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평양지역을 낙랑군의 치소라고 규정해놓고 보니 기자(箕子) 문제가 발생했다. <상서대전(尙書大典)> <사기> 등에 따르면 기자는 은(殷)나라 주왕의 그릇된 정사를 간쟁하다가 투옥된 인물이다. 주(周) 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석방시켜주었으나 기자는 주나라를 인정할 수 없다면서 동쪽으로 망명했다. <한서> ‘지리지’는 “은나라의 도가 쇠하자 기자가 조선으로 갔다”고 그의 망명 전에 조선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는 물론 단군조선일 것이다. 현재 요령성 대릉하 상류 객좌현(喀左縣)에서 기후(箕侯)라는 명문이 발견된 것을 계기로 기자가 이 지역까지 왔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런데 조선의 상당수 유학자들은 기자가 한반도까지 왔다고 믿고 조선과 중국을 같은 민족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 때문에 조선총독부는 평양 지역에서 출토된 중국계 유물들이 조선과 중국이 같은 민족이라는 관념이 강해지는 계기가 될 것을 염려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