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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y Lee] "미역국·떡국 없었으면 오늘의 나도 없었을 것"

윤화영 |2009.07.23 05:15
조회 775 |추천 0
미(美)에 있는 세계적 레스토랑 '프렌치 론드리' 주방 지휘하는 한국계 코리 리

 

"어릴 적, 요리는 제게 먹는 것 이상의 의미였습니다. 수백 가지 다양한 음식이 공존하는 미국땅에서 어머니께서 해 주신 음식은 제 뿌리와 혈통, 문화를 깨우치는 소통의 수단이었죠."


미국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세계적인 레스토랑 '프렌치 론드리(French Laundry)'에서 만난 이 식당의 주방장(chef de cuisine) 코리 리(Corey Lee·32·이동민)는 요리를 "내 존재이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프렌치 론드리'는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에서 최고점인 스리 스타를 기록한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의 하나다. 두 달 전 예약이 필수인 이곳은 하루 70명의 손님을 위해 105명의 스태프가 아침부터 밤까지 불을 밝힌다. '프렌치 론드리'와 역시 미슐랭 스리 스타를 받은 '퍼 시(Per se)'를 소유한 '마에스트로' 세프 토마스 켈러(Keller) 밑에서 프렌치 론드리의 주방을 지휘하고 있는 코리 리는 미국의 요식업계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의 '뜨는 요리사(Rising Star Chef) 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한다.

 

▲ 레스토랑 평가서 ‘미슐랭 가이드’ 스리 스타를 기록한 ‘프렌치 론드리’의 주방을 맡고 있는 코리 리는 “어머니의 손맛 덕에 오늘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그가 “이 사진을 써줬으면 좋겠다”며 이메일로 직접 보내 준 사진이다./코리 리 제공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나 7살 때 부모를 따라 이민 간 그는 17살부터 뉴욕 '블루리본' 레스토랑 등에서 접시닦이를 하며 요리의 꿈을 키웠다. 프랑스영국에서 '피에 아 테르' '라 탕트 클레르' '르 메리디앙' 등 미슐랭 스타 레스토랑을 거치다 2001년 토마스 켈러와 연이 닿는다. '프렌치 론드리'에서 세프 드 파티(chef de partie·한 파트의 조리장), 뉴욕 '퍼 시' 부 총주방장(executive sous chef) 등을 지낸 뒤 2005년 다시 '프렌치 론드리'로 옮겨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토마스 켈러로부터 "기술적으로 뛰어난 요리를 선보이는 타고난 예술가이자 환상적인 음식의 조화를 선보이는 존재"라는 찬사를 들은 그는 "어머니가 생일에 차려주신 미역국과 설에 먹던 떡국을 통해 음식의 다양한 풍미를 알게 됐다"며 "어릴 적부터 동서양 요리 스타일의 차이를 이해하면서 컸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외국이라면 겪어봤을 인종차별도 그는 주방에선 경험해보지 않았다. "요리를 할 때 중요한 건 피부색이 아니라, 얼마나 요리를 잘 표현하고 기술을 구현하는가 하는 점이에요. 그래서 제가 더 요리에 푹 빠지게 됐습니다. 주방엔 차별이 없어요."

일주일에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80시간 외의 남는 시간마저도 요리 연구에 쏟아붓는다는 그는 내년 봄 직접 레스토랑을 오픈할 계획. "요리는 가구나 도예처럼 일종의 솜씨를 보여주는 분야 중의 하나지요. 하지만 일단 요리가 예술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지상에서 느낄 수 있는 극상의 감각을 오감을 통해 보여주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고객과 동료, 그리고 내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진정한 요리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2009.07.21

최보윤 기자 spica@chosun.com

 

토마스 켈러부터 얘기하고 싶다.

모든 문화에는 main stream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미국의 식당에 대해서 그 어느 누구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뉴욕의 그것들도 그랬는데, 하물며 미국의 다른 주에 있는 식당은 어떠했겠는가.

 

프랑스에 2년 머물면서 6군데의 스타쥬(stage : externship의 불어 표현)를 하고 본토에 돌아가서, 미국 레스토랑 씬(scene)을 완전 바꿔버린 인물. 바로 토마스 켈러였다.

 

2000년에 아마존에서 그의 요리책을 사서 본 후, 되게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내 책장에 가장 아끼는 책 선반에 꽂혀 있는 그의 책은 1976년 프랑스 와인과 캘리 와인의 심판만큼이나 나의 '편견'을 박살내기에 충분했었다.

 

 

하여간 토마스 켈러의 2번째 요리책 Under Pressure를 통해서 좀 더 코리 리의 큰 비중을 알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코리 리는 한 번 쯤은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매스컴은 미국에서 자라 한국말 한 마디 못 해도 한국의 피만 발견되면 미쉘위가 되었건, 미식축구 하인스 워드, 모모후쿠의 데이비드 장 등 자랑스런 조국의 아들/딸로 감싸안아 준다. 제발 그들이 그들의 삶의 영역 속에서 살아가게끔 내버려 두어 주었으면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요리사들의 '이름'이 거론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유명해 지고 싶어 요리사가 되려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연예인이 되고픈데, 요리라는 '수단'을 이용해 보는 것이 좋을지도! 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 것이다.

 

이젠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익숙한 이름 중에, 뽈 보뀌즈니 조엘 호뷔숑이니 알랑 뛰꺄쓰가 같은 이름들이 있다. 그들이 바로 '스타 쉐프'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들이다. 주방에서 나와 대중과 만나고, 방송을 하고, 책을 쓰고, 대중적인 세컨드 레스토랑을 만들고 등등.

 

난 이들의 그 어느 무엇도 뭐라 할 마음이 없다.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고, 나이를 먹으면서 또 다른 능력을 개발했기 때문이다. 요리사의 능력은 음식만드는 능력말고도, 상업적 재능, 미디어 이용 테크닉, 대인 관계 등 여러가지가 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모든걸 떠나서 이들은 "뛰어난 요리사"였다.  요리책을 내기 전에 자서전을 내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방송인이 되기 위해 요리사가 되지도 않았다. '스타'가 되기 위해, 쉐프가 된 사람들이 아니다.

 

하여간 다시 코리 리로 돌아와서, 그의 얘기 중에 인상깊은 것은 "요리는 가구나 도예처럼 일종의 솜씨를 보여주는 분야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나도 20대 초반에는, "능력을 갖춘 요리사일 수록 불 앞에 머물면 안 된다."다고 생각했었더랬다. 그러나 나이를 먹고, 일을 해 갈 수록 "경력을 쌓고, 나이를 먹을수록, 능력이 생길수록 더 주방에 남아야지"라는 생각이 나 자신을 압도한다.

 

금년은 전세계 불황의 여파로 미슐랑 가이드가 단 1개의 별도 되 가져가지 않은 기록적인 해였다. 금년같을 때, 어디 잘못 건드리면 망하기 십상이고, 또 한 명의 자살을 부를 수도 있는 일이니 말이다.

 

사실 작년부터 미슐랑은 주방에서 나와 '딴 짓' 혹은 '헛짓꺼리'하는 요리사들에게 벌(sanction)을 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외부 활동으로 정신이 없었던 Le Grand Vefour의 Guy Martin이었고, 반대로 같은 잣대로 상을 받은 인물은 금년에 별 3개를 받은 Le Bristol의 Eric Frechon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라서 웃기게 들릴 지 모르지만,

세상은 이제 다시, 주방에서 일하는 요리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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