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미즈넷에 쓴글인데 시친결에두 옮겨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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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요즘 미즈넷의 남자들이 "조선시대에 태어났으면 너히가 감히 어디..."
라는 그 조선시대에 태어나서 현모양처로 이름을 날린분입니다.
여러분 그럼 신사임당 같은 며눌이 됩시다.
근데 그거 아세요??
그 옛날 조선시대에 신사임당은 외가에서 자랐으며...
그녀 역시 결혼후에 그녀의 친정인 강릉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녀가 물론 시집에 가보진 않은 것은 아니나..
그녀의 결혼후 생에서 시집에서 생활한 것은 외가에서 생활한것의 십분지 일정도 밖에 안됩니다.
물론 그녀 조선시대에 태어나 자기 하고싶은 것을 다하고 살지 못했지요..
그림공부, 글공부도 제대로 못했기에 지금 여성들을 보면 무척이나 부러워 하겠지만..
조선 최고의 현부라는 신사임당은 시집인 서울에서 살았던 것은 기실 3년 정도라고 합니다.
시집에서는 당연 그녀에게 친정으로 갈수 있게 해줬고요.
그런 시집 때문에 그녀는 진정 마음으로 시집을 챙기고 남편에게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조선시대 어쩌고 저쩌고 하는 분들...
진짜 조선시대에 사대부가는 저랬습니다.
시댁과 친정을 가르지 않고 그 사람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을 최고라 쳤습니다.
알지 못하는 얄팍한 지식가지고 조선시대 어쩌지 마십시오..
난 상놈의 자식이오 광고하는 거랍니다..
그리고 며눌님들...
남편에게 그러세요 신사임당 같은 며눌이 되겠다고요.
몸으로 돈으로는 다 못해도 마음은 다해서 신경쓰겠다고요^^
남편이 잘 도와준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화이팅입니다..!!!
p.s : 전 아직 예비신분데...요즘 이상한 남자들 넘 많아서 글 함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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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 " 부분만 따왔습니다"
출생과 성장
1504(연산군 10)∼1551(명종 6). 시· 글씨· 그림에 능하였던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예술가. 본관은 평산(平山).
아버지는 명화(命和)이며,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로 사온(思溫)의 딸이다. 외가인 강릉 북평촌(北坪村)에서 태어나 자랐다. 조선시대의 대표적 학자이며 경세가인 이이(李珥)의 어머니이다.
아버지 명화는 사임당이 13세 때인 1516년(중종 11)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않았다. 기묘명현 (己卯名賢)의 한 사람이었으나 1519년의 기묘사화의 참화는 면하였다.
외할아버지 사온이 어머니를 아들잡이로 여겨 출가 후에도 계속 친정에 머물러 살도록 하였으므로, 사임당도 외가에서 생활하면서 어머니에게 여범(女範)과 더불어 학문을 배워 부덕(婦德)과 교양을 갖춘 현부로 자라났다.
서울에서 주로 생활하는 아버지와는 16년간 떨어져 살았고, 그가 가끔 강릉에 들를 때만 만날 수 있었다.
▶ 출가 후의 생활
19세에 덕수이씨(德水李氏) 원수(元秀)와 결혼하였다. 사임당은 그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의 아들잡이였으므로 남편의 동의를 얻어 시집에 가지 않고 친정에 머물렀다.
결혼 몇 달 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친정에서 3년상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갔으며, 얼마 뒤에 시집의 선조 때부터의 터전인 파주 율곡리에 기거하기도 하였고,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백옥포리에서도 여러 해 살았다. 이따금 친정에 가서 홀로 사는 어머니와 같이 지내기도 하였으며, 셋째 아들 이이도 강릉에서 낳았다.
38세에 시집살림을 주관하기 위해 아주 서울로 떠나왔으며, 수진방(壽進坊:지금의 수송동(壽松洞)과 청진동(淸進洞))에서 살다가 48세에 삼청동으로 이사하였다. 이해 여름 남편이 수운판관 (水運判官)이 되어 아들들과 함께 평안도에 갔을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