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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을의 오후

은하철도 |2006.09.05 00:26
조회 830 |추천 0

아름다운 가을의 오후



허리 꼬부라진 할머니가 박스와 폐지가 가득 실린 리어카를 밀고 있었다. 큰 비닐에 가득 채워져 쌓인 폐지는 꼬깃꼬깃하여 부풀어 올라있으니, 차곡차곡 쌓인 폐지와는 다르다. 분량만 많지 무게가 별로다. 뒤에서 리어카를 밀고 가던 할머니는 쌓인 폐지더미에 앞을 보지 못하고 그만 주차되어 있던 차를 쿵 들이박았다. 언 듯 보니 범퍼를 박아서 그다지 큰 흠이 나지는 않았지만 삼십대로 보이는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화를 벌컥 낸다.

 

“아니, 할머니, 차를 들이박으면 어떻게 해요? 기스가 났는데 수리하려면 몇 만원 들잖아요.”

할머니는 미안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모른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다가 한 마디 거들었다.

“몇 만 원요? 아휴, 할머니 이를 어떻게 하며 좋아요?”

사실 할머니와 나는 구면이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폐지를 수집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전에 몇 번이나 말을 붙인 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 목소리에 빙긋 웃었다. 삼십대 남자는 정말 차의 수리비를 받아내려는 듯한 말투였다.

“찌그러지지는 않았으니깐 기스 난 것만 수리하려면 오만 원은 들겠는데,”

 

오만 원이라는 소리에 나는 또 웃었다. 마침 쓰레기를 담으며 오락가락하던 환경미화원도 이 소리를 듣고 씩 웃었다. 할머니 대신에 내가 사정하며 나섰다.

“할머니가 폐지를 모으면 얼마 버는 줄 아세요? 1키로에 30원이거든요. 열심히 10키로 만들어 봐야 300원 벌어요. 100키로면 3000원인데, 할머니가 모아야 얼마나 모으겠어요? 하루 종일 애써야 50키로 정도 모을까, 그러면 하루 벌이가 1500원이거든요. 이를 어쩌죠?”

 

삼십대 운전자는 내 설명을 듣더니 입을 딱 벌렸다. 환경미화원이 리어카를 손으로 쓱쓱 밀어보더니, 천원어치도 안 되겠네, 하고 씩 웃었다. 운전자는 도저히 말이 통할 동네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채고 비실비실 뒤로 물러났다. 할머니와 환경미화원, 나는 또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무게도 안 나가는 게 덩치만 크니, 쯧, 할머니 내가 리어카 끌어다 줄 테니 쫓아오세요.”

내가 리어카를 끌고 고물상으로 성큼성큼 가자 할머니는 종종 걸음으로 쫓아오기 시작했다. 고물상에 도착하여 뒤돌아보니 할머니가 멀리서 오시는데, 어느 틈엔지 벌써 신문지 몇 장과 떨어진 포스터를 꼬깃꼬깃 쥐고 오시는 것이었다.

 

“하하, 또 어느새 신문지와 포스터는 주워 오시는 거예요?”

햇살에 번쩍이는 이마의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오던 할머니는 조글조글한 입술을 헤 벌렸다. 그러다가 신문지 사이에 껴져 있던 포스터 용지가 바닥에 떨어지더니 아스팔트에 날렸다. 얼른 뛰어가서 포스터 용지를 발로 밟고는 주워들었다.

“아휴, 이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 일원도 아니고 일전이나 받겠나? 그것도 못 받겠네요.”

그나마 할머니는 거듭 고맙다고 말한다. 틀니마저 없어 홀쭉한 입을 벌리며 웃는 할머니의 표정이 아름답다. 가난의 바다에 시원한 가을바람이 스친다.



글 / 은하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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