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CHAEL JACKSONKING OF POP, R.I.P
마이클 잭슨 '팝의 전설로 사라지다'
마이클 잭슨은 미국 서부시간 25일 낮 12시쯤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것으로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보도를 했다.
심장마비의 원인은 아직 알려진 바 없으며 급성 심장 박동 정지를 일으켰다고 한다.
80~90년대 팝의 제왕으로
1958년 태어난 마이클 잭슨은 다섯 살 때부터 재키잭슨, 저메인 잭슨,
티토 잭슨, 말론 잭슨, 마이클 재슨 등 다섯 명의 형제로 구성된
'잭슨 파이브'라는 그룹으로 팝 음악 생활을 시작하였다.
1979년 'Off the Wall' 앨범을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하였고,
1982년 'Thriller' 앨범을 통해 팝의 황제로 성장하였다.
'Thriller' 앨범은 전세계 1억 4백만 장의 앨범이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으며 기네스북에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미국에서만 5천만 장 이상이 판매 되었고, 당시 국내에서도
팝 앨범으로는 이례적으로 100만 장 이상이 팔렸다.
'Thriller' 앨범은 미국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37주 동안 1위를 기록하며
무려 2년 여에 걸쳐 최다 판매되는진기록을 세웠다.
'Beat It'과 'Billie Jean', 'Thriller' 등 수록된 9곡 중 무려 7곡이
빌보드 싱글 차트 Top 10에 진입하기도 하였다.
이 중 'Billie Jean'에서 선보인 '문워크'는
세계적 돌풍을 일으킨 춤이었으며 국내 스타들 역시 아직도
쇼 프로에서 문워크를 장기로 선보이고 있다.
1987년 'Bed', 1991년 'Dangerous', 1995년 'History' 등의
앨범으로 90년대까지 그 인기는 지속되었다.
발표하는 앨범마다 새롭고 충격적인 사운드를 선보였고
팝의 유행을 선도하였다.
음악을 들어보면 충분히 알겠지만, 마이클 잭슨의 노래는
그 어떤 팝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신선하였다.
또한 특유의 혀를 입천장에서 차는 발성법은 그만의 특기이기도 했으며
그 누구도 시도한 바 없는 새로운 발성법이기도 했다.
'창조'에 대한 강박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 마이클 잭슨은
그 때문인지 음반을 자주, 많이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발표하는
음반마다 돌풍을 일으켰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한 앨범에서 적게는 3곡, 많게는 7곡까지
히트를 하는 등 앨범의 완성도가 대단히 높았다.
지금까지 마이클 잭슨은 총 8억장에 가까운 음반을 판매하였다.
그러나 아동 성추행 파문으로 10년 이상의 재판 과정으로
음악 황동을 이어가지 못했고 각종 소송으로 겪기도 했다.
아동 성추행 파문은 2005년 무죄를 선고 받은 바 있다.
특히 아동 성추행과 관련한 소송은 무려 10건에 달한다.
마이클 잭슨은 자신의 집에 마련된 '네버랜드' 공원으로 아동을
초대하는 행사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성 추문 소송이 잇따랐다.
일각에서는 아동의 부모들이 잭슨의 유명세를 빌려
소송을 건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며, 실제로는 소송과 관련하여
보상금 등으로 무마했다고도 알려졌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
슬하에 12살 아들과 11살의 딸을 두고 있으며, 공식 확인된 바는 없으나
대리모를 통한 2살 된 아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4년 앨비스 프레슬리의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 하였으나
2년 여만에 이혼하였고, 마돈나 등 여러 스타들과 스캔들이 일어나기도 했다.
사망, 그 이후.
마이클 잭슨은 올 7월 영국에서 50회의 컴백 공연을 앞두고
공연 준비를 하였으나 불행하게도 우리 나이
5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
이에 따라 그의 컴백 공연을 볼 수는 없겠지만
아마도 추모공연이 있을 듯하다.
팝 역사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선
마이클 잭슨은 이제 '역사' 속에만 존재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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