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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투데이..1

송수민 |2003.03.03 23:06
조회 332 |추천 1

'철커덩'
문이 열리자, 현주는 들어서며 앞으로 올려져 있는 층층 돌계단으로 걸음을 했다.
현관 입구가 보이는 겨울나는 잔디 위에서 문득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바뀐 현주는 얼른 방향을 바꾸어 빼곡한 정원수들 쪽으로 걸어갔다.
'희망수'
크디큰 나무들 틈 안쪽으로 작은 나무 한 그루가 표지판 뒤로 보였다.
아직은 주위의 다른 나무들에 비해 크기로는 어려 보였지만, 사철나무의 독특한 잎은 무엇보다도 싱그러워 보였다. 
자랑스러워 보이는 듯 뿌듯한 현주의 표정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고마워, 앞으로도 영원한 희망수로 잘 자라 줘..'
쪼그리고 앉았던 현주가 일어나 걸어오다간 다시 한번 뒤돌아 서서 자연스럽게 빙그레 지어지는 미소로 나무쪽을 힐끗 한번 더 보며 웃었다.

"들어오는 거 봤는데, 왜 이제야 들어와? "
막 셔츠를 목으로 빼던 채현은 방으로 들어오는 현주를 보며 물었다. 
"으..응. 희망수 얼마나 자랐는지, 궁금해서 보느냐고."
"뭐.. 다른 빌고 싶은 소원이라도 생긴 게 아니구? "
채현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현주를 힐끔 보곤 다시 옷매무새를 다듬기 시작했다.
"소원은 무슨. 희망수 다른 나무들하고는 다르잖어. 대학합격 기원하면서 심었던 거라 왠지 그냥 맘이 가고 그래."
"치. 유별나, 암튼." 채현이 돌아다보며 눈을 흘겼다.
"그런데, 너 어디 나가니?
"응" 채현의 당연스런 대답이 오히려 현주의 질문에 반박하는 듯 했다.
"나가? 정말?" 대답에 놀란 현주는 보던 잡지책을 덮으며 거울 앞에 서 있는 채현을 봤다. "전화할 때까지도 그런 말없었잖아."
"나갈 계획은 너랑 전화하기 전부터 있었어. 오빠랑 가기로 했거든. 현주야, 같이 가자, 응?" 채현은 거울 앞에서 돌아서며 말했다. "같이 가고는 싶은데 그 얘기했으면 너 분명히 갔다가 와서 전화하라고 할거 였잖아. 그래서 말 안 했던 거야. 다른 방법이 없더라구. 같이 가는 거다, 알았지?"
"뭐야..그러면서 집으로 오라고 하구."
어느새 다가와 팔짱끼며 애교부리는 채현에게 화를 내기가 어렵단 걸 알기에, 현주는 살짝 눈을 흘기며 쳐다보는 걸로 끝을 냈다. 

