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정해진 팔자가 있다고 된소리를 해도 영 안믿다가 통계학에 이러러서는 가까스로 수긍하게 되었다.
그 팔자라는걸 쭉 펼쳐 놓으면 빨다가 진난 걸레 같이 너덜너덜해서, 제 팔자가 아무리 한번쓰고 버릴양이라도 눈물 아니 흐를까.
그 팔인치 블록으로 튼실하게 두른 담에도 남모르는 애환이 있어 가끔씩은 지나는 취객이 방뇨를 하곤 하더라만, 사람 사는 꼬락서니가, 새신랑같이 매냥 오똑한게 아니라서,주인장은 지린네 풍기는 후미진 담벽에서 붉은 락카로 가위 하나를 그리며 혀를 차는것이다.
당나라 천보 13년에 진사가 된 원결(元結)이 술을 즐겨 취중에 이렇게 읊었다.
有時逢惡客
풀어쓰자면 "때때로 악객(惡客)도 만나네..."여기서 악객은 술 못먹는 자를 빗댔다.
지금 세상에 술끼고 노닥거리다간 가내가 두루 평안하지 못하겠다.
제일 먼저 반기를 들고 일어서는 반도는 아내가 될것이고,아이들도 제 어미를 팔걷어 두둔하며 왕따 시키려 들것이다.
여자가 강해지면서 남성의 주사는 물건너갔다.
내 어릴적만 해도 쌀이 떨어지면 별일 아닌데 아버지 술떨어지면 큰일이였다.
아버지의 술기가 팔활이나 올라야 가내가 두루 평안했다.
어머니는 그때 쯤 해서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대문 밖으로 나가면 직격으로 날아올 주사를 피할 궁리를 하셨나보다.
요즘 이런 환경이라면 파투가 나도 골백번은 났을게다.
그때의 여인네들은 지긋하게 물러서서 딴청과 애먼귀로 호된 세월을 났다.
어찌하여 그렇게 됐느냐고 엄하게 따지다 보면 정작 답이 궁한 법이다.
원래 지취(志趣)가 고소(高疎)하여 운수지상(雲岫之想 자연,전원을 뜻함)을 꿈꾸며 훨훨 살았다.
그래도 이래저래 부지런을 떨다보니 가솔깨나 불어나고,가장이라고 어깨가 무거워 오매 톱과 망치를 사들고 도목수하는 친구 휘하에 애머슴 엎어지듯 엎어졌는데, 눈썰미가 있고 가늠이 오져 몇해 안가 인근에서 알아주는 일꾼이 되었다.
그가 명성을 얻은건 비단 기술만이 아니다.
주용(周容 남의 비위를 맞춤)이 걸고,두루 상안(相安)하고,남의 허물에 관대하였다.
호방한 기색을 앞세워 일을 따내고,품을 푸는 재주가 비상하여 두루 친구가 들끓었다.
풍채가 좋아 두주 불사하니 감기라도 걸려 집안에 앉았다 하면 친구 붙이라는 것들이 죄 술을 들고 문병왔다.
그러하니 허구한날 오른 취기가 깰줄을 모른다.
안식구 잔소리를 미닫이 문지방을 걷어차 꺽어놓고,아이들 술트집을 싸다구질로 막았다.
그래놓고 먹고 잠긴술,댓바람에 푸는 해장술이 말술이 됐다.
동리에 술 쎄다는놈 있으면 찿아가 내기술로 겨루어 기여코 꺽고,"웅구(雄鳩 숫 비둘기,여기서는 말 많은 사람을 비유)들의 늘어진 찬사를 섬지기로 들어야 엉덩이를 듫었다.
이런 용장(容長) 노름에 아내도 두손들고 술에서 서방 건지기를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
병징(病徵)은 혈기가 핼슥해 지더니 눈가에 황달로 왔다.
뜬금없이 헛구역질을 하면서 살이 빠졌다.
병원 가보자는 아내의 말을 무던히도 안듣더니 구역질에 혈흔(血痕)이 비치고서야 병원 가보자고 아내 치맛단을 잡고 늘어졌다.
그날 그는 병원을 나서며 의사에게 입에도 담지 못할 욕을 걸어 부었다.
"그 깐 술 좀 마셨다고 간이 굳었다카모 내 입과 창시는 왜 멀짱하노?"
말이야 맞는데 아내는 입원 시키라는 의사의 처방 앞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이 양반이 고분고분 의사의 말을 듣고 병실에 퍼질러 앉을 위인이 아니다.
어쨌던 사납게 열린 저 입을 끌고 밖으로 나가 남사스러움을 면해야 하는 한편,이제 어째 사노 하는 걱정에 눈앞이 깜깜했다.
그래도 살고는 싶은지 한동안 술을 사양했다.
그 기간에 아내는 애원하여 입원을 권했지만 그것만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게 의사가 내리는 지침에 순응해서 오랄때 병원가고,약 먹으랄때 약 먹고,절대금주에 동의를 했다는 점이였다.
그러나 그 약속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보름여 술을 멀리 하더니 병 문안오는 친구들을 윽박질러 "딱 한잔"이란 단서를 붙이고 우정을 괴롭혔다.
그래서 한잔 먹은 술이 시동이 걸리더니 굳은 간과 자신은 별개인듯 술먹는 자태가 청상(淸尙)해지며 귀티마져 풍겨내는 것이다.
이에 놀란 아내가 자식들과 남편형제,일가 붙이를 죄 동원해서 마지막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술과의 전쟁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아내는 원하는 바를 취했다.
그러나 그녀는 몇일후 자신이 쥔 최후의 카드가 술병에 붙은 "**소주" 스티커 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남편에게서는 여전히 술냄새가 풍겼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도 이상하게 술냄새가 났다.
병원 가자고 졸라도 아예 들어먹질 않는다.
간신히 타다주는 약만 애처로운 아내를 위해 삼켜 줄 뿐 그는 이미 자신의 생명을 너덜겅에 던져두고 있었다.
그가 죽고 한달 후, 그의 아내는 화장실 환기구로 뚧어놓은 블록 구멍에서 반이나 남은 술 한병을 발견했다.
삐춤 하게 삐친 가느다란 호스 한가닥이 묘하게도 그녀의 호기심을 끌어갔다.
그 호스를 따라가니 블록 구멍에 감추어진 소주병이 보였다.
소주병은 마개가 그대로 막혀 있었고 그 마개에다 못으로 구멍을 내고 닝겔 줄을 연결했다.
"세상에..."
그녀는 그 술병을 들고 한참을 몽혼하게 섰었다.
언제부턴가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 양 볼을 적셨다.
그녀는 울면서 그 닝겔 줄을 물고 빨았다.
진이 약간 나간듯 해도 아직 술기는 매서웠다.
"문디...이기 나보다 맛있더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