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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 [Particles] #3 초대받지 않은 손님

양광운 |2003.03.12 01:16
조회 370 |추천 1




- < 소문과 진실 > -


"아우, 나 그 계집애랑 방 같이 못 쓰겠어 이제"

성아는 짜증난 목소리로 말했다.

기숙사의 공동 생활은 집단 생활이라는 점에서 상호간의 트러블이 참 많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 사소한 문제로 인한 시비가 더 많았다.


"왜 무슨 일인데?"

98학번 지우는 동기 여학생들보다 두 살이 많은 관계로 항상 어려운 일의 상담을 도맡아

해주곤 하는 큰언니 같은 존재였다.


"아 글쎄, 어제는 해질 무렵 방에 들어가는데 ... 윤정이 그 기지배가 방을 또 난장판을

해 놓았지 뭐유 ... "

항상 있는 기숙사 내부에서의 성격 차로 인한 트러블이었다. 남학생들이라면 여학생 기숙

사는 모두 깔끔하고 단정할 것이라고 상상 하겠지만, 의외로 여학생들의 성격에 따라 지

저분한 방도 꽤나 많았다.

성아는 그렇게 깔끔한 성격의 여학생은 아니었지만 윤정의 특이한 성격 탓인지 그녀의 다

른 룸메이트들이 버텨내지 못하고 토로했던 불만을 지금 토해내고 있었다.


"성아야,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뭐 좀 참고 지내라. 윤정이랑 안 맞는다고 룸메이트 바꾼

애가 벌써 네 번째 아니니. 어차피 한 두어 달만 지나면 이제 새 학년에 올라가서 룸메이

트도 바뀔 텐데 … 그렇게 너무 유난 떨지 말고 … "

하긴, 룸메이트로서 윤정이에 대한 불만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한 두 번 터져 나온 것이

아니었다. 이상한 슬라이드 글라스를 잔뜩 방 창가에서 말린다고 널어 놓거나, 이상한 벌

레들을 잡아서 책상 위에 얹어 놓는 바람에 같이 방을 쓰던 룸메이트가 기겁을 하고 뛰

쳐 나온 적이 몇 번 있었다.

"아니, 언니 그게 아니고 ... 내가 유난 떠는 성격은 아니잖우 … 그런데 이번에는 좀 상

황이 달라 ... 글쎄 어제 수업을 마치고 방에 들어갔는데, 그때가 해가 질 무렵이었거

든, 근데 방은 난장판이 되어 있고, 이상한 흙더미들이 방 곳곳에 폭격 맞은 듯이 떨어

져 있는 데다가 창가에는 반짝이는 온갖 것 들을 널어 놨더라고 … 방문을 열고 들어가

자 마자 석양에 무언가가 붉게 ‘번쩍’하는데, 나 거의 기절할 뻔 했다니까."


"응? 반짝이는 온갖 것들?"

'이번엔 창가에서 또 뭘 늘어 놨길래, 그나마 여학생들 중에 가장 털털하다는 성아가 저

리도 길길이 날뛰는 건지 ...'


사실 이번에 성아 마저 룸메이트를 거부 한다면, 98학번 여학생 중에 가장 언니겪인 지우

가 윤정이와 룸메이트를 해야 할 입장이었다. 다만, 약간의 결벽증 증상까지 있는 깔끔

한 성격의 지우는 그런 윤정이와 단 하루도 룸메이트를 할 자신이 없어서 정말로 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그게 무슨 ‘메스’처럼 보이는 것부터 시작해서 핀셋에 가위까지 ... 어휴 ...

말도 마세요 방에 들어가는데 뭔가 반짝 했을 때의 공포가 … 으흐흐 … 생각하기도 싫다

고요. "


한번 터지기 시작한 윤정이에 대한 불만은 끝이 없었다. 지우는 이쯤에서 언니로서 상황

을 마무리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럼, 일단 윤정이랑 내가 방을 쓸게 ... 성아 니가 내방으로 옮겨라."

