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진실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거짓을 믿어버린다. 오해와 진실은 동전의 양면처럼 단순한 것이지만 매우 치명적인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은 오해와 진실의 굴레 속에서 30년 이상을 고통 받아왔다. 그에게 붙여진 해괴한 별명, '와코 재코'(wacko jacko·괴짜 잭슨)라는 비아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가 걸어온 음악적 발자취와 가수로서의 역량은 더 이상 대중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사람들은 잭슨의 사생활과 외모 그리고 파산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황제'가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지는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데뷔 45년을 맞은 마이클 잭슨의 굴곡진 인생을 되짚어봤다. '팝의 황제'에서 '루머의 황제'로 전락하게 된 사건들과 소문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을 이야기해본다.
◆ 백반증vs박피설
잭슨을 따라다닌 가장 역사 깊은 루머는 박피설과 성형 중독설이다. 많은 사람들은 잭슨이 백인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고 이로 인해 지속적으로 박피술을 받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피부색이 변한 것은 백반증이라는 만성 질병 때문이었다.
1982년 '스릴러'의 성공으로 정상가도를 달리던 무렵 잭슨은 펩시 광고 촬영 중 폭죽 사고로 화상을 입었다. 그 후 백반증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백반증은 어린시절에는 징후가 나타나지 않다가 피부 질환 등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나타나게 되는 병이다. 특히 화상을 입을 경우 그 부위는 물론이고 주변의 피부까지 벗겨지며 온몸이 변색된다고 한다.
잭슨은 백반증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때문에 잭슨은 흉한 피부를 가리고자 전신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피부에 치명적인 직사광선를 피하기 위해 외출시에는 모자나 스카프로 얼굴을 가렸다.
성형 중독설의 경우도 와전된 부분이 많다. 어린시절부터 큰 코에 컴플렉스를 가졌던 잭슨은 1980년대초 코 성형 수술을 받았다. 또 광고 촬영 중 코를 다쳐 한차례 재수술을 했다. 이때 수술이 제대로 되지 않아 호흡을 저해했고 노래 부르는데 많은 지장을 끼쳤다. 이로 인해 여러차례 재수술을 받으면서 부작용에 시달리게 됐다.
◆ 사랑vs계약
잭슨의 러브 스토리는 많은 부분 베일에 가려져있다. 대부분 본인의 입을 통해 공개되기 보다는 전처나 과거 연인을 통해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잭슨에 대한 오해도 커졌다.
1994년 잭슨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발표 당시 '계약 결혼'이라는 루머에 휩싸였던 두 사람은 결국 19개월간의 짧은 결혼생활을 하다 이혼했다. 이혼 후 프레슬리 잭슨과의 결혼생활 대해 "끔찍했다"고 말했으며 "섹스리스 부부였다"고 말해 충격을 전해주기도 했다.
잭슨은 1996년 간호사인 데비 로우와 두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이 당시에는 대리모 논란에 시달렸다. 로우와의 사이에서 낳은 첫번째 아들 프린스 마이클 주니어는 정자은행에서 제공받은 정자를 통해 태어난 아이였기 때문이다.
이듬해 로우는 딸 패리스 마이클 캐더린를 낳았지만 1999년 거액의 위자료를 받고 이혼했다. 이혼 사유에 대해서는 '성격 차이'라는 이유만을 내세웠다. 이후 또 다른 여자에게서 두번째 아들 프린스 마이클 2세를 낳았지만 아이 엄마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함구했다.
잭슨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미스터리는 아직까지 풀리지 않고 있다.
◆ 아이 사랑vs아동성추행
90년대 이후 잭슨의 이미지가 급격히 추락한데는 아동성추행 루머가 큰 역할을 했다. 잭슨은 아이들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스타였다. 불후한 아동을 위해 자선 모금 운동을 펼치고 아동 단체에 기부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집을 어린이들을 위한 휴식공간과 놀이공원으로 만들어 '네버랜드'라 부를 정도였다. 5살의 나이에 데뷔해 유년시절이 없었던 잭슨은 "아이는 아이답게 순수성을 지키며 자라나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잭슨 1993년 자신의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는 충격적인 사건에 휘말렸다. 13살 소년 조단 챈들러를 성희롱했다는 이유로 피소를 당한 것이다. 이 사건은 2000만 달러에 합의하며 일단락 됐지만 치명적인 이미지 훼손을 가져왔다. 잭슨의 시련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05년 병원비가 없어서 아파하던 게빈이라는 아이를 도와줬다 그의 부모로부터 성추행범으로 몰렸다. 그러나 게빈의 어머니가 전과 8범의 상습적인 사기범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잭슨은 재판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직도 잭슨에게는 '아동성추행범'이라는 주홍글씨가 따라다니고 있다.
더욱이 90년대 후반 공연차 독일에 머물렀던 잭슨이 자신의 아이를 보고 싶어하는 팬들을 위해 고층 호텔 베란다에서 아들을 들어올린 위험한 행동을 해 엄청난 비난에 휩싸이기도 했다.
◆ 천재vs노력파
왕관만 쓴다고 누구나 다 황제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황제라는 칭호에는 부와 권력, 명예, 그리고 대중의 신뢰까지도 포함하고 있다.
미국 팝 음악 100년사에서 '황제'라는 칭호를 받은 가수는 단 한사람, 마이클 잭슨 뿐이다. 잭슨은 미국 음악계에서 신화적인 존재다. 1963년 '잭슨5'로 데뷔, 솔로 가수로 전향해 80~90년대를 풍미하며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가 대중에게 미친 영향은 음악에만 머물지 않았다. 춤, 패션, 헤어 스타일까지 잭슨이 하면 뭐든 유행이 됐다.
음악을 사랑하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잭슨은 5살때 '잭슨5'로 데뷔해 천부적인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1979년 솔로앨범 'OFF THE WALL'이 10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것을 시작으로 팝의 역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잭슨을 타고난 천재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팝의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였다. 그는 6살때부터 작곡을 했고 춤을 만들기 시작했다. 50~60년대를 풍비한 팝스타 제임스 브라운의 영향을 받았던 잭슨은 로봇춤, 문워크 등을 만들며 '춤의 제왕'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데뷔 45년, 많은 사람들은 잭슨의 가수 생명이 끝났다고 단언했다. 음악보다 루머가, 현란한 춤보다 일그러진 얼굴을 떠올리는 대중에게 잭슨의 무대는 낯설게 다가갈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섣불리 단언할 필요는 없다. 오는 7월 잭슨은 콘서트를 통해 3년만에 팬들 앞에 선다. 소송, 파산, 감염 등으로 안타까운 소식만을 전했던 그가 다시 '황제'의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