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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36화> 결론

바다의기억 |2006.09.13 17:20
조회 6,032 |추천 0

수요일입니다.

 

오늘 저녁엔 모 여고에

 

과학수업을 도와주러 갑니다.

 

허허허....

 

교생실습이라도 나가는 것 같은 기분이네요.

 

몹시 기대됩니다. 허허.

 

======================== 아이들은 널 반기지 않는다 =========================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도망치듯 잠을 청했던 나.


하지만 눈을 뜬 순간 제일 먼저 날 찾아온 건


지난 일이 절대 꿈이 아니었다는


불쾌한 현실감이었다.



기억 - .......



주변은 어두웠다.


명상에라도 잠긴 듯 고요하기만한 분위기는


금방 내 기분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었다.


일단 마음을 가다듬은 난 앞으로의 일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했다.


Input에 희망적인 요소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지금


긍정적인 Output이 나올 리 만무했지만,


잘 찾아보면 절대값처럼 음수를 양수로 싹 변환해줄


획기적인 방법도 있을 터였다.



희미한 조명에 반짝이며 떨어지는


링거속의 약물방울을 눈으로 좇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을 때,


무릎께에서 부스럭하고 뭔가 움직이는 기척이 났다.



한나 - .... 응? 오빠 일어났어요?



어쩌면 이 사태의 발단이라 할 수 있는 그녀.


물론 그녀도 일이 이렇게 되길 바란 건 아니었겠지만,


전혀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더욱 아이러니한 건


지금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도 그녀 밖에 없다는 것.


병 주고 약 준다는 말도 있긴 하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은가?



기억 - 왜 그랬어?


한나 - .......



그녀는 여전히 이 질문에 대해선 묵묵부답이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결국 대답을 듣기를 포기한 난


그녀와 다른 문제에 대해 논의해보기로 했다.



기억 - 공연이 내일 모레였지?


한나 - 네.


기억 - 보러 갈까?


한나 - ....... 그쪽이 좋을 것 같아요.


기억 - 민아는.... 다시 돌아오겠지?


한나 - .... 아마도요.


기억

-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어차피 다 내 착각 때문에 생긴 일이니까


사과하고 넘어가야 할까?



한나

- 천천히 생각해봐요.


이 일이 서로 간에 앙금이 되진 않을지,


다시 예전처럼 언니를 대할 수 있을지...



난 그날 새벽녘이 다될 때 까지


그녀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아의 일, 안군의 일, 그리고 그녀 자신에 대한 일도...



한나

- 다시 한 번 사과할게요. 정말로 미안해요.


일이 될 줄 몰랐다거나 그런 변명은 안 할게요.


그런다고 내 잘못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니까....


대신 오빠가 바라는 일이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해줄게요.



기억 - ..... 됐어. 입원기간동안 신세진 걸로 충분해.



한나

- 아뇨, 그건 제가 안 괜찮아요.


이 일이랑 무관하게 오빠가 순수하게 바라는 일을 말해줘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그녀는 Give & Take 가 너무나 분명하다.


지금처럼 자기가 불리한 상황에서도


적당히 넘어가는 것 없이 이렇게 덤비는 걸 보면


나보다 더 꽉 막힌 구석이 있는 것 같다.



기억 - 그럼.... 춤을 가르쳐 줘.


한나 - 예?


기억

- 나중에 몸 다 낫거든.... 다시 한 번 배워보고 싶어.


연극 같은 거에 얽매이지 않고 그냥 즐기면서.



한나 - ....... 그래요 그럼.



그렇게 말을 마치고 난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와 이야기하는 사이에


납득할만한 해답을 얻은 일도 많았기에


마음은 한결 편안했다.



공연 당일.


난 한나의 도움을 받아 휠체어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세 동아리의 합동 무대인만큼


공연장은 입구부터 만원이었고,


난 간신히 무대 오른쪽 통로 근처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래지 않아 공연은 시작되었다.



= 옛날 옛적 어느 머나먼 왕국에

예쁜 공주님 한분이 살았답니다.

그리고 공주님이 옛날부터 사랑한

멋진 기사님 한 분도 있었답니다.