지우는 정말 자기성격에 죽기보다 싫었지만 어차피 그렇게 오랜 시간도 아니고 기말고사

가 끝나면 어차피 룸메이트는 다시 바뀔 것을 생각해 지우는 어차피 잘 된 일이라고 생각

했다.

여학생들의 언니겪인 그녀로서는 한 번은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언니 정말 괜찮겠수? 언니는 방이 지저분하면 잠도 못 자잖아?”

'뭐 어때,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고 고작 한 두 달 일 텐데. 어차피 저렇게 룸메이트 마

다 불만이 많아서 매번 방을 바꾸는데,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빨리 매 맞고 끝장을 보

는 게 낳지. 어차피 기말고사 기간에는 얼굴 볼 시간도 없을 테니까.'


결심이 선 듯 지우는 성아에게 시원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지금 방으로 가서 짐 옮기자..."

남학생들 사이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윤정이었지만, 98학번 동기 여학생들 사

이에서는 윤정이의 특이한 성격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돌곤 했다.


'어제는 윤정이가 생물 실에서 해부한 쥐를 방에 가져 왔다면서?'


'글쎄, 전에 학교 앞 사차선 대로변 알지 ? 거기 왕복 사차선이잖아. 거기서 윤정이가 중

앙선에 떡 하니 쪼그리고 있더래. 깜짝 놀란 정문 경비 아저씨가 윤정이 한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뭐하냐고 그랬나봐. 그래도 꿈쩍도 않더래. 그래서 결국 가까이 가서 학생

뭐하냐고 다그 쳤더니. 4차선 중앙선 대로변에 개미 동굴이 있다고 관찰하고 있었다 그러

더래 ... 걔 좀 머리가 이상한 거 아니야 ? 완전 싸이코라니까 … '

'어제는 수업에도 안 들어오고, 계단에 1시간 동안 서 있었대. 뭐 계단에서 느껴지는 공

기가 다른 곳에서의 공기와는 다르다나. 그 애는 정말 싸이코야…'

결국 무성한 소문은 윤정이의 주위에서 점차 팽배 해져 갔고, 남자애들 사이에서도 98학

번 사이에서는 예쁘지만 웬지 접근 하기에는 두려운 여자애로 낙인 찍혀 가고 있었다.





-< 초대 받지 않은 손님 >-

지우는 방을 성아가 쓰던 곳으로 옮겼다.

지우에 의해 방은 깨끗이 치워졌고, 그녀가 방을 옮긴 이후에도 윤정이는 방에 들어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실제 지우는 방을 옮기고서도 윤정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은 금새 흘러 기말고사 날짜가 점점 다가 오고 있었다.

'소문만큼 이상한 애도 아닌 것 같은데. 하긴, 그러고 보니까 내가 이방으로 옮겨 와서

윤정이의 얼굴을 본 적은 한번도 없구나. 그나 저나 얘는 언제 들어와서 도대체 언제 나

가는 거지? 방에 안 들어 오는 건가?'



- 콰광쾅



누군가 다급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 윤정이 들어 왔니?"


정말 오랜만에 지우는 윤정이의 얼굴을 보게 된 것이었다.

"어, 언니가 이방에 웬일이우?"

'아니 이 계집애는 룸메이트 바뀐 것도 모르고 있었나?'

"성아랑 나랑 방 바꿨잖아. 몰랐니?"

"어 그렇수?"

윤정은 룸메이트가 바뀐 것 따위에는 별 관심도 없다는 듯이 무신경하게 대답했다.


방을 한번 둘러보던 윤정은 마치 자기 방이 아닌 낯선 방에 와 있는 듯한 표정을 하더니

갑자기 얼굴색이 파리해졌다.

"언니!, 언니. 저기 올려놨던 슬라이드 글라스 샘플 못 봤어?"

