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영원한 공포이자 공산주의 사상의 아버지로 떠밀려 승격(?)한, 칼 마르크스는 모든 사상과 현실의 관계를 거꾸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거칠게 말하자면 현실의 모든 가치들은 사상 자체가 옳아서 생긴게 아니라, 현실적인 요구를 뒷받침할만한 사상을 '발명'해낸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를테면, '자유와 평등'라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개념은 프랑스 혁명을 통해 크게 확산되어 근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가치이다. 초기 '자유'란 개념은 개인은 개인이 책임질 수 모든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평등'은 만인은 태생적으로 귀천이 없고 고귀한 생명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유와 평등의 기치를 높게 세웠던 프랑스 혁명은 인간애를 위한 고귀한 싸움이었다고 기록된다.
정말일까?
우리가 너무나 사랑하는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는, 왕가의 무분별한 사치와 국민을 탄압하는 프랑스 왕실에 분노한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켰다고 묘사한다. 프랑스 왕가의 부흥기라고 할 수 있는 루이 14세 이후로, 거듭 재정난에 시달리는 프랑스의 상황을 살펴볼 때 이는 약간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속을 보면, 실은 보수적인 왕당파-대개는 전통적 귀족-와 상공업자들-및 신흥 자본가- 의 싸움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것이 프랑스 혁명이었다. 혁명이 발발한 시기는 자본주의가 서서히 활개를 치던 17세기 후반이었다. 도시가 발달하고 농경이 쇠퇴하면서 상대적으로 부를 거머진 상공업자 세력들은 기존의 세력들과 정치적인 알력을 벌이게 된다. 상위층이 갖는 정치적인 특혜를 가짐으로써 그들은 더 많은 부와 권력을 약속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권력을 가진 이들이 쉽사리 기득권을 내어줄 리가 만무했다. 때문에, 신흥세력들에게는 이를 뒤집을 강력한 '한 방'이 필요했다.
그들은 이념적으로 자신들을 무장하기 시작한다. 그 전까지만해도 계급적 질서 유지라는 중세적 사상이 엄연한 사회의 도덕이자 미덕이었다. 왕에게는 왕에게 맞는 기품과 자질을 기대하였고 노예에게는 노예에게만 해당하는 윤리가 있었다. -만약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있는가'라는 소리가 오늘날 인도의 카스트제도를 보는 시각처럼 불합리해 보였을 것이다- 어쨋건, 그들은 장원이라는 계급적 질서에 풀려나 도시에서 임금을 받으며 비참하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에게 "너희는 자유라는 권리가 있다"라는 꿈을 심어주게 된다. 또 태생적인 귀천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야흐로 '노력과 능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태어난 '자유'와 '평등'은 사상가들의 세련된 손길을 거쳐 오늘날의 개념으로 거듭났게 된다.
그러나 "자유와 평등"은 본래부터 상공업자 세력들을 최종 수혜자로 설정된 이념인 것이다. 자유는 전통적 세력에 저항하여 수직적 질서를 해체할 것을 강요했다. 그리고 평등은 개인을 보는 평가를 태생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실질적인 힘 즉 능력으로 할 것을 넌시지 일러주고 있었다. 바야흐로 운과 기회를 잡아 실력을 쌓아온 신흥 세력들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들어맞는 이론이었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을 기치로 본격적인 '정권 침탈'에 돌입했다. 이것이 자유와 평등의 원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이 인간에게 준 권리로 포장되어, 인간은 누구나 자유로우며, 태생적인 귀천이 없다는 이념으로 둔갑하여 도시 노동자들을 사로잡게 된다. 이 것은 권력자들의 착취와 폭력에 시달리는 도시 노동자들에게 서광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념의 확산, 그 후방에서 각종 실력을 통하여 여론을 장악하고 조성한 상공업자 및 신흥 귀족들의 입김도 컸지만, 이론적으로 이를 옹호하고 강화시켜준 당대의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의 힘도 컸다. 즉, 도시 상공업자 및 신흥 자본가들은 이념과 여론의 힘을 빌어 시민들을 "간접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때문에 프랑스 혁명은 결국 실패한다. 비록 왕가는 그 유명한 기요틴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고 봉건적 귀족들이 모두 숙청되었지만, 새로운 세상은 오지 않았다. 물론 혁명 동안에 사회적 불안정을 틈타 기회를 잡은 몇몇은 운좋게 상류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끝까지 바닥에서 돌을 들고 몽둥이를 들었던 시민들에게는 예전과 같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이념의 실현을 목적으로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념은 허울이며, 정신적 무기이자 도구이지 목표가 아니다. 그들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을 개발하고 이론을 강화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았다. 그리고 혁명이 끝난 후, 그들은 더 이상 이러한 가치를 순수하게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이념과 사상은 더이상 필요 없었다.
그들은 애초부터 모두가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사는 사회를 바라지 않았다. 다만 모든 자유와 평등를 누리기 위해서 자신들의 세계 안으로 편입할 것을 권한다. 그럼에도 프랑스 혁명은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왕과 귀족의 과두적 정치체제에서 평민 출신으로 성공한 상공업자들이 새로운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왕을 중심으로 집약되었던 권력이 다소 분산된 것이다. 이로써 중세보다는 계급적 이동이 비교적 자유로워 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혁명은 완벽한 실패로 끝났고 시민들을 위한 세계는 오지 않았다. 자유와 평등을 억압하는 기득권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리고 새로운 기득권층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한 또 다른 보수가 되어서 시민들을 지배할 뿐이었다. 대다수는 여전히 불평등하고 부자유스러운 채로 남게 된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본래적 목표가 혁명이 아니었기 때문에, 혁명의 실패는 시작도 하기전 부터 이미 자명했다. 권력의 이양을 받은 자들은 이념과 사상의 순수성을 변질시켜 자신들을 보호하고 다수를 세뇌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대한민국은 어디쯤 있는가? 이념은 하나의 무기로써 보수와 진보 양쪽을 겨냥하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언제나 자유와 질서와 민주주의적 정의를 부르짖고 정의를 외친다. 시민들도 자의적으로 해석한 자유와 민주의적 가치를 외친다. "자유"니 "평등"이니, "준법"등의 낱말들은 서로 다른 의미와 사상들을 뒤섞어놓은 표류물들처럼 이곳 저곳을 부유하고 있다. 좌파든 우파든 대립하는 그곳 중심에는 언제나 "숭고한 민주주의의 이념"의 슬로건이 있다. 거기에는 구체적인 근거가 없이 오직 "어쨋건 자유와 민주주의는 좋은 것"이라는 몽유병적 중얼거림만 있다. 모두 다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하는 사람들이다. 개중에는 글 좀 쓰고,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인문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가치에 현혹되어 스스로 이념의 도구로 전락한다.
이념을 외치는 자가 있다면 우리는 그를 예의주시해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의이자 헌법의 정신들을 조금은 속물적인 셈으로 볼 필요가 있다. 법치를 외치는 자들이 왜 준법을 좋아하는 지를, 자유와 민주를 외치는 자들이 말하는 '자유'와 '민주'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주장하기 위함임을 깨달아야한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정치적 요구가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당신을 위한, 아주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사안이여야 한다. 이념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이념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by Man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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