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정말 명절때마다 힘든 울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저희 가족 소개를 하자면 울 아빠 형제가 9남매입니다.
첫째 큰아빠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이제 남은 형제들은 둘째 큰아빠와 셋째 울 아빠 그 담에 작은아빠들, 고모들 이렇게 쭉 다 해서 9남매입니다.
그리고 첫째 큰아빠한테 딸린 자녀들이 5명에다가 지금 다 장성해서 그 2세까지 모이면 그 식구들만 몇십명입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둘째 큰아빠 자녀들도 2세를 낳아서 오면 그 가족만 해도 굉장하죠!
다 모이면 55명이고요, 거기다가 작은 할머니 자녀들도 산소가 가까워서 인사하고 그냥 가지 않고 술먹고 놀다가는 사람만 몇십명, 왜냐면 우리 친할머니가 종갓집 맏며느리여서 항상 이런식으로 큰집으로 다 모였습니다. 그럼 100명 정도 됩니다.
요즘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겠냐만은 우리 친척들은 다 이렇게 모이고 있습니다.
왜냐면 할머니가 80대 후반에 종갓집 맏며느리이셔서 모든 일가 친척들이 인사하러 오는겁니다.
그럼 며느리들은 이젠 조카 며느리까지 와서 명절때마다 부엌대기로 항상 붙어 있어야 하고 특히 시골이 우리집이 되버린 울 엄마가 매일 손님 받아야 됩니다.
시골이라 명절뿐만 아니라, 이웃집도 다 노인밖에 없어서 맨날 머 고쳐주라 오고, 처음엔 옆집 할아버지, 할머니가 거의 울집 아침식사때마다 꼭 와서 국좀 얻으러 왔어,., 울 할머니랑 3명 노인들 밥을 차려 드리고 명절뿐이 아니라 항상 이것이 일상생활이었습니다.
울 할머니만 3시3때 밥 차려 드려야 되는것도 힘든 데 말입니다.
울 엄마는 지금 나이가 50대 중반인데 86세 할머니에 매여서 어디 여행 한번 갈수가 없고 어디 잠시 갈려고 해도 마음에 부담으로 자리잡고 제대로 다닐수도 없습니다.
우리가족은 서울에서 핵가족으로 오손도손 살다가 시골에 갑자기 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할머니가 영양실조에 걸려서 중풍에 걸려서 대소변을 싸자 모실 사람이 없고 다들 나몰라라 해서 형제들이 다 모여 회의끝에 우리가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름에 울 엄마랑 아빠가 염소도 잡고, 소로 곰국 끓여서 가마솥에서 오랜시간 정성들여 보약해서 드려서 사랑의 간호로 중풍이 나아서 걷지도 못하는 할머니가 걷게 되고 살아났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골로 온 초기에는 한 몇년은 아빠는 직장때문에 지방에서 있었고, 난 서울에서 외동딸이라 혼자서 22살때부터 지금까지 살게 되었고, 울 엄마 혼자 그 산골짜기 시골에서 몇년동안 할머니만 봉양하면서 살아서 이산가족처럼 뿔뿔이 흩어져서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부모님은 모두 시골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리가족에게 현재 맏며느리인 둘째큰엄마가 감사하는 마음보다는, 당연히 너네가 희생과 뒷치닥거리 해라 이런식이고, 1년에 한번 고기 사가지고 온다고 얼마나 생색을 내며, 어제도 자기 며느리도 있는 자리에서 " 너네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시골에 온거 아니냐"며 그러는겁니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
저희 가족이 어디가서 먹고살거리가 없어서 온게 아니라 다들 이 글을 읽고 놀라겠지만, 저의 가족은 기독교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순종함으로 살기에 부모에게 공경을 할려고 오게 되었습니다.
KBS2 TV 드라마 "소문난 칠공주" 에서 나오는 칠공주 할머니가 "있을때 잘해~라는 노래 부르는 것을 보신분은 아시죠?
이 유행가 정말 공감하는게, 부모가 있을 때 잘해야 되는거 아닙니까?
부모 돌아가시고 나서 제사 지내기 전에 부모가 살아 생전에 잘 해드리고, 외롭지 않게 잘 해 드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대로 된 기독교의 사상이지요!
제사가 필요없는게,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그리고, 만약 우리가 먹고 살길이 없다고 칩시다! 누가 시골까지 와서 할머니 모시려고 합니까?
가난하면 더 시골로 못 오지요....자존심에.....안 그렇습니까???