그리고 오늘은~ 오늘은? 오늘은?

공주님의 17번째 생일~!!



내레이션 대신 합창단의 동요 같은 노래로 막을 연 무대.


찬란한 조명과 함께 막이 오른 무대에선


수많은 사람들이 파티음악에 맞춰 쌍쌍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단연 돋보이는 안무를 선보이고 있는 민아와 안군.


정말로 이 모습만은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이 모습만은.....



공석이던 왕자역엔 김군이 배정되었고,


덕분에 왕자는 굶주린 자에게 힘을 쥐어주면


어떻게 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폭군의 이미지로 각색되어 있었다.


나라 간의 세력구도를 이용해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려는 치졸한 인물.



공연 내내 계속되는 안무와 합창은


보는 이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었고


전에 본 적 없던 스케일과 소품 동원은


연극적인 재미도 충분히 살려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왕자가 철저하게 망가짐으로써


극적 긴장을 고조시킨 시도는 정말 훌륭했다.



한나 - 어때요? 보기에?


기억 - ..... 잘하네, 모두들.



내가 없어도.... 라는 말이 입안까지 따라 나온 걸


간신히 잘라 삼키며,


난 다시 공연이 집중했다.



공주의 사랑을 얻는 데 실패한 왕자는


그 보복으로 전쟁을 일으킨다.


모반을 꿈꾸던 제상의 협조로


손쉽게 왕궁까지 진입한 이웃나라의 병사들.


기사는 공주에게 빨리 자리를 피할 것을 권하지만,


자신의 과오로 백성들이 위험에 처했다는 자책에


공주는 그의 손을 뿌리친다.



결국 그 사이 병사들은 그녀의 방으로 들이닥치고,


기사는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싸우다 죽음을 맞이한다.


기사가 죽은 뒤 개선장군처럼 방으로 들어선 왕자는


공주의 손을 잡아끌고,


상심에 빠져있던 그녀는 자포자기한 듯 그를 따라 일어났다.


하지만 어느새 왕자의 몸에 박혀있는 단검.


당황한 병사들이 공주를 향해 칼을 겨누는 가운데


그녀는 국가의 안녕과 다음생의 인연을 꿈꾸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전형적인 비극을 맞이한 무대에서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난 기사는 공주에게 다가가 춤을 청하고,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공주는 수줍은 손을 들어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천천히 페이드아웃 되어가는 조명이 완전히 꺼지는 그 순간까지


왈츠를 추는 두 사람.



하지만 무대에 흐릿한 핀 조명 두개가 들어왔을 때 두


사람은 다시 죽음을 맞이하던 그 모습 그대로


무대에 누워있었다.


가늘게 손가락을 떨며 눈물짓는 공주.


잔잔한 내레이션이 무대의 마지막을 고했다.



= 고마워요,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반응은 뜨거웠다.


수많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겉돌지 않는 완벽한 조화.


과연 이 연극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였을지


절실하게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무대인사가 모두 끝나고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다음에야


난 휠체어로 몸을 옮겨 싣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늦어도 오늘 밤엔 그녀가 병실로 와줄 것이라 생각하며


통로를 지나는 도중 민아가 내 앞을 막아섰다.



민아 - ..... 와... 와주었네.


기억 - 아 오랜만이야. 공연 아주 잘 봤어.


민아 - 다행이네. 저기.... 사람들 보고 가는 게 낫지 않아?


기억 - 아냐, 다들 피곤할 텐데. 나도 이제 병원에 돌아가 봐야하고.



아무래도 연극을 보는 동안


감정을 추슬러 놓은 게 도움이 됐는지,


난 2주 만에 그녀와 마주하고도


별 무리 없이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이 너무 태연해 보였는지


잠시 말을 망설이던 그녀는 어렵게 사과의 말을 꺼내놓았다.



민아 - 정말.... 미안해 기억아. 하지만 역시.... 이번만큼은....


기억 - 아냐, 이미 다 끝난 일을.


민아 - 그래? 정말 고마.... 응? 지금... 뭐라고....


기억 - 이미 끝난 일이라고 했어. 예전에 말했던 데로....



잔인하게 들렸겠지만, 그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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