‘방에 들어오자 마자 웬 슬라이드글라스부터 찾는담 …’

지우가 미처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윤정이는 호들갑을 떨며 방 여기 저기를 뒤지기 시작

했다.



"아 혹시 … 그 퍼렇게 곰팡이 쓴 거 같은 유리 조각 말이야? 그거라면 내가 방 옮기면

서 저기 옷장 서랍에 다 넣어 뒀는데..."

윤정의 얼굴빛은 이제 거의 울상에 가까웠다.

"언니!, 언니 미쳤어. 그거 중요한 거란 말이야. 내 샘플들을 그렇게 마구 치워 버리면

어떻게 해? 나한테 이야기도 한마디 없이 … 어쩌면 좋아 내 아까운 펑거스[곰팡이균] 샘

플 다 죽었겠다. 그 샘플은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둬야 한단 말이야. 에이씨 , 어쩌면 좋

아 … 구하기도 힘든건데 …"


윤정이는 이제 마구 화를 내며 지우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거라고 나한테 화를 내고 그러냐. 그렇게 중요한 거면 잘

보관을 하던지. 니가 자꾸 그렇게 이상하게 구니까 니 룸메이트들이 너랑 방 못쓰겠다고

하잖아. 너 정말 이상한 아이구나? "


조금 심한 말을 한게 아닌지 마음에 걸린 지우였지만 윤정이의 표정을 살피며 그간 마음

속에 있었던 말을 몽땅 해 버리고 말았다.



"그 까짓 룸메이트들이야 나랑 상관 없고, 아잉 이거 봐 내 샘플 다 망가 졌잖아."

거기에는 내가 치웠던 푸른 빛을 띠던 유리조각들이 모두 검붉은 색이 되어 서랍에 쌓여

있었다.



"그까짓 룸메이트라니. 넌 공동생활의 예의도 모르니? 니가 실험하는 건 알아서 실험실

에 보관하던지 해야 할 거 아냐? 너 정말 이해 할 수 없는 싸이코 같은 계집애구나? 그러

니까 다들 너랑 같은 방을 안 쓴다 그래서 결국 나까지 이렇게 피곤한 거 아냐?"


지우는 ‘그 까짓 룸메이트’라는 말에 크게 분노하여 윤정에게 쏘아붙였다.

"됐어. 언니를 저주할 꺼야. 내 샘플들을 이렇게 망쳐 놨으니까. 평생 미워할 거야. 언니

는 죽어도 아마 두 번 죽을 꺼야 내가 그만큼 저주할 테니까 ……"

지우는 그 소리를 듣고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윤정은 아랑곳 하지 않는 다는 듯이 모아

둔 유리조각들을 모두 들고 문을 '쾅' 닫은 후 나가버렸다.



'뭐 저런 계집애가 다 있어. 정말 소문대로 싸이코잖아. 어차피 몇 주만 같이 쓰면 되니

까 그나마 다행이지 ... 1년을 쓰라 그랬으면 미쳐 버릴 뻔 했네 … 어휴! 기말고사 3주

만 지나면 이제 해방이군.'


짜증난 듯 지우는 윤정이 박차고 나간 문을 한 번 바라보고 나선, 책상에 앉아 하던 공부

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 < 손님의 악몽 > -

지겹도록 힘들었던 3주간의 기말고사를 마치고 지우는 편한 마음으로 기숙사로 돌아와 침

대에 누웠다.


'이제 끝났다. 지겨운 기말고사도, 지겨운 학교도 ... 방학 때는 나도 좀 쉬어야지. 정

말 못살겠다. 지옥 같은 시험들 … 고등학교 때로 끝난 줄 알았는데 …'


시험에 지친 몸을 이끌고 지우는 기숙사를 정리할 여력도 없이 끝없는 잠에 빠져 들었

다.



‘ 뭐지?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그녀는 자꾸만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자꾸만 목을 타고 올라와 무언가가 내 입에 따뜻한 것을 전해 주고 있다.


