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을 타고 들어온 이 한장의 사진이
편하고 안전한 것만 추구하는 우리들에게 슬픈감동과 함께
도전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존경하는 전설적인 산악인 헤르만 불이 처음으로 등정한 낭가파르바트 정상에 올라 감격스럽습니다.
남은 3개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긴 그녀는 결국,정상을 향해 잠든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사진을 본 가족과 동료들의 마음은 어떨까...나도 이렇게 마음이 아픈데...
'산에서 잠든 산악인 고미영'-정상을 향해 누운 모습으로...
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에서 하산하다가 실종된 산악인 고미영씨는 오은선과 함께 국내 여성 산악인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두 사람은 여성산악인으로 히말라야 8천m급 14봉 세계 첫 등정이라는 기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여왔다.고미영과 오은선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8천m급 봉우리 각각 11개와 12개에 올라 세간의 관심을 모아왔다.
고미영은 낭가파르밧 정상에 오른 후“남은 3개 봉도 안전하게 등정해 대한민국 여성의 기상을 전 세계에 떨치겠다”며 14좌 등정에 강한 의욕을 드러낸 바 있다.
청년에서 노인으로 - 낭가파르밧 등정전과 등정후(41시간후)
고미영씨가 잠든 히말라야 낭가파르밧은?
산에서 잠든 산악인 고미영씨가 마지막으로 정상을 밟았던 해발 8,125m의 세계 9위 고봉인 낭가파르밧은 1953년에 초등(初登) 되기까지 많은 희생자를 낸 비극의 산이다.히말라야 8,000m 봉우리중 아홉번째 높은 봉이지만 베이스캠프에서 정상까지의 표고차가 4,000~4,500m로 최고 등반고도를 지닌 산이기 때문에 에베레스트, K2, 캉첸중가와 함께 등반성이 높은 산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말에도 등장하고,세계 등반사에 빛나는 스타인 헤르만 불이 바로 1953년 낭가파르밧 초등에 성공한 사람인데, 산악사진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그의 초등 직전과 직후의 사진들이다. 초등 직전의 사진 속에 나오는 인물은 29세의 혈기 왕성한 청년이다. 하지만 초등 직후에 찍힌 사진 속의 인물은 거의 노인처럼 보인다.그가 홀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마지막 캠프로 돌아오는데 소요된 시간은 정확히 41시간,그 이틀의 시간 동안 헤르만 불은 인류가 일찍이 체험해보지 못했던 시공간 속을 저 홀로 누비고 다녔다. 그 처절하고 감동적인 기록을 그는 그의 유일한 자서전 ‘8,000m의 위와 아래’ 에 남겼다.
훗날 그는 정상에 올랐던 당시의 결단을 최후의 모험이라고 명명했는데, 그것은 어떤 뜻에서 돌아올
수 없는 강이다. 하지만 그 과감한 결단의 순간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선다면 결코 정상에 이를 수 없다. “ 8,000m와 같은 거봉(巨峰)은 사람이 최후의 모험을 다하지 않고 손에 넣을 수가 없습니다” 라고 헤르만 불은 담담하게 이야기 했다.
묵묵히 그대가 도전했던 이 산이 이토록 험한줄 몰랐습니다.
산속에 잠든 그대의 희생으로 뒤늦게 알게 된 우리의 무지를 반성합니다.
그대는 죽었을뿐 그대의 도전은 결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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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불꽃을 위해 인간은 죽을 뿐이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