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감정이 메말라버린 스케치북
처음부터 백지였던건 아냐
기쁜색깔 자신감넘치던 색깔
순진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가지고있었어
어느순간엔가 스케치북은 자아를 상실하고
자기가 그림인줄 알았던거야
자기가 그림이 전달하는 감정을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거야
장미의 아름다움만 바라보다
그 가시의 아픔을 그려내지 못한거야
미완성뿐인 세상에서
완성작을 꿈꿔왔던거야
그렇게 전시장을 떠나고
자신의 그림을 유심있게 봐주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에
그래 모든걸 뜯어버리고
저 사람들의 눈에 담긴 쓰레기를
그려주자 했던거야
성급했던거야 인생은 애환과 치유를 떠나
자신의 그림을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렸던거야
복수심이였던거야 장미를 보여주는데
눈에는 쓰레기밖에 않보이는거야 그래서
그 그림을 그려 복수해주자 했던거야
그 아픔이 뭔지 쓰레기를 보는 아픔이 뭔지
그런데 스케치북은 아프기 시작했어
자꾸 슬픔과 역겨움과 더러움을 그리니까
사람들은 보기조차 싫어해 아니
것보다 한때 장미를 그리던 내가
쓰레기를 담아야함에 가슴이아프고
자존심이 상했던거야
그때 스케치북은 때깔좋은 붓을 만난거야
아 그래 저 붓이라면 나의 그림을 다시 그려줄수 있을거야
내가 꿈꾸는 환상을 다시 그려줄수 있을거야
하지만 옛날의 그 아름다운 색깔을 칠하려하니
이미 더럽혀진 스케치북은 그 아름다운 색깔이 거북한거야
외면하다 부정하고 결국 또 한번 세상에 등을 돌린거야
스케치북은 현실을 잊어버리려
별짓을 다했어 아픔뿐인 현실따위 외면하고
전시장을 떠나 퀘퀘한 화방에서
하루하루 기다린거야 때가 올꺼야 때가 올꺼야
붓은 잠시 만났던 스케치북이 사라지자
화방문을 두드린거지
하루 이틀 삼일 대답이 없어
포기하지않고 창문에 그림을 그려도 보고
뒷문에 물도 뿌려본거야
그러다 결심했어 내가 구정물에 몸을 담그면
날 부정하지 않겠지 날 외면하지 않겠지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겠지
그렇게 구정물을 묻히고 문을 두드리는 붓을보자
스케치북은 소리쳤지 난 화방밖이 더이상 싫다고
화방밖에선 더이상 그리고 싶은것이 없다고
그냥 화방안에서 내가 그리고 싶은것을 그리겠다고
그런데 어떻게해 붓이 없는 스케치북은
계속 의미없는 빈종이 뿐이였어
피해망상으로 가득찬 빈종이들...
스케치북은 어느날 천사를 봤어
누군진 몰라도 스케치북을 불쌍히 여겼던지
천사를 내려준거야 근데 그 천사는
말을 않해 받는 것 없이
그냥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줘
뭐가 그리 행복한지 어떻게 하면 슬픔이 슬픔이 아닌지
그냥 천사를 마냥 보아하니
스케치북은 그 천사안에 붓을 봤어
그얘는 내가 그림이 역겹다고 했을때고
색깔이 유치하다 했을때도
문을닫고 대답을 안했을때도 참 날 찾아줬었는데
나에게 아름다움을 그려주기위해 기다려줬었는데
깨달아보니 늦었더라고
그 붓은 이제 어디선가 구정물로 쓰레기를 그린데
복수를 한다고 쓰레기를 그린데
스케치북은 알아 다시 붓에게 돌아가도
붓은 옛날의 자신처럼 부인하고 외면하고 계속 쓰레기를 그릴것임을
참 아름다웠던 붓이었는데 이제는 쓰레기만 그린데
가슴이 아파 그런데
나의 아픔이 지나가고 나니 허전해
그게 뭐였을까 붓걱정도 들지만
분명히 뭐가 하나빠졌는데..
결국 쓰레기와 장미 둘다 가질수는 없는거야
천사를 보면서 그렇게 다시 아름다움을 갈망했었는데
그 싹이 싹 트자 바로 잊어버리는거야
아픔이 뭐였는지 애환이 뭐였는지
붓의 아픔이 점점 연해져가 내 안에 있었던
동정심이 점점 연해져가
이런 망각의 스케치북...
근데 이제 스케치북은 기다린데
다른 적당한 붓을찾아 아름다움을 그린데
그 옛날 때깔좋던 붓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아니 그 아름다움을 다시 찾을수 있기를
스케치북은 기다린데.
아픔이 지나고 간 가슴의 공허함은 무엇인가
받아도 받아도 더 받고 싶은 이 욕심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