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적설이 짙어지다
석진은 오늘도 자신의 일상에 빠져 가고 있었다. 차가운 쇳덩어리들과 그 차가운 도취감에
빠진 외로운 외발이 손. 3년전 그에 손은 홀로 석진의 오른쪽을 채워줘야만 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속에 그에 왼손은 차가운 외마디 비명만을 뒤로한채 힘없이 빨려들어가버린
것이다. 석진은 아프기보단 자신의 처량한 심경만큼 차디찬 쇳내음에 진저리만을 칠 뿐이었
다. 그리고 그 차디찬 진저리보다 차가운 어머니라는 사람의 한마디에 자신의 부분이 잘려
나가는 고통을 느끼는것 조차 허영이라고 느꼈다.
" 저넘에 자식 하이튼 하는 꼬락서니 하고는.. 머하는거야 .. 기계에 피 튀잖아.. 내가 정말
못산다. 수건 감고 어서 병원이나 가 썩을넘아. 하이튼 내 주위엔 도움이 되는것들이 없어
네 애비 불러서 같이 병원이나 가. 어서 가라고 보고 있으면 짜증나니까.. 진짜 내가 이러고
는 못살지..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복도 없다 하드만. 이넘에 팔자는..."
석진은 아무런 말도 아무런 생각도 할수도 들을수도 없었다. 원래 난 그런 존재였으니까..
이런 말들이 나에겐 당연하고 어울리는 말들이니까. 난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 하는 넘이
니까. 차가운 매스에 팔이 잘려나가는 순간에도 석진은 담담하게 그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일부분이 잘려나감을 아쉬워 하지도 얽매여 하지도 않았다.. 이런 비참한 현실이 석진
에겐 당연한 거며 어울리는 일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피식 웃음이 나는 그였다..그런 그를 바라
보는 의사 또한 당연한 일을 하듯 아무 온기도 느껴지지 않는 차디찬 매스를 그을뿐이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석진은 알수 없는 정감마저 드는것이었다.
"학생. 당분간 좀 아플꺼야 . 매일 소독 받으로 와야 하니 잊지 말고 오게.. 수술은 끝났으니
간호사 따라가서 진통제 맞고 약받아 가게.. 김간호사 다음 환자 들여보네 ."
의사라는 사람은 그 말만을 남긴채 나에 왼부분을 가지고 서서히 사라졌다. 석진은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며 옷을 추스려 보지도 않는 그를 향해 목례를 하고 그 자릴 떠나 터벅 터벅 그의
일상으로 점점 다가가갔다.
" 오늘은 해야 할일들이 많은데 좀 늦게 끝나겠네..."
그로부터 벌써 3년이 지나 이제 석진은 자신의 왼부분 마저 채워주고 있는 오른손을 바라보며
가끔 푸념어린 한숨만을 쉴뿐이지 그 어떠한 상념도 느낌도 없이 살아가고 있었다. 가끔 가은을
바라보면 자신의 부족한 몸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름 괜찮도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그였다. 오
늘도 할일은 석진을 매여온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와 여기 저기서 들리는 사람들의 시
끄러운 고함들. 그리고 그 속에서 기계마냥 쉼없이 일을 하는 석진. 어찌보면 참 잘 어울리는
풍경이다. 어느 하나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없다.. 마치 첨부터 그런 풍경이었듯 참으로 잘도 돌아
간다..하나 막힘없이..
그런 일상속에 빠져 있던 석진을 깨우는것은 역시 가은이의 생각이다. 용접을 하고 있던 석진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용접봉을 멈추고 굽어져 있던 허리를 세웠다.
"이제 가은이 학교 끝날 시간인데.. 가봐야 하는데 ..10분 밖에 안남았네. 이러다가 가은이 못 보
겠다. 오늘 학원 가는 날이 아니니 집에 빨리 오겠구나.. "
석진의 굴레를 벗어던지듯 용접봉을 던져버리고 석진은 공장 밖으로 뛰어가기 시작하였다. 등 뒤
에서 들려오는 굴레에 찬 어머니 말을 뒤로 한채 말이다..
"저 넘에 새끼 또 미쳐 뛰나가네...... 어디가 이리 안와.. 정말 내가 못산다.. 너 이눔의 새끼 지금
나가서 영영 들어오지도 마.. 호랑이가 물어갈 넘의 새끼야.. 에휴......."
언제나 그랬듯 당산나무는 오늘도 변함없이 석진의 자리를 가리워 주고 있었다.. 참 고마운 녀석이
라고 생각했다. 그 누구 하나 자신을 위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 녀석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석진을
위한 자리를 주고 행여나 가은이가 자신을 볼까 싶으면 자신을 감춰주는 정말 고마운 녀석이라며
살포시 녀석을 쓰다듬어 주는 석진이다.. 이제 그는 기다리면 된다. 하얀 미소가 번지는 가은이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면 된다. 그게 유일한 행복이며 유일한 삶에 이유인 그였다.. 그러한 순간
을 맞이하는 석진의 얼굴에 하얀 미소가 번지는 듯한 착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였다. 연신 눈망울
을 비비며 가은의 흔적을 찾는 석진이다. 드디어 저 멀리서 가은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오늘도 역시
하얀 미소를 가득 머금은채 가은은 그렇게 석진의 눈에 번져왔다.
"오늘 기분이 좋았나 보네. 학교에서 좋은 일이 있었나. 가은이 너 그거 알어.. 너 웃는 모습 정말
눈부시게 하얀거.. 마치 네가 좋아하는 눈이랑 닮았어.. "
이러한 석진의 말이 들리기나 하는지 가은은 더욱 하얀 미소를 석진의 온 마음에 퍼뜨려주었다.
돌담길을 걸어오는 가은이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석진은 잠시 자신의 모든것을 버리고 가은이의
곁으로 달려나가고 싶음을 주체 할수 없었다.하지만 그러한 상념도 잠시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는
이내 체념어린 푸념으로 떨쳐버리곤 하였다. 오늘도 가은은 하얀 미소를 석진에게 남겨둔채 차가운
쇳소리와 함께 그녀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항상 느끼는거지만 석진은 이 순간이 그 어느순간보다
힘들다고 느낀다. 어쩔수 없는데도 말이다.
"가은아 오늘 수고 많았어. 저녁 맛있게 먹으렴. 그리고 잘 자구.. 나 그만 갈께. "
일어서서 힘없이 기지개를 켜 보는 석진이다. 하지만 그 몸짓은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왼쪽으로 치
우치기 마련이다. 석진의 부족함을 알려주려는 것일까.
"참..기지개 하나 제대로 못 하네...하하하 .. 난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네..하하하하 ."
당산나무 뒤로 석진의 기분좋은 웃음만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