우리집이 그렇게 먹고 살길 없는 집이 아니라 그렇게 부자는 아니지만, 시골까지 와서 살만큼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
저는 미국에 유학도 다니면서 그것도 돈 많이 든다는 음대에서 3학년까지 다녔고요,,
도시에 우리 아파트도 전세로 내놨고,,,우리가 먹고 살 집도 없지도 않고요.
하긴, 모든지 자기 식대로 생각을 하니깐 큰엄마는 자기 가족만 알고 이기적이으로 살기 때문에 절대 우리 삶을 이해할순 없겠죠!
그리고 큰아빠와 큰엄마는 1년에 한두번 고기 사가지고 와서는 할머니 중풍다시 걸릴까봐 고기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데, 자기들 둘이서 먹고 술 마시고 미식가라 시골에 한번 여행오는겸 옵니다.
그러면서 남들한테는 맨날 와서 돈쓰고 간다고 생색을 있는대로 다 내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와서 어린 조카인 나한테 하는 말이 자기 둘이서 여기저기 지방에 맛있는것만 먹으러 다닌다고 오면 자랑하고 그러는겁니다.
어른이 되어가지고는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울 엄마는 할머니 모시느라 어디서 오라고 해도 묶여서 여행 한번을 못가는데 말입니다.
내가 피눈물이 안 납니까????지금도 기가막혀서 눈물이 납니다...울 엄마와 아빠의 인생을 생각해보면서,,.........
그것뿐이 아닙니다. 첫째 큰아빠와 큰엄마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버린 조카들이 지금 다 장성해서 어른들인데 보면 무시하고, 이년 저년 말도 거칠고,함부로 대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약한자에게 강하고, 강한자에겐 약한 스타일 이지요! 약육강식 법칙을 가지고 사는 큰엄마...
나도 한번씩 이렇게 사는게 옳은건지 불평 할 때도 많았습니다.
그냥 많지도 않은 우리 세가족이 도시에서 오손도손 살았을때가 너무 행복했었다고 생각도 했구요.
그렇지만, 우리가족은 부모가 낳아준 것만 해도 공경해야 된다고 하나님 말씀에 나와 있기 때문에 기독교인의 양심으로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해서 효도할려고 몸부림 쳤습니다.
시골집이 보통 작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짐이 다 들어가기도 힘들기에 건너편에 외양간을 뜯고 원룸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울 아빠가 원래 건축일에 달인이라 엄마랑 인권비 안 들려고 기술자 1명만 부르고 그렇게 몸으로 뛰면서 고생하면서 지었습니다.
그것뿐이 아니라 하수도에 물이 새서 다시 공사하느라 아빠는 손이 다쳐서 수술한지 얼마 안되는데 고치느라 고생하고,,,
서울에서 살 때는 도시가스라 기름비도 적게 드는데, 시골은 기름보일러 밖에 안 되서 춥게 살아도 한달에 30만원이 넘게 드는것입니다.
기름값이 계속 오르니까 아예 기름이 안드는 심야 보일러를 사서 달았는데, 그게 570만원이나 하는것이었습니다.
쓸데없는 돈들이 계속 드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서 학교도 잘 다니다가 휴학 1년이 넘어서 그만두게 되어버렸습니다.
이럴땐 정말 속상하기도 했지만, 전 그래도 감사하고 이겨낼려고 노력하면서 잘 살려고 했습니다.
이런 나에게 위로의 말을 못 해줄망정 상처나 주는 형제따위 필요없습니다.
저는 외동딸이라서 울 부모님밖에 없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친척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옛 속담에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형제가 힘들때 나몰라라 하고 잘 될때는 질투나 하는 그런 친척 저는 필요없습니다.
맨날 내 앞에서 이번 명절에도 꼭 유독 나에게 자기 손녀 자랑이나 하고, 나한테 심리적으로 라이벌 의식이 있는건지,, 유치해서 한귀로 듣고 흘려버리곤 했습니다.
큰엄마는 현재 젤 맏며느리인데 자기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손아래 동서가 다 희생하고 그러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대해도 모자란 것 아닙니까?
나같으면 그렇게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자기 식대로 생각없이 이럭저럭 말을 뱉는 사람 이 세상에서 제일 싫습니다.
장난으로 던진 돌맹이에 개구리가 맞아죽듯이 생각없이 내뱉는 말들에, 심장에 구멍이 생겨나고 상처받는다는 걸 아는지,,,,,,,
어리다고 약하다고 무시하는 거 아닙니다.
지금도 제 심장이 충격을 먹어서 아프고, 속이 너무나 아픕니다....
세상에 이런 큰엄마도 있다는걸 인터넷으로나마 얘기하고 싶어서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