"현주도 가기로 했어, 오빠." 차고 계단으로 내려오던 채현이 차밖에 나와 기다리는 무현에게 뛰어 내려가며 말했다.
무현은 뒤에서 걸어 내려오는 현주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오빠."
현주가 차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무현에게 얌전하게 인사했다.
"현주, 오랜만이네."
"네."
현주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서두르자. 갑자기 일 생겨서 끝까지 책임져 주기 힘들 것 같거든."
무현이 먼저 차에 탔다.
"무슨 소리야, 오빠?"
채현은 무현을 보고 소리지르듯 하다가 우뚝하니 서있는 현주를 먼저 뒤 좌석으로 타게 하고는 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탔다.
"응? 무슨 말이냐구."
채현이 보채듯 차에 타자마자 다시 물었다.
"그렇게 됐어. 어머니한테는 따로 말하지마."
무현의 굳은 얼굴에 채현은 더 이상 오빠에게 물어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내밀어진 입을 하고 앞 유리를 응시했다.
"괜히 현주한테 미안하네, 오늘..입학축하 선물도 사주고 맛있는 음식도 사주려고 했는데... 담에 그러자." 무현이 룸 밀어로 현주를 보며 말했다.
"...네, 오빠."
현주는 룸 밀어로 무현의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고개 짓까지 하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오빠한테 옹팡 씌우려고 했는데, 물 건너갔네. 오늘 미안해하는 거 까지 해서 곱빼기로 해죠. 알았지?" 채현이 퉁퉁거리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임마!"
무현은 채현의 말에 기분이 풀렸구나 싶어 웃으며 대답했다.
"현주야, 너도 잘 생각해 둬. 이런 기회가 자주 오는 게 아니거든, 가장 가지고 싶었던 걸루. 알았지?" 채현은 몸을 뒤로하며 현주를 보고 활짝 웃었다.
그러나 현주는 대답 대신 채현을 보며, 빙그레 살짝 웃을 뿐이었다.
"그래라, 현주야. 오빠가 사주는 거니깐, 잘 생각했다가 말해야 한다! 자, 그럼  이제 출발한다."
차고 문이 조금씩 올라가자, 무현이 선글라스를 고쳐 쓰면서 룸 밀어의 각도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란 담 벽의 한쪽 철문이 중간쯤 올라가며 열리자, 무현의 차는 그 사이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이왕이면, 입구에서 내려주지,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아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그치?" 채현은 몸을 한껏 움직였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빨리 바뀌지 않아, 한참을 찬바람 맞고 서있던 채현은 백화점 입구 문을 들어서기가 무섭게 현주에게 바짝 기대었던 몸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한 낮이라 햇살이 잔득 비추어 내리긴 했지만, 겨울의 햇볕은 찬바람을 견딜 만큼 따뜻하진 못했다. 현주도 바람이 얼굴에 닿을 때의 찬 기운은 피부를 에인다 느꼈다. 그랬기에 채현이의 이 투덜거림을 이해하며 들어주었다.   
백화점 반대 방향으로 있던 무현의 차가 다음 신호에서 턴을 하기 위해 대기했을 때, 걸려온 전화. 그리고 급하게 그 신호에서 현주와 채현을 내려 주고 바쁘게 차를 출발시키고 떠났기에 생긴 일이었다.
"현주야, 가방 좀 보고 올라갈까?"
"어? 어, 그래."
현주는 무현에게 생긴 다급한 일이란 무얼까 하는 걱정으로 잠시 딴 생각을 하는 통에 채현의 말을 놓쳤다.
"가방부터 보고 올라가도 되겠냐구요." 채현이 한글 자씩 힘있게 띄어 말했다.
"미안, 잠깐 다른 생각하느냐고 그랬어, 미안, 미안. 그렇게 하자."
이번엔 현주가 멋쩍게 채현의 팔을 끼며 앞섰다.
채현은 현주의 팔에 이끌려 앞으로 끌려지자 의외란 표정을 지으며 현주의 어깨를 툭 처 보았다.

"음, 음... 어디, 잠깐만..."
입안의 피자를 오물거리며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하게 있던 채현이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몇 장을 이리 저리 펼치다가 전화기로 번호를 눌렀다.
"이 짐을 들고 저 추위 속 밖으로 나가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해. 보디가드 되어 줄 괜찮은 사람 좀 색출해 보자."
전화기를 들고 신호음을 기다리는 동안, 채현은 슬슬 구렁이 담 넘어가는 소리처럼 혼잣말하듯이 현주에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말했다.
"오빠? 채현이야." 통화가 연결되었는지, 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오빠 지금 어디야?......"
현주는 채현이 통화하는 사이 커피 잔을 들며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구름이 잔득 어둡게 덮고 있어, 조금만 있으면 눈이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게 보였다.
문득 그 하늘을 보고 있자니, 현주는 잠시 잊었던 무현의 일이 또 다시 걱정으로 머리에서 일렁거리며 밀려왔다.