남자친구와 하는 달콤한 키스보다, 그 어떤 맛있는 음식보다 황홀한 느낌이 입을 통해 목

구멍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발끝부터 조금씩 위로 따뜻하지만 간지러운 느낌이 타고 올랐

다.


하지만 간지럽고 황홀한 기분 끝에는 발 끝부터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몰려왔다.


갑자기 끝이 없는 나락으로 빠져 들듯한 나른함이 밀려온다. 이런 나른한 느낌이 오히려

아스라한 쾌감처럼 느껴진 지우는 거부 하지 못한 채 그 기분을 즐기고 있었다.






-< 손님의 죽음 >-

KAIST내에서는 신입생 환영회의 과음 아니면 자살 소동으로 인해 구급차가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응급차량이 오는 것은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하지만, 기말고사도 끝나 학부 재학생의 절반 이상이 빠져나간 지금 구급차 한대가 여학

생 기숙사로 미끄러지듯 사이렌을 울려가며 달려가고 있었다.

"사망한 것 같습니다. 이 학생의 룸메이트는 지금 학교 내에 있습니까?"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정복을 입은 남자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시험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룸메이트를 불러야 하나요 ?"

뿔 테 안경을 쓰고 인상이 사납고 날카로워 보이는 여학생 기숙사의 사감으로 보이는 여

자가 오히려 구급대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침착한 목소리로 반문했다.



“아, 아닙니다. 사인은 알 수가 없는데 … 일단 특별한 외상이나 상해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외부인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아직 학생인 룸메이트

도 충격을 받을지 모르니까 지금 연락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 차후 경찰

수사 시에 그녀의 소환이 필요하다면 경찰 측에서 알아서 할 것입니다."


KAIST라는 학교 내에서 한 두 명 학생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늘 있었다. 혹독한 수업과 과

제로 인한 과로 사나 수업에 뒤쳐져 비관하여 이루어지는 자살, 혹은 과도한 음주로 인

한 사고들은 꼭 일년에 몇 건씩은 발생하였다. 또한 학교 특성상 같이 생활하는 룸메이트

에게 정신적 충격을 덜 주어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구급대원은 일단 사망한 사체

를 근처 대학 부설 병원의 부검실로 옮기고, 가족들에게 연락을 하고 나머지의 처리는 경

찰에 맡기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알겠습니다. 제가 최초로 발견 했으니까, 최초 발견자는 제 이름을 적어 주십시오."

늘 있는 일이라는 듯 기숙사의 사감은 차갑고 냉정한 목소리로 구급대원에게 필요한 정보

를 능숙하게 말해 주었다.





- < 두벌죽음 (부검 : autopsy) > -

"별다른 약물반응이나 외상의 흔적은 없습니다."

근처 대학병원인 충남대학교의 부설병원에서는 방금 옮겨진 여성의 사체를 조사하고 있었

다.

대전지검의 강형사는 본 여학생의 사망은 단순한 과로사 정도려니 하고 생각하고 있었

다.


"알겠습니다. 그럼 사인(死因)은 뭐라고 적어야겠습니까?”

일단 사망에 따른 사인을 기입하고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전한 후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

본인의 임무가 마무리 되는 강형사였다. 보통 가족들은, 특별한 타살의 동기나 흔적이 없

을 경우 부검을 시행한다고 말하면 ‘두벌죽음’이라고 하여 매우 꺼려했기 때문에 돌연

사의 경우 가족들에 대한 대처가 굉장히 조심스러웠다.


