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유신정권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됐던 '문인간첩단 사건'이 당시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28일 밝혀졌다.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이날 "임헌영씨 등 문인 5명이 간첩으로 몰려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것은 당시 보안사가 유신 반대 서명에 참여한 연루자들을 고문해 조작한 사건임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에 따라 국가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보안사는 74년 임씨 등이 일본에서 발행되는 <한양>이라는 잡지가 북한 공작원들이 발행인과 편집인으로 있는 조총련 계열의 반국가단체 위장 잡지라는 점을 알면서도 원고를 게재하고 원고료를 받는 등 회합했다며 간첩죄와 국가보안법 위반죄 등의 혐의로 강제로 연행해 고문을 통해 허위 자백을 받아냈다.
하지만 조사결과, 당시 사건은 박정희 정권이 유신에 반대하는 문인들을 간첩으로 몰아 국면을 전환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는 기사내용이고 베플을 한번볼까??
박정희 유신정권은 정권 유지 수단으로 중앙정보부를 이용한 수많은 간첩사건을 조작했다.
대표적 사건으로 인혁당 사건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들 수 있다.
1961년 5.16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는 여느 쿠데타 세력이 그러하듯 부족한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해 뭔가가 필요했고 그것이 간첩단 조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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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10월31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 사형 선고(주심판사:이회창) 그 해 12월21일 사형집행
재심에서 무죄 판결
1975년4월8일 인혁당 사건으로 23명 구속 8명:사형 15명:무기~15년형 선고
사형선고를 받은 8명은 대법원 확정판결후 18시간만에 4월9일 사형집행
제네바 국제 법학자 협회가 1975년4월9일을 사법사상 "암흑의 날"로 선포
재심에서 무죄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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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진실위에 의해 조작된 간첩사건 일부를 보면
68년 태영호 납북 사건. 67년 이수근 간첩조작 의혹 사건 67년 동백림 사건
1979년 남민전 사건(이 사건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재오 홍세화 안재구등 연루)등
박정희 정권은 18년 독재 정권을 이끌며 정권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이데올로기라는 굴레를 씌워
탄압을 일삼았다. 경제발전이라는 업적으로 이런 어마어마한 범죄적 행태를 묻으려는 세력들이
이 땅에는 너무도 많은 게 사실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건 이렇게 간첩사건을 조작한 박정희가 그 자신도 남로당 출신이란 점이다
해방후에 군인 신분으로 남로당에 입당해서 대남 공작활동을 하다 발각되어 사형을 구형 받는다.
동료 남로당원들을 밀고하는 조건으로 목숨을 구하고 군복을 벗게 된다.
이런 박정희가 이 시대에 와서 영웅 운운하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에게 역사의식이란게 있기는 한 걸까!!
" 그래도 박정희가 경제 하나는 발전 시켰지 대단한 사람이야 "
이런 어른들과 이쯤에서 딴나라당 댓글알바가 튀어나올까봐 댓글을 남겨야겠다.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조중동과 각종 소설에 놀아나고 있다.
인간의 길 이라는 이인화의 소설에서는 박정희를
" 500년만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인물 " 이라고 소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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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경제 어떻게 발전 시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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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한국이 일본식민지시절 학살,위안부등등 개인피해보상청구를 못하도록 일본에게 돈을 받고 협상한 협정)
노예수준의 한국의 노동 <- 핵심 포인트
베트남전쟁
광부 서독간호사파견등으로
국민들의 피와 땀과 노력을 악용해 경제를 발전시키고
경제 대통령 경제의 달인 등 모든 부와 명예가 박정희로 쏟아지고있다.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노예처럼일하고 아무런 보상도 못받고
몸이 아파도 병원비도 내기 힘들어 집에서 고통스럽게 참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그 독재자의 딸 박근혜를 찍겠단다. 얼마나 불쌍하고 슬픈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