"왜 그냥 가겠다고 그러는 건데..." 채현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잘 모르는 사람, 만나는 거 불편해 하는 거 너두 잘 알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미리 학교 좀 둘러보고 가면 좋잖아. 우리 동네 사는 오빠라 얼굴 보면 아, 하면서 알 거라니깐, 고집이네."
"아니야, 난 그냥 갈래, 채현아."
현주는 미안했지만 모르는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같이 나왔다가 너 이렇게 간다고 하면 내가 미안해지잖아. 그러지 말고 같이
있다가, 가자.. 응? 바래다줄게."
"채현아 너가 계속 이러면 내가 미안해져, 그러지마.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난 여기서 좌석버스 타고 가면 바로 집 앞인데, 뭐 하러 그래. 신경 쓰지 말고, 놀다가 들어가. 알았지?"
현주는 채현의 양 팔을 잡아 흔들었다.
"계집애, 똥 고집이야 도대체가.. 친구랑 같이 있다고 했는데..."
채현은 얼굴을 반쯤 숙이며 입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현주는 이제 채현이 그만 보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전화할게."
현주는 채현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가 놓고, 바로 보이는 정거장으로 걸음 속도를 빠르게 하며 걸었다.
"저녁에 전화할게, 잘 가!"
뒤에서 채현의 목소리가 들리자, 현주는 잠시 뒤돌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시선을 조금 멀리 두며 버스를 기다리던 현주의 어깨 위로 작은 눈이 내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눈송이가 큰 함박눈으로 바뀌어 내리기 시작했다.
내리는 눈을 피해 정거장 박스 안으로 들어갔던 현주는 잠시 후, 밖으로 나와 걷기 시작했다. 저무는 저녁 해를 가리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한 정거장쯤을 걷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머리와 코트의 어깨로 쌓이는 눈을 지나치는 상점의 쇼윈도를 통해 보면서 현주의 머리 속에는 어느새 3년 전 채현의 오빠인 무현을 처음 만난 그날이 머리에 그려졌다.

 

