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인연이 깊은 한 미국 동아시아 사학자가 조선의 근현대사에 대한 책을 냈습니다. 저자는 루즈벨트가 사업가를 동원해 전폭적으로 일본을 도와주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힘이 없어 침탈로 얼룩진 우리역사, 부끄럽지만 현실입니다. 멀지 않은 100년전의 일, 이것이 우리의 머지 않은 과거였습니다.
전세계 열강이 힘없는 약소국을 나눠 갖기 위해 유린한 일은 우리에게도 예외가 아니었고, 그들을 탓하고 정죄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는 언제나 역사에서 반복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과거를 뒤돌아 보며 이를 가는 일이 아니고, 역사를 타산지석 삼아 더욱 강한 나라를 만들고 약한 나라에게 관대함을 배푸는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값진 물음은 우리가 어찌 이리도 나약했으며 어떻게 주권을 뺐겼냐가 아닐런지요? 분열되어 흔들리며 표류하는 한국을 보며 여러분들에게 그 물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권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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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4260805481&code=940100
일본의 조선 지배를 국제적으로 용인한 1905년의 가쓰라 태프트 밀약에 미국의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역사적 자료가 공개됐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과 러시아가 전쟁을 벌일 당시 일본의 전쟁 비용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의 사업가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대 출판부는 25일 이런 내용이 담긴 미국의 여성 사학자 캐롤 쇼의 책 ‘외세에 의한 조선 독립의 파괴(The Foreign Destruction of Korean Independence)’를 발간했다. 이 책에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일본의 조선 병합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어떻게 일본 정부와 유착했는지 상세히 적혀 있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내용도 많고 당시 대통령인 루스벨트의 서한 등이 인용돼 있어 사료로도 매우 가치가 있다는 평가다.
루스벨트는 미국 내에서 반독점운동 등의 업적을 통해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조선 같은 약소국에 대해서는 배려가 없었다. 이 책에 따르면 루스벨트는 1882년 전시 거중조정(居中調整) 조항을 위반했다. 이 조항은 1882년 조·미 수호조약에 규정된 것으로, 조선이 다른 국가와 갈등이 있을 때 미국이 적극 도와준다는 내용이다. 미국은 이를 지키기는커녕 파괴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특히 루스벨트가 일본의 전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미국의 사업가들을 대규모로 끌어들였다는 사실은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내용이다. 지금까지 일본 학계는 이와 관련해 미국의 유대인 은행가 제이콥 시프가 전쟁비용을 조달했다는 내용만 거론했다. 서울대 이태진 교수(인문대 학장)는 “이 책을 통해 앤드루 카네기(3000만달러), 제이피 모건 등 미국의 대기업 6곳이 일본에 차관을 지원한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다”며 “이는 일본 학자들도 놀랄 만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조선에 대한 루스벨트의 시각을 보여주는 사건도 소개됐다. 1905년 루스벨트의 딸 앨리스가 고종 황제를 방문하게 되는데 조선은 우호적인 신호로 판단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외교 관례상 최고 지도자의 딸을 보낸 것은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그런데 앨리스는 융숭한 대접만 받고 그냥 가버렸다. 저자는 이 사건을 미 정부가 조선을 우롱한 단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이 책은 일부 미 언론과 루스벨트 정부의 권언(權言)유착도 고발하고 있다. 당시 일본의 대(對)조선 정책을 지지했던 ‘아웃룩 매거진(Outlook Magazine)’의 편집장 조지 케넌은 ‘루스벨트 사단’에 속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이교수는 “당시 한·중·일 주재 미 공사가 루스벨트 대통령 및 국무장관과 한국정책을 협의한 편지나 문서를 바탕으로 미·일 유착을 파헤친 거의 최초의 연구”라고 밝혔다.
〈강병한기자〉
◇ “한국에 사죄하는 마음으로 연구”
‘우리(미국)는 100년 전에 공동선(共同善)의 이름으로 무슨 짓을 저질렀는가?’ 저자 캐럴 쇼(62)는 이 같은 참회섞인 의문으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쇼는 일제의 조선식민화 과정에 개입한 미 정부에 대한 분노를 책 곳곳에서 드러낸다.
쇼는 선교사인 부모와 함께 1959년 한국에 와, 대전 외국인학교에서 만난 윌리엄 쇼와 결혼했다. 윌리엄 쇼는 서울대에서 조선법제사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다. 쇼는 시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평양에서 태어난 선교사 2세인 시아버지는 하버드대학에서 동아시아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전쟁에 해군대위로 참전했다가 1950년 녹번동 전투에서 사망했다.
미국으로 돌아간 쇼는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주미 한국대사관사(史) 편찬작업에 참여한 것. 한·미 관계 자료를 정리하다가 루스벨트 정부의 비도덕적 행태를 발견하고 이번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쇼는 “한국인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한다. 쇼는 1990년대 말 자신의 연구결과를 서울대 이태진 교수에게 보냈고, 이것이 인연이 돼 서울대에서 자신의 책을 출판하게 됐다.
〈강병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