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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49화> 재회

바다의기억 |2006.11.09 12:08
조회 9,442 |추천 0

날씨가 많이 쌀쌀해졌습니다.

 

다들 감기조심하시고

 

특히 수능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여러분

 

떨어지는 낙엽도 몸을 날려 피하시길.... 

 

=========================== 두통이 살살 오는 게 몸살인가 ===========================

 

 

정말 많은 말을 준비했었다.


로맨틱한 재회에 있어 타의 모범이 될만한


회심의 멘트들을 수도 없이 쓰고 지우면서


그 중 엑기스 중의 엑기스만 모아


200자 원고지 5장 분량의


장대한 대서사시를 외워왔다.


하지만 그 원고들을 실수 없이 떠올리기엔


오랜만에 본 그녀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기억 - 하.... 하이?



결국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게 고작이었다.



민아 - ......



가당찮은 내 인사에


할 말을 잃어버린 듯한 그녀를 보며,


문득 석양을 향해 한없이 달려가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난.... 대체 왜 이 모양 이 꼴인 걸까.



우리 사이엔 한참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날씨만 구질구질했다면


원 없이 울고 싶을 만큼 서러운 기분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냥 본론으로 가자.



기억

- 큼, 크흠, 그러니까...


어제 안군선배한테.... 전화를 받았어.



민아 - 응.


기억 - .... 사실이야?


민아 - 응. 헤어졌어.



혹시라도 내가 이상한 소식을 듣고 온 걸까 걱정이 되었는지,


그녀는 확실하게 못을 박아 말했다.



기억- 저기..... 나도......


민아 - 응, 이야기 들었어.


기억

- ... 한나가 이미 말했어?


저기... 그럼 말이지... 이... 이거.....



왜 한나와 헤어져 그녀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는지를


구구절절 설명하려던 난


단숨에 다음 말을 차단당해 버렸고,


곧장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기억

- 어라, 이, 이게 어디 갔지?


잠깐만 기다려 봐, 내가 그걸...



하지만 도통 어느 주머니로 숨었는지


찾을 수 없는 비장의 무기.


그녀는 묵묵히 내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고,


내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내가.... 이걸 대체.... 아! 가방에 넣어놨었구나!



그제야 비장의 무기가 손상될까봐


가방에 챙겨놨던 사실을 기억해낸 난


서둘러 가방 앞 칸을 뒤적였고,


곧 숨겨뒀던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 수 있었다.



기억 - ...... 이거...... 기억 나?



그건 그녀가 내 생일 선물로 줬던 소원카드였다.


카드를 받고 몇날며칠 동안


어디다 쓸까만 궁리하면서 조몰락거린 탓에


가장자리가 다 쪼글쪼글하게 울어버렸지만...


그 내용만큼은 아직 선명했다.


=예쁜 공주에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 아니라면

당신의 소원 한 가지를 들어드립니다.=



민아 - 으..... 응.


기억

- 이거.... 유효기간 같은 거 없었으니까...


아직 유효한 거지?



민아 - ..... 응.


기억 - 그럼...... 지금 쓸게. 나한테...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줘.



카드의 유효성을 확인하느라


현저히 떨어져 버린 임펙트.... 마치


=플래시가 스트레이트보다 높은 거지?=


라고 확인한 뒤에 공개한 카드패만큼이나 시시한 등장이었지만,


그 카드 한 장이 나에겐 마지막 보루이자,


기사회생의 탈출구였다.



민아 - ..........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나도 내가 그녀에게 쏟았던 독설들을


한 마디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것이 얼마나 큰 잘못이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 순간의 충격은 예상했다고 해서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기억 - 아..... 그랬구나..... 역시... 응.... 미안.



뱃속에 있던 내장들이 왈칵 쏟아져버린 것처럼


몸속으로 시린 바람들이 통했다.


차마 걸음을 뗄 수 없을 만큼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지금 이 기분을 푸는 방법은


목 놓아 우는 것 밖에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기억 - 가....크흠... 가..... 갈, 갈게....



목을 꽈악 죄어오는 울음의 올가미를 애써 풀며


난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정신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바로 무릎이 꺾여버릴 것만 같았다.



민아 - 아....!



그때, 그녀가 내 소매를 붙잡아 세웠다.


난 간신히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속으로 삭이며


그녀를 돌아보았고,


그런 나를 올려다보던 민아는


입술만 달짝 거리며 뭔가를 열심히 말하고 있었다.