"누구?"
"예?"
현주는 바로 뒤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한 무현을 돌아보며 놀라 잔득 긴장한 표정이 되었다. 
"채현이.. 친군가?"
"...예."
현주의 놀란 눈은 여전히 무현을 바라보고 있었고, 긴장감에 대답 할 땐 그만 고개까지 함께 끄덕였다. 그러다가 현주는 한번도 본적은 없지만, 올 겨울 미국에서 돌아왔다고 말하던 채현의 하나뿐인 오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채현이가 잊고 안 가져 나온 게 있어서 들어갔거든요."
현주는 얼른 말을 받아 대답했다.
"깜박 깜박 아가씨 때문에 우리 친구가 이렇게 밖에서 눈맞으며 기다리는 거 군요."
현주의 얼굴로 가까이 얼굴을 대며 부드럽게 미소짓고 말하는 무현을 현주는 여전히 빤히 쳐다보았다.
"...어?"
현주는 뒤로 몇 발자국 물러섰다.
갑작스럽게 현주 어깨의 눈을 털어 주는 무현의 손에 놀란 현주는 순간 몸이 뒤로 물러서졌다.
"흣.. 옷이며, 머리며, 온통 눈으로 코디하려구? 그러다가 그 상태로 녹으면 추울 텐데, 좀 털어야 하지 않을까?"
낮고도 진지한 무현의 목소리 그러나 얼굴 표정은 무척 장난스러웠다. 
"예.."
작디작은 목소리로 대답한 현주는 머리위로 손을 가져가 앞머리부터 눈을 털기 시작했다. 머리에 있던 눈이 손의 온기가 닿자 이마로 물이 되어 떨어졌다.
현주는 얼른 이마로 흐르는 물기를 닦았다. 그리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무현 때문에 현주의 손과 얼굴의 표정은 동시에 금방 아주 어색해 져버렸다.
"이런, 이런." 현주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짓던 무현은 이가 들어 나리만큼 환하게 웃었다.
"미안, 현주야. 어? 오빠? " 채현은 급하게 대문을 열고 나오다가 무현을 보았다.
"친구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할거면 같이 들어갔어야지, 깜박아!"
"오래 걸릴 줄 몰랐지 오빠는...! 미안, 현주야." 채현은 얼른 현주의 얼굴을 살폈다. "기다리느냐고 힘들었어? 에이, 아니지?"
"어, 어.."
"흣... 우리 오빠야, 현주야. 이무현."
채현이 현주의 팔을 흔들며 오빠를 쳐다보게 했다.
"안...녕하세요."
현주의 목소리가 어색하게 나왔다.
"오빠, 이쪽은 내 친구 김현주."
"우리 깜박이 아가씨 친구인줄은 알았네요." 무현이 채현의 머리카락을 당기며 장난쳤다.
"어, 그래, 그래."
채현은 현주가 잡은 팔에 힘을 주자, 빨리 가자는 뜻임을 알아챘다.
"나 학원 가는거라. 좀 오래 걸려. 갔다, 올게 오빠!"
채현이 오빠에게 손을 흔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채현이 먼저 돌아서자, 팔을 잡은 현주도 급하게 몸을 돌리며 무현에게 인사를 했다. 
"담부터는 눈 내릴 때, 꼭 우산가지고 다니도록! 그런 식으로 눈 맞지 말고."
무현의 큰 소리가 뒤로 들리자, 현주는 다시 한번 창피함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니 모습... 누가 그냥 지나칠 수 있겠니.. 그게 남자라면 특히, 더...'
무현은 가방 뒤로 차분하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우산 밖으로 살며시 보이는 현주의 뒷모습을 여전히 깊은 눈동자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우리 오빠가 하는 소리 맞지?"
"그냥, 가."
현주는 채현이 뒤돌아보고 댓구 하려고 하자, 어깨를 살짝 치며 가자고 했다. 
"너 눈맞고 있었다고 하는 소리지, 울 오빠? 미국에서 돌아 온 뒤로 저렇게 재미있어 하는 거 첨 보네. 거, 참."
현주는 자신을 보며 활짝 웃던 무현의 얼굴이 자꾸만 또렷하게 떠오르자 창피함이 더 커졌다. 


현주는 다음 정거장이 눈에 들어오자, 아쉬운 듯 걸음을 조금 더 천천히 했다.
바람 없이 조용히 내리는 눈에 대한, 감성에 빠진 현주는 평생에 허락된 단 하루인 것만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 정도로 좋아서 계속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머리위로 우산들이 하나, 둘 쓰여지면서 내리는 눈을 피하는 모습이 보이자, 현주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그려지면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맞은편 팬시점 간판을 확인한 현주는 횡단보도로 걸어가, 바뀔 신호를 대기하며 멈추어 섰다.

