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요새 음악을 한다. 다른 때보다도 더더욱 음악에 관심이 많다. 노래 만들고 가사쓰고 공연 준비하는게 대부분의 일과다. 그렇게 오늘도 기타 잡고 찌질대는 와중에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으니, 바로 뉴 밀레니엄의 슈퍼 그룹 동방신기의 해체설.
아이돌이 머리가 굵어지면서 신인 시절 작성한 노예 계약 문서의 부조리를 깨닫고 소속사와 마찰을 빚고 이는 타의 반 그룹의 해체로 이어진다는 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문제다.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이 문제를 '신의' 의 문제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SM에 문제를 제기한 세 맴버를 '배은망덕하다'고 하는가 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은 유노윤호와 최강창민을 두고 '의리를 지켰다' 고 말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까? 예능 프로에서 아이돌 스타들이 자신의 기획사 사장님을 마치 어버이인 양 묘사할 때마다 섬찟섬찟 놀라는 것은 나 뿐인가.
(실은 몇 년 전에도 '문화 대통령' HOT 해체설이 돌았고 그들은 결국 해체했다. http://blog.naver.com/patomusic.do?Redirect=Log&logNo=120008213494 요 링크는 그에 관한 글. 한번 읽어보시라. HOT를 동방신기로 바꾸어 읽어도 현재 그들의 상황과 정확히 일치하는 점에서 시사적인 글이라 할 수 있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되는건가. 그나마 두 번만 반복되면 차라리 낫겠다.)
따지고 보면 기획사와 아티스트간의 갈등은 음악 산업 역사의 태초부터 시작되어 왔다. 음악은 어느 영역보다도 개인 취향이 첨예하게 갈리는 분야인데에 반해 한명의 구매자라도 더 끌어모아야 재생산이 가능한 문화 산업의 속성상 그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보면 한 예술가가 독립하고 성장해가는 통과의례의 과정이기도 하다. 스티비 원더는 71년인가 모타운과의 재계약 당시 '프로듀싱을 포함한 모든 음악을 내 맘대로 하겠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는 소속사의 산업 방침과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예나 지금이나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인데, 이를 따낸 결과 70년대에 걸쳐 수많은 명반을 연거푸 발매하기에 이른다.
그 이름도 빛나는 비틀즈만 하더라도 더벅머리 시절에는 소속사의 압력으로 연말 특수에 맞춰 급히 'beatles for sale' 같은 평균 이하의 앨범을 냈다. 하지만 비틀즈는 그룹이 가진 주체적 힘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뮤지션과 그 질을 달리 한다. 그들은 함부르크 소규모 클럽에서 5년간 실력을 갈고 닦았고, 아이돌처럼 소속사에 마냥 의지하지 않고도 미국을 정복할 수 있는 내공을 쌓았다. 비틀즈는 준비된 스타였다.
무엇보다 그들의 핵심은 작곡 능력이다. 밴드가 스스로 곡을 쓴다는 것은 예술적으로는 자주성을 획득하는 것이고 산업적으로는 자생력을 지니는 것이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앨범에 가수의 이름보다 작곡가의 이름이 더욱 크게 실렸다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비틀즈라는 싱어송라이터 집단의 등장은 이런 구조를 혁신적으로 전복시켰다. 무수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 힘이 밴드 내에 있다면 소속사 역시 이들을 새까만 신인처럼 마냥 하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밴드는 음악적 자주권을 획득할 가능성을 보게 된다.
물론 모든 아티스트들에게 스티비 원더와 같은 전반적 음악 제작, 비틀즈같은 작곡 능력을 요구하는건 무리다. 노래를 잘하는 능력만으로도 그는 충분히 위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송라이팅 능력이야말로 뮤지션이 지니는 주요한 내재적 힘이라는 사실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작사/작곡/편곡/노래/퍼모먼스 등의 분야가 철저히 분업화되어 있는 상태라면 이는 소속사에 의한 그룹의 종속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기득권을 쥔 쪽은 소속사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크기만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적 요소의 핵심은 음악 창작 집단에게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 SM에서 양산되는 곡 중에 아티스트 본인이 만든 곡이 얼마나 되겠는가. 전문 작곡가들이 만든 SM의 곡들은 다른 그룹에게 얼마든지 넘겨질 수 있다. 곡의 주인은 따로 있으며, SM 소속 그룹들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하다.
동방신기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겠지만, 분명한건 이전처럼 SM 소속의 동방신기로 활동하던 시절은 사실상 끝났다는 점이다. 이미 머리가 굵어질 대로 굵어진 이들을 SM에서 다시 받아줄 리 만무하고 동방신기 맴버들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향후 행보이다. 기획사 중심의 스타 시스템으로 꽉 짜여진 우리나라 음악판에서 '삐딱한' 이들을 받아줄 만한 회사가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기획사들 입장에서는 '자기네 회사에서도 똑같이 문제 제기하면 어쩌느냐' 는 조바심도 존재하겠지만, 더욱 염려하는 것은 이들을 고분고분 받아주었을 경우 기존에 통용되던 노예 계약의 질서가 도미노처럼 무너진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불공정 계약에 딴지를 건 동방신기의 용기는 높이 살 만 하지만, 가요계의 악질적 시스템은 예나 지금이나 공고하기만 하다.
예측건데, 그룹이 기획사에 의해 공중분해되면 '동방신기'라는 이름 역시 재산권 관련한 복잡한 문제 때문에 그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각기 솔로로 활동하는 것도 그들 입장으로선 그리 이득될 것이 없어 보인다. 뭐 어떤 방식으로 활동하건간에, 이들이 살아남는 길은 '시장에서 먹히는 음악적 능력', 즉 위에서 말한 말한 자생력을 갖추었느냐일 것이다. 하지만 SM에서 키워진 아이돌 치고 이를 갖춘 뮤지션은 전무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미래도 비관적이다(동방신기를 폄하하는게 아니라 스타 시스템 자체가 이들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뜻).
결국 남은 길은 마돈나처럼 이미지 메이킹, 언론 플레이 등의 음악 외적인 부분에 치중하는 길이다. 허나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닌 것이, 시대의 흐름을 읽어야 하고 대중을 장악할 카리스마가 요구되며 음악적 요소를 받쳐줄 음악 관계자를 잘 만나야 한다. 결정적으로 운이 따라주어야 한다. 이게 충족 안되면 대중음악계에서는 더이상 그들의 영역이 없다. 이전의 후광에 힘입은 예능 늦둥이, 연기 활동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다.
아이돌은 참 멋있다. 얼굴 반반하다는거 비아냥거리려는게 아니라, 그 내면이 치열하다. 가난, 왕따, 가정 문제 등을 딛고 각고의 노력 끝에 일어선 그들의 성공 신화를 들으면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의 이런 삶을 마냥 응원해줄 수 없는 이유 역시 엄존한다. 작금의 아이돌 시스템은 대중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뿐더러 정작 본인의 꿈도 이루어줄 수 없다. 이는 수 년간 반복되어온 지난 가요계의 교훈이자 지금의 동방신기에게도 제기되는 오늘날의 화두이다. 문제는 방향성이다. 앞으로 동방신기를 비롯한 이 땅의 아이돌 그룹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고 멋지게 나아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