민아 - 냐... .....야.....난....니까...



난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에 귀를 가까이 했고,


그제야 울음에 묻힌 그녀의 진심을 들을 수 있었다.



민아

- 카드 같은 거 쓰지 않아도 돼.


나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그것은.... 하늘에서 들려온 구원의 목소리였다.


모든 것을 잃고 혼자 고독한 죽음을 맞이했던


박사를 품어준 천사의 날개처럼,


그녀의 한 마디는 나락으로 떨어진 나에게


한 줄기 광명이 되어주었다.



민아

- 나 흑.... 어떡해.... 기껏...흑....


열심히 꾸몄는데...흑흑.... 다 번지겠.....



기억 - ........ 공주님.....


민아 - 기억아.....!! 으아앙....



그녀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하려는지


덩달아 흘러나오는 바보 같은 눈물을 감추려 난


그녀의 어깨를 와락 끌어안았다.



피카츄 - 즈르르를..... 크응! 킁!



그런 나를 떼어놓으려는 듯,


피카츄는 내 바짓단을 물고 사방으로 고개를 흔들어댔지만


그런 건 아무 상관없었다.


그녀와 다시 만난 마당에


발목이 뜯어진다 한들 어떻겠는가?



기억 - .....돌아왔어.


민아 - 으응....으응.... 잘 왔어.... 잘왔어, 기억아.



한참 후에야 어렵게 울음을 멈춘 그녀는


불현듯 뭔가 떠올랐는지 내 옷깃을 붙잡고 말했다.



민아 - 기억아, 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어.


기억 - .....응??



그녀가 나를 이끈 곳은 그녀의 집 지하실입구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가려 있어


쉽게 찾기도 힘들 것 같은 입구는


몹시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문손잡이에 먼지가 앉아있었다.



민아 - 여기 열쇠가 없는데... 열 수 있을까?


기억

- 음.., 열수는 있겠지만....


사람을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민아 - 지금 들어가고 싶어.



잠시 후.


난 그녀로부터 드라이버며 공구 몇 가지를 받아


문을 따기 시작했다.


이 안에 뭐가 들었는지,


그녀가 왜 이곳에 들어가려고 하는 건지는 몰라도


그녀가 들어가고 싶어 한다는 자체만으로 이유는 충분했다.



=딸캉=



곧 경쾌한 소리를 내며 풀리는 잠금장치.


문틈에 다소의 상처를 내긴 했지만


어쨌건 목적했던 바는 이룬 셈이다.



민아 - ........



뒤에 서있던 민아는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된 손을 뻗어 문고리를 잡았다.


= 끼이이이익..... =


하고 노곤한 기지개를 켜며 길을 열어주는 문.


그 속으로 보이는 건


길게 이어진 계단과 캄캄한 어둠뿐이었다.



민아 - 기억아.


기억 - 응?


민아 - 들어가서..... 뭐가 있는지 좀 봐줄래?


기억 - ... 같이 안 들어가고?


민아

- 난 조금 있다가 들어갈게.


기억이가 먼저 봐줬으면 좋겠어.



묵은 공기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 지하실 입구는


마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공포심을 불러일으켰지만,


이렇게 말하는 덴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 난


천천히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다.


계단이 꺾이는 부분에 있는


좁은 채광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의지해


지하실이 있는 곳까지 내려간 난


핸드폰 액정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딸깍=


계단 옆 벽에서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켠 순간,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말로 형언하기 힘들 정도의 무게와


진한 감흥을 전해주었다.



기억 - ........



벽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양의 장서들,


바닥과 벽 곳곳에 붙어있는 도면들과


그 위에 빼곡하게 붙어있는 메모지,


낡은 책상과 스탠드, 커다란 컴퓨터.....


이곳에 있던 사람이


정확히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이곳에 그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는 것이다.


사랑, 열정, 고민과 기쁨....



난 바닥에 놓인 책과 도면을 밟지 않도록 주의하며


방 중앙에 있는 책상을 향해 걸어갔다.


다가설수록 견디기 힘들 정도의 중후한 울림을


가슴 속에 전해오는 책상과 의자는


마치 지금도 이 방의 주인이 그곳에 앉아있는 것만 같았다.



가까이 다가간 책상엔 몇 권의 책과 종이,


그리고 펜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로 드러나 보이는


크레파스로 삐뚤빼뚤 뭔가를 써놓은 도화지 한 장.


난 조심스레 책을 들어올리고 그 내용을 확인했다.



기억 -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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