울에 7일 동안 땅에 자리를 깔고 참예하던 중에 7일이 지나자 큰눈이 내렸다. 하지만 심지가 앉아 있는 둘레 10자쯤만 눈이 내리지 않음으로 모두들 신기하게 여기고 법당으로 안내하였다. 그러나 그는 병을 핑계하고 사양하여 방안으로 물러가 있으면서 법당을 향하여 가만히 참예하였으며 이때 팔뚝과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는 진표가 선계산에서 있었던 일과 같았다.
당시 심지에게는 지장보살이 날마다 내려와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 후 열심히 수도하여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고, 영심으로 부터 진표 전래의 8간자를 전수받았다. 법회를 끝내고 돌아오는데, 함속에 넣고 쇠를 채워 둔 불골간자 중의 두개가 자꾸만 그의 옷자락 속에 묻어 따라왔기 때문에 두번씩이나 되돌려 주러가서 결국은 모두 받아 왔다는 것이다. 이를 전수받았다고 하는 것은 곧 진표율종의 종통을 이어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그 뜻을 신라 영토내에 펼치기 위해 그이 수봉지였을 팔공산에 크게 절을 짓고자 하여, 불골간자를 모실 절터를 찾기 위해 팔공산 상봉에 올라 간자를 던져 그 떨어진 곳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 주차장
대 형 5,000
소 형 2,000
주소 : 대구광역시 동구 도학동 산 35
11. 옻골 마을 (경주최씨 종가) 및 보본당 사당
옻골은 경주최씨 광정공파(匡靖公派)의 후손들이 모여사는 동성촌락(同姓村落)으로 현재 20여 호의 고가들이 어우러져 있다.
1982년 3월 4일 대구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된 이 건물은 조선인조때 학자 대암 최동집(催東集)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지은 집이다. 살림채는 1694년(숙종20)에 지은“ㄷ”자형의 안채와 1905년(고종42)에 지은 “ㅡ”자형 사랑채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붕은 모두 책을 펴서 엎어놓은 것 같은 형태, 즉 八자형 지붕인 박공지붕(일명, 뱃지붕 또는 맞배지붕이라고도 함.)으로 되어 있다.
사랑채의 동쪽 토담 안에 있는 보본당(報本堂)은 1742년(영조18)에 지은 것으로 재실로 사용되며 그 뒤편에는 가묘와 별묘의 사당(祠堂) 2동이 각각 일곽의 흙담장 안에 배치되어 있다. 가묘와 별묘, 보본당으로 이어지는 조상과 관련된 공간은 양의 상징적인 의미인 동쪽에 배치하고, 이에 비해 생활공간인 안채와 사랑채는 음의 상징인 서쪽에 배치하고 있어 풍수지리 및 음양오행사상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대구 지역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축물(400년)로 안채와 사랑채, 재실, 가묘, 별묘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이 주택은 조선시대 양반건축과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구광역시 민속자료이다.
찾아 가시는길 : 금호강의 아양교를 넘어 하양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 2km정도 거리에 있는 방촌시장에서 북측으로 대구국제공항의 동편 외곽도로를 따라 1km정도 가면 둔산동이 있다. 경주최씨종가는 이 도로를 직진하여 제일 끝 마을인 옻골에 위치한다.
주소 : 대구시 동구 둔산동 386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