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But he knows the way that I take; when he
has tested me, I will come forth as gold.
욥기 23:10
근본적으로 욥은 고난의 위기가 아니라 믿음의 위기를
맞았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 모두는 때때로 욥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리는 욥에게 일어났던 그런 극한적인 재난을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비극적인 사고,
말기의 질병, 또는 실직 등에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물을 것이다. "왜 하필이면 접니까? 하나님 저한테 무슨
감정 있습니까? 왜 하나님은 그렇게 멀리 계시나요?"
이런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환경- 질병, 우리의 외모,
가난, 불운- 을 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버린다. 우리는 하나님께 이러한 환경을 바꿔 달라고
기도한다. 우리는 생각한다. 내가 아름답거나 잘 생겼다면
모든 일이 잘 될 텐데. 내게 돈이 조금만 더 있거나 적어도
좋은 직장이 있다면, 나의 성적 요구가 다소간 바뀌거나
적어도 감소한다면, 하나님을 쉽게 믿을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욥은 우리에게 믿음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바로
믿기가 불가능해 보일때라고 가르쳐준다.
비극이 찾아올 때, 우리는 너무나 쉽게 제한된 시각에
갇히고 말것이다. 욥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비난하고
그분을 적으로 보려는 유혹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인간의 반응에 자신의 평판이
좌우되도록 허락하셨다. 욥이 버림을 받았다는 느낌을
가장 강하게 받는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는 직접, 거의
현미경처럼 정밀하게 그를 보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곁에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그때보다 더 가까이 계셨던 적은 없었다.
욥기가 내게 확신시켜 주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나의
즐거움보다 믿음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는 것이다.
욥 하나뿐이라면 이런 결론에 이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사람들이 당한
고난을 되새겨 보라.
에스겔에게 주신 메시지에서(겔 14:14), 하나님께서는
세 명의 의의 거장에 욥을 포함시키신다.
여기에 언급된 다른 두 사람- 노아와 다니엘- 은 거대한
홍수와 사자굴 속에서 믿음을 배웠다.
아브라함도 분명히 욥이 치른 믿음의 시험(test)만큼
혹독한 시험을 치렀다. 그는 자신이 수십 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을 제물로 바침으로써 직접 비극을 초래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그때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윗은 어떤가? 시편 22편을 읽어보면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그의 경험을 알 수 있다. 광야의 이스라엘에 관한
신명기의 언급은 성경의 패턴을 규명해 준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신 8:2).
욥과 같은 내적인 고뇌의 삶을 살았던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마침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
금처럼 정제된 가장 순수한 믿음은 극한 역설의 상태나
우리가 하나님께 기대하는 것이 보류되는 상황에서
나타난다. 마치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교과서를 베개 밑에 넣고 자는 아이처럼,
키에르케고르는 욥기를 품에 안고 잤다고 한다.
그에게 있어 욥이나 아브라함 같은 사람들은 빛나는
믿음의 기사였다. 이들은 가슴아픈 믿음의 시련을 통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수준의 충성심을 얻었다.
키에르케고르는 이롷게 말했다. "나는 발에 박힌 가시
덕분에, 건강한 발을 가진 그 누구보다도 높이 뛴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조차도 하나님에게
버림받았다고 느꼈다.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예수께서는
"그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기 위해"(신 8:2) 시련의 시험을
치르셨다. 후에 훨씬 심한 시련, 십자가에서 예수께서는
(시편 22편을 인용하시면서)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울부짖으셨다(마 27:46).
욥과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셨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계속 의뢰하셨다.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예수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가장 멀리 계신 것 같은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께서는 가장 가까이 계셨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라고 말한다(고후 5:19).
필립 얀시, 전의우 옮김, 하나님, 나는 당신께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