"갑자기 눈도 참 많이 내린다."
신호 대기에 차가 서자, 준은 핸들에 양팔을 기대며 창으로 바짝 얼굴을 댔다.
"그러게, 말이야."
민이도 그런 준의 모습을 보며 잠시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잘 왔지? 괜히 고집 피웠으면, 형은 이 눈 다 맞고 왔어야 할걸?"
직진하는 차들이 한순간 옆으로들 지나가자 준은 창에서 고개를 뗐다.
"그래, 내가 동생 하나는 잘 뒀지."
"그럼..! 그 사실만은 형, 평생 꼭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거야. 알았지?"
준은 민을 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학교까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데, 괜히 번거로운 거 아니야? 나오려면 다시 돌아야 하는 거잖아."
"됐어, 이왕 서비스 할거 끝까지 해야지."
준이 코를 찡긋했다.
"이거 또 눈온다고 의경애들 시스템가지고 맘대로 대기 시간 조정하는가 보네."
신호 대기에 지루했던 준은 들리는 노래 소리에 손가락과 함께 고개도 살짝 살짝 돌려가며 멜로디를 맞추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어? 형, 빨리 뒤에 내 카메라 좀 , 빨리 빨리."
황급해하는 준의 말에 엉겁결에 뒤의 카메라 가방을 넘겨준 민은 무슨 일 인가 하며 준을 쳐다봤다. 
준은 황급하게 카메라 가방에서 케이스 하나를 더 꺼내 렌즈 둘레에 끼운 뒤 창문을 내리고 머리를 창 밖으로 내밀어 렌즈의 초점을 왼편의 신호등에 맞추었다.
창문이 열리자 순간적으로 눈이 차안으로 들어왔다.
준의 카메라에서 후레쉬가 5번째로 터질 때쯤, 뒤에서 크락션 소리가 크게 울렸다.
"준아. 출발해야 하는데.."
"어, 형, 잠깐, 한 장만 더."
마지막 후레쉬가 터졌지만, 그 소리는 뒤에서 들리는  또 한번의 크락션 소리에 묻혔다. 몸의 반 이상이 창 밖으로 나가 있던 준의 몸이 급하게 차안으로 들어옴과 동시에 준의 손에 들렸던 카메라가 민의 다리에 던지듯 놓여졌고, 차는 바로 출발했다.  
"아.. 숨차다! 호흡 멈추고 찍기. 거, 되게 힘드네. 뒤차들 욕 좀 심하게 했겠는데. 그치 형?"
준이 형을 아무렇지 않게 보며 웃었다.
"뭐 찍으려고 갑자기 그런 거야?"
"여자!" 눈썹을 위로 올리며 준은 재미나게 대답했다.
"여자?" 민은 의외의 대답이 나오자 의아해졌다.
"눈 모자 쓴 여자. 사진 나오면, 보여줄게, 형." 준의 눈이 민의 다리에 놓인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
민은 준이 하는 말이 도무지 무슨 말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다만 여자사진을 찍었단 말만이 잼있게 들려 왔을 뿐이었다.
"너.. 왠지 이 길로 작업실 곧장 행 같은데? "
준의 차가 병원 입구의 치과 대 건물 앞에 서자, 민은 차에서 내리기 전, 카메라를 한번 흔들어 의자에 놓으며 말했다.

"역시, 형이야! 바로 가서 현상해 보고 싶어, 궁금해서 미칠 것 같애."
준은 정말 궁금해 미치겠단 표정을 얼굴에 잔득 그려 보였다.
"그래, 그렇게 갑작스런 영감으로 찍은 사진이니깐, 만족스럽게 잘 나올 거야."
"그래야 돼. 형."
민이 가방을 한번 더 고쳐 매자, 준은 조금 더 위로 올라가 차를 돌려서 병원 건물을 나왔다. 병원 입구 내리막길을 내려오면서 곧 바로 학교로 들어가려던 준은 깜박이를 켜려다가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정면으로 직진신호의 파란 불이 켜지자, 준은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며 그대로 학교를 지나쳤다. 그리고 차는 바로 조금 전 사진을 찍었던 반대방향의 도로 쪽으로 횡단보도를 뒤로하며 세워졌다.
'...흣, 그렇지. 이 정도 시간차이면 어디로든 벌써 가고 없겠지.'
설마 라는 가정 하에 다시 와 보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 드는 서운함이 준의
마음으로 밀려들었다. 허탈한 표정이 가득했던 준은 지금의 돌발적인 자신의 행동에 저절로 나오는 한숨 섞인 짧은 미소를 얼굴에 그린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차의 대기신호 깜박이를 껐다. 그리곤 한 블록을 더 직진했다가 되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라 준은 빽 밀어를 보며 뒤의 차들과의 거리를 살폈다. 
어느 순간 횡단 보도의 보행신호에 걸려 차들이 정지하자, 준은 깜박이를 켜며 천천히 도로로 끼어 들었다. 
그리고 준이의 차가 출발하고 떠난 그 자리 바로 뒤편 횡단보도로 팬시점에서 막 나온 현주가 우산을 펼치며 횡단보도를 건너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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