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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스타브 클림트 전시회

강은미 |2009.07.15 07:58
조회 223 |추천 0

2009 구스타프 클림트 한국전시

전시기간 2009년 2월2일 - 5월 15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월27일 금요일

남편님의 연차와 함께

에버랜드를 가기로 한 우리는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주말에는 사람많다고 엄두를 못내던

클림트전을 보러 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평소에도 클림트를 무척 좋아하는지라

미니홈피에 클림트의 그림을 모으곤 했던 나는 무척 기대가 많았다.

 

 

유화 30여점, 드로잉 및 포스터 원본 70여점 100여점을 전시한 이번 전시회는

유화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일까 약간 허전한 느낌을 감출수가 없었다.

 

 

집에서 가까우니까 지하철을 타고 갈까 생각하다가

전시회보고 여기저기 갈곳이 있어서 차를가져갔다

주차료는 생각보다 저렴, 관람고객은 도장을 받으면 5시간에 4000원-

 

전시입장료 16000원으로 클림트의 손길이 직접 닿은 그림을 볼수 있다니, 너무 기쁘지아니한가

 

이건 울 남편모습♩

관람을 마치고, 설명을 들을수 있는 오디오를 돌려주러 가는길,

대여료가 3000원인데 이건 솔직히 비싸다고 생각된다

보증료도 아닌 대여료가 3천원이라니-

어차피 한번듣고 다시 돌려주는것인데;

기억에 남는 작품은

유명한

유디트(Judith 1)

 

 

캔버스에 유화, 84 x 42cm, 벨레데레 미술관, 비엔나

유디트1 (judith 1), 1901년

 

 

아담과 이브 

캔버스에 유화, 84 ×

캔버스에 유화,

아담과 이브(adam and eve) 1917-1918 미완성

 

 

 

클림트의 작품에는 유난히 여성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대부분 팜므파탈적인 모습이 대부분이다.

위 두 작품도 마찬가지로,

남성의 유혹해 치명적인 죽음이나 고통으로 몰고가는 여성상으로 그려진다.

아마도 클림트의 수많은 연인들에서 영감을 얻은듯 하다.

 

 

클림트전에서 클림트의 연인들을 보여주는곳이 따로 있었는데,

수도없어서 보다 지친기억이 난다

아무래도 드로잉이 너무 많아 전시회의 허전함을 달래려 그 부분은 재미위주로 전시했다는 생각이 살짝,

 

 

 

 

 

클림트전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여 들여온것이

베토벤프리즈(Beethoven Frieze)였는데,

벽을 통째로 뜯어온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 감동~

 

 

베토벤프리즈(Beethoven Frieze)는 1902년 클림트를 중심으로 결성되었던

비엔나분리파 일당이 분리파 전당에 설치한 종합예술작품을 그대로 재현하고있다.

1902년 당시 공개와 더불어 구스타프 말러 지휘의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3면을 가득채운 벽화에 압도당하게 된다.

물감뿐만아니라, 금속재료등 수많은 재료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비엔나분리파의 상징적인 작품으로,  비엔나분리파가 추구하고자했던 토탈아트(total - art)의 대표작이다.

 

 

 

베토벤프리즈의 (Beethoven Frieze)1902

오스트리아 비엔나 분리파전당 벽화 

베토벤프리즈 (

베토벤프리즈의 한 벽면

'Kiss for the whole world' 전 세계를 위한 키스

 

 

베토벤 교향곡 합창의 이상적이고 온화한 모습을 표현한 전 세계를 위한 키스

 

베토벤프리즈의 한 벽면

Beethoven Frieze : The Hostile Powers . 베토벤 프리즈 중 적대적인 힘

 

 

 

타이푼과 그들의 세딸의 질병,광기,죽음을 나타낸다.

그 옆의 선정적 모습의 갈망,음탕,무절제의 모습의 여인들, 괴물의 모습,

  

 

 클림트는 이 작품이 곧 철거될 작품이라고 예상했고 저렴한 재료를 바탕으로 벽화를 완성시켰다고한다.

그러나 그의 친지인 카를 라이닝 하우스가 사들여 벽을 통채로 뜯어내 위대한 작품을 살려냈다.

그후 여기저기 옮겨다니며 수모를 겪지만

결국, 전쟁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 정부가 1970년에 구입하여 복원하는데 성공한다.

 

베토벤프리즈가 전시되어있는 부스,

베토벤교향곡과 함께 감상할수있는 점

그리고 벽으로 둘러쌓여 전 시장 그 어느곳보다도 아늑하고 웅장한느낌을 만끽할수있다

 

클림트의 작품은 주로 여인이 많이 등장하고 유혹적인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 많아

19세미만의 아동의 보호가 필요한 구간까지 마련되어있었는데, 주로 나체의 여인드로잉이 전시되어있었다.

클림트는 한작품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그려냈다고 한다.

 

분리파전당에 쓰였던 포스터

 

 

 

클림트는 1862년에 태어나 사진술의 급격한 발달과 문명으로 인해

새로운 예술을 요구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킨 예술가로 정의 할 수 있을것이다.

(내 생각^^;;)

그는 산업화로 인한 비인간적인 문화를 적극 반대하였으며 그로인해 아르누보 예술운동에서 나타나는

곡선의 미학을 수용하였으며 그 중, 여성과 에로티시즘이라는 소재를 선택했다.

(물론 모든 작품이 그러한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서 아이들을 소재로한 작품들과,

여기저기를 떠돌며 경기좋은곳의 풍경화들도 등장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은 퇴폐적이며 장식적이라고 평가하지만,

본능적인 감각에 충실하는 작품이야말로

예술적가치가 있다는 생각이든다.

 

어쨋든,

한국에서도 클림트의 작품의 예술적가치가 인정되어

평일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보러오고,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로 평가되어지고 있는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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