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18597,19~1919,10,12)
출생:영국의 런던에서 존, 언더우드의 4남으로 태어남
활동분야:선교활동
서훈:고종황제로부터 태극훈장을 받음
1963년 국가공로 대통령장
저서:(한국교회 초기 선교역사ㅡ와서 우릴도우라)
활동사황: 1885년에 제물포(지금의 인천)항으로 도착한 장로교의 선교사 언더우드와
[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라 부부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았던 한국에 입국한것이다
1884년 12월에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한 언더우드선교사는 다음해인 1885년 1월에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서 먼저 일본에 도착하여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던 북장로교의 선교사들에게 환영을 받고 잠시 쉬었다가 최후의 보류지인 한국으로 출발하여 1885년 4월5일
역사적인 한국에 상륙하게 된것이다
(언더우드)가 한국에와서 처음으로 한것은 알렌이 개설한 [제중원] 의학교에서 화학과 물리학과 영어를 가르치면서 우리 국민들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는 1886년에 고아원을 겸한 학교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것이[경신학교]의
전신이다
언더우드의 공로중 가장 큰 업적중의 하나는 자기가 설립한 [경신학교]대학부에서 출발시킨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이었다
후에 [연희전문학교]는 한국 교육의 명문으로 자리매김한 [연세대학교]로 성장하게
된것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선교 활동이 어느정도 허용되자 자신의 집으로 14명의 신자들을
초청해서
1887년 9월 14일[정동교회]를 설립하게 된다
이 교회는 점차 발전하여서 정동에서 신문내로 옮겨 [새문안교회]라는 새로운 교회를
열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최초의 조직교회인것이다
낮선 선교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그는 같은 목적을 갖인 (호튼)을만나 결혼을 하게된다
그는 비록 영국에서 태어 났으나 한국을 사랑했고 한국에서 잠들었다
연희전문학교 설립을 위해 온힘을 쏟아 노력하든 그는 과로로 인해 1916년 10월 어느날(12)
고요히 잠들었다 그는 한국에서 잠들고 싶다고 유언을 남겼고 그는 그의 소망대로
한국에서 잠들고 있다
그러나 언더우드의 한국사랑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언더우드는 호튼과의 결혼생활에서 2세를 남겼다 그의 아들 언더우드[H.H.Underdwood]는
서울 정동에서 태어나서 아버지의 모교인 뉴욕대학을 마치고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후에 귀국하여 아버지의 하든일을 이어받아 경신학교 교사를 역임하고 제3대 연희전문학교 교장이 되기도 했으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는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이 되기를 원하였다
그는 일제의 만행을 온세계에 알리기도 하며 아버지 언더우드의 못이룬 한국사랑을 실천해 가면서 살아간다
한국을 사랑해서 한국인이된 언더우드 그는 그래서 한국을 버리지 못하고 죽어서도 한국에 잠들고 있으며 영원한 한국인이길 바라는 것이다
그는 언어도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한국에 와서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며 진정한 나라사랑법을 보여주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출처 : '한국 최초의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 - 네이버 지식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