"음, 글쎄요. 특별한 사망원인은 없는 것 같은데요. 체내 소디움 농도가 좀 이상 하다시

피 높은걸 제외하면 ... 그냥 심장마비라고 적어 두십시요. 돌연 사 심장마비 정도로 적

으시면 될 듯 합니다. 하지만, 일단 체내 소디움 농도가 낮기 때문에 해부는 해 보아야

할 듯 합니다만 …… "


부검의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시체라는 듯이 강형사에게 사무적인 말투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부검의의 의견이 나오자 강형사는 사망사건에 대한 소견이 적힌 종이를 받아 들고 부검실

을 나왔다. 가족들이 어린 학생의 시체에 대해 다시 해부하여 조사한다는 것에 대한 반감

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걱정이 좀 앞서긴 했지만, 의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별다른 고민

을 크게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옆에서 부검을 도왔던 또 다른 의사로 보이는 듯한 이가 말했다.

"뭐가 이상해? 흠 하긴 사인이 명확하지 않으니 이상하긴 하지 ... 하지만 익스파이어

(Expire;의사의 사망선언)되고 나서 죽은 이유를 알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무니까 … 지

병에 대한 자료도 없고 하니까 …"

하루에도 몇 건씩 보고 있는 시체 인지라 별로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말투였다.

"아니 그게 아니라, 몸에 (1)시반이 나타나지 않았잖아?"


또 다른 의사는 아직도 미심쩍다는 듯 시체의 여기저기를 둘러 보며 말했다.

"음 ... 그건 좀 그러네 죽은 시체는 당연히 시반이 생겨야 하는데 …… 에이, 뭐 어쨌

던 뚜렷한 외상이 없고 별다른 약물 반응도 없는데 뭐 … 우리 너무 과민반응 하지 말자

고, 해야 할 일도 태산 같은데 …… 나중에 해부 해 보면 좀 더 자세한 결과가 나오겠지

뭐 ……"



시종일관 별로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말투였다. 어차피 쏟아지는 시체는 많고 써야 할 보

고서 역시 엄청 밀려 있는 실정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시체가 아니라면 별로

심각하게 고민까지 할 여력은 없는 걸로 보였다.

관심을 보이던 의사도 시체에 덮인 비닐의 매무새를 바로 잡고 나서 이제는 귀찮아 졌다

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그래, 우리도 좀 쉬고 하자고. 그러고 보니 밥도 못 먹었네"


그 말을 듣고 쳐다본 시계는 어느덧 6시를 지나고 있었다.

두 의사가 나간 사체 보관실은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일상의 시체는 검사가 일단 완료되면 냉동 보관 창고에 보관을 해 두고 나가야 되는 것

을 이 의사들은 깜빡 잊은 듯 했다. 아니, 어차피 1시간 정도 저녁 먹고 와서 해도 될 일

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죽은 여자 시체의 코에서는 반짝이는 하얀 콧물 같은 것이 흘러나오고 있었

다.


글쎄, 콧물이라고 보기에는 점성이 더욱 강한 듯 했고. 단지 코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이기

에 콧물이라는 명칭이 적당해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기어 다니듯이 코에서 꿈틀꿈틀

거리며 나오는 형상의 그 물질은 콧물이라기 보다는 무슨 애벌레가 기어 나오는 것 같았

다. 그렇게 코에서 흘러나오는 있는 물질에는 아주 작고 완벽한 구형의 모양을 갖춘 우윳

빛 색깔을 띤 작은 공 같은 것들이 보였다.


그것은 인간의 눈으로는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작은 크기의 물질이었다.

하지만, 죽은 시체에서 둥글고 작은 구체를 담고 있는 이상한 점액질의 물질이 꾸물꾸물

기어 나오고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영원히 누구에게도 그 모습을

보여 줄 것 같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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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반(屍斑, Livor Mortis) : 사후의 시체에서 볼 수 있는 자줏빛의 반점을 의미한
다. 사후에는 심장이 정지되면서 혈액이 중력에 의해 몸의 아랫부분에 있는 모세혈관으
로 침강하게 된다. 이로 인해 그 부분의 외표피층이 착색되는 것이다. 질식사나 이산화
탄소의 중독에 의한 시반은 더욱 강하게 나타나며, 본 소설에서 처럼 시반이 나타나지 않
는 케이